성지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참사

무엇이 인간의 이성적 평화공존을 막고 있는가?

2023.10.14 | 조회 8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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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 대한민국 이야기

글로벌 경제와 자유주의 한국 사회의 변혁을 이야기합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남쪽 끝의 팔레이스타인 거주 지역, 가자 지구는 생지옥으로 변하고 있고, 참사는 앞으로도 더 이어지고 확대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이미 사망자만 2500명이 넘고 사상자는 1만여명을 넘고 있다.  2차 대전 이후에 국가들의 국경은 군사력으로 변경하지 못한다는 불문율을 푸틴이 다시 깬 우크라이나 전쟁과 함께, 하마스의 대규모 이스라엘에 대한 침공과 그 반격으로 진행되는 무차별 학살극은 인류가 지금 어디까지 와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자아내게 한다. 

냉전체제 붕괴 이후에 누리고 있던 평화가 항구적인 것이 아니었다는 자각을 하며 인본주의와 집단화된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음악축제를 하는 시민들을 학살하고 인질을 삼는 일이나,  200만이 넘는 시민들이 삼는 지역을 전기, 물, 식량을 봉쇄하고 포탄을 퍼부어 대는 일이나 전쟁에 대한 국제협약이나 우리가 인류에게서 기대하는 문명적 모습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야만적 모습이다.  인간의 내부에는 폭력적인 침팬지의 모습과 평화 공존에 능한 보노보의 모습이 같이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침팬지의 세상을 지금 목도하고 있다. 

지금 전쟁의 참화가 벌어지고 있는 곳은 유일신 삼대 종교의 성지(Holyland)이다. 유대인의 신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젖과 꿀이 흐르는 번영의 땅으로 이스라엘을 시작했고, 모세가 이집트에서 민족을 이끌고 출애급을 하여 향한 가나안 땅이 지금의 가자 지구를 포함한 이스라엘이 점령한 땅이다. (출애급과 모세의 이야기는 모세 5경 (토라)를 비롯한 구약에만 있는 이야기로 아직까지 고고학적이나 역사적 증거가 있지는 않은 이야기다).  이스라엘 민족이 시작했고 구약의 약속의 땅에 솔로몬 왕이 첫 성전을 세운 곳이 지금의 예루살렘이다.  이곳은 예수가 자라고 십자가의 처형에서 부활했다는 기독교의 발상지이고, 마호메트가 승천했다는 곳도 예루살렘이다. 

이 유일신 종교의 공통된 성지가 오늘의 비극의 근원이고 근 4천년 전 아브라함에게 신이 약속한 땅은 끊임없는 지금 진행되는 것과 같이 인종 학살과 전쟁의 장소이기도 하다. 

신명기 20장의 이스라엘 민족의 전쟁의 방법은 끔찍하다.  적의 도시를 공격할 때 항복 (평화)를 제안하고 받아들이면 그 도시의 모든 사람들을 노예로 삼아, 강제 노역을 시키고, 거부하면 도시를 에워싸고 공격해서 함락 시킨 후에 그 안의 모든 사내들은 죽이고, 부녀자와 어린애와 가축과 모든 재산을 취하라고 한다.  그리고 신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는 도시을 취하는 전쟁을 하는 경우, 호흡을 하는 모든 사람들을 죽이고 모든 민족을 섬멸하라고 명한다. 햇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등 모두 진멸하여 그들이 다른 신에 대한 믿음을 전하는 것을 방지하라고 한다.   성안에 살려 둘 것은 과일을 맺는 나무들 뿐이라고 한다 (이것도 내가 종교를 믿지 않는 이유 중에 하나다).

마호메트가 남겼다는 전쟁의 규칙은 문자상으로는 훨씬 근대적이다.  어린이, 여인, 노약자와 병자를 죽이지 말고, 재산을 파괴하지 말고, 음식을 만들 이유가 아니면 가축을 죽이지 말고, 거주지를 파괴하지 말라는 등 우리가 알고 있는 이슬람의 극단주의적 폭력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예언자 무하매는 끊임없는 설교가 아닌 칼에 의한 이슬람 정복전쟁과 "성전"을 통해 이슬람 세계를 완성한 무력의 예언자이다.  Fondapol에 의하면 1979년과 2021년 5월까지, 이슬람 테러 공격은 무려 48,035번 있었고, 그로인한 사망자는 무려 210,138명이라고 한다. 우리는 탈리반, 이슬라믹  스테이트 그룹, 아프리카의 보코 하람, 그리고 알 카이다 등 테러단체들로 인해 테러와 이슬람이 거의 같은 말로 인식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신앙의 종언 (The End of Faith)"의 저자 Sam Harris는 이 책에서9.11 테러 이후 부시 정부에 의한 대테러 전쟁이 승리할 수 없는 이유로 이슬람 종교의 본질적 폭력성을 지적하고 있다.  기독교 세계와는 달리 이슬람은 종교와 국가 권력이 분리되지 않은 신정일치의 단계이고 정교 분리의 민주화가 없는 상태에서 종교의 도그마는 매우 위험하고, 이슬람의 교리와 역사가 테러를 감행하는 순교자들을 어떻게 정당화해왔는지 설명하고 있다. 

이것이 다민족들이 갈등하면 살던 유목 부족국가들이 다투며 살던 모습일 것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참상이 신명기 20장의 야만적 인종 청소의 모습에서 크게 다르지 않은 듯이 보인다. 

지금 같은 땅에서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지 못하고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이스라엘과 이슬람 (팔레스타인)이 바로 유일신 종교의 공동의 조상 아브라함의 두 아들들의 후손들이다.  적자 아삭의 나라 이스라엘과 장자 이스마엘의 나라가 이슬람이다.  이들 아브라함의 배다른 자식들후손간의 골육상쟁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로마에 의해 마지막 고대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나라 없이 2000년을 떠돌았던 유대인들은 오트만 제국이 지배하던 그 약속의 땅에 돌아가서 그들에게 신이 약속한 이스라엘을 재건하겠다는 시온니즘이 19-20세기초에 일었고, 1차 세계 대전 와중에 연합군의 결속을 위한 정치적 타산으로 탄생한 영국의 밸포어 선언을 시작으로  UN에 의해 1947년 독립국가로 재 탄생했다.

이 와중에 현지에 살고 있던 아랍인 (팔레스타인)과 아랍 국가들은 이 계획에 동의하지 않았고 서구 강대국들의 일방적 지역 분할 계획은 오늘까지 이후 아랍과 이스라엘의 복수의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아랍과 이스라엘의 전쟁이 있을 때마다 이스라엘의 영토는 더 커지고, 현지의 팔레스타인들은 내몰리고 있다.  특히 1967년의 6일 전쟁으로 이집트의 영토였던 지금의 가자 지구와 시나이 반도, 그리고 요르단의 영토였던 요단강 서안지구 (West Bank), 시리아의 영토였던 골란 고원이 이스라엘의 점령지가 되었다.  이스라엘은 서안지구에 유대인 정착촌을 만들며 팔레스타인들의 마을을 잠식하는 식민 정책을 쓰고 있다.  영토와 주권이 불일치하는 어지러운 지역이 되어 있다. 

냉전체제 붕괴 이후 미국의 조정을 통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들을 두 나라로 인정하자는 평화의 해법이 때때로 제시되었지만 현재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미국에 의해 국가로 아직 인정받지 못하고 있고, 그래서 바티칸과 함께  UN의 단 두개의 참관국 지위를 갖고 있지만 때때러 제시된 평화안은 성전을 부르짖는 강경 무장세력들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있지 못하다. 

같은 땅에 수천년을 살아온 민족들이 평화공존의 해법을 마련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샘 해리스는 종교의 도그마에서 이유를 찾는다. 

계몽주의 이후의 과학의 발전과 실존철학자들은 신의 세상이 끝나고 인간의 세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가 잘 아는 "신은 죽었다"는 니체는 물론이고, 어니스트 베커(Earnest Becker)는 인간의 삶이란 지적으로는 영원하고 우주의 무한한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면서 육체적으로는 한시적이라는 "죽음의 테러" 속에서 살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 죽음의 테러에 인간은 종교, 마약, 그리고 일상의 바쁨으로 죽음을 잊는 전략을 구사한다고 주장했다.  종교와 문명은 인간이 한시적 인생에서 영원한 의미를 만들어내는 환상이라고 주장한다. 

종교가 왜 존재하고 사회적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한 많은 철학적, 사회학적, 심리적 설명들이 존재한다.   인터넷에서 수많은 추종자를 만든 조단 피터슨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그리고 미지의 혼돈(카오스)의 심리적 고통을 벗어나는 것은 심리적, 인지적인 질서의 세계를 만드는 것이고 종교는 이런 질서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인간의 사회가 진화하면서 발전시킨 심리적 사회적, 이상적 질서의 이야기가 종교 특히 기독교의 성서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인간의 진화의 정수이며 종교라는 형식을 통해 인간의 도덕적 가치와 삶의 의미가 구조화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에게 종교는 필수불가결한 인간의 조건이다.

반면에 신 무신론의 4명의 마부로 일컬어지는 리차드 도킨스 (Richard Dawkins),  크리스토퍼 힛첸스 (Christoper Hitchens), 다니엘 데넷 (Daniel Dennett)과 샘 해리스 (Sam Harris)는 고대 수렵과 농경 초기 (청동기) 시대에 만들어진 도그마인 종교는 빨리 버려져야 하는 낡은 그렇지만 위험한 이념으로 간주한다. 

인간의 생각 중에 다양한 모든 가치를 무시하고 하나의 이념에 충성하는 도그마 (독단주의)와 존재가 의미가 없다는 철저한 허무주의는 우리가 피해야 하는 위험한 것이다. 

학자들은 종교는 원시적 과학, 의료의 행위로, 사회 속에 협력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정치적 억압의 수단으로, 그리고 사회적 유대감을 촉진하는 수단으로 사회적 의미를 설명하여 왔다. 틀림없이 가나안 땅에서 출발한 유일신 종교들은 그들 커뮤니티의 유대감(bonding)의 기능이 짙다.   이들 종교는 민족/부족의 정체성이고 이는 신의 명령이다.  민족이 신이 선택한 선민이 되면 종족주의 집단주의 도그마가 지배한다.  신의 땅에서 벌어지는 이 폭력의 악순환에 대한 종교의 역할은 종교의 긍정적 가치를 옹호하는 조던 피터슨과 종교의 위험을 경고하는 샘 해리스 간의 토론에서 서 5년 전에 이미 토론되고 있는 이슈다 (Sam Harris vs. Jordan Peterson: God, Atheism, The Bible and Jesus 1-4편의 토론은 지적인 토론의 모범으로 나는 강력하게 추천하는 유튜브 동영상이다). 

그것이 샘 해리스가 설명하는 왜 중동에서 토지와 평화가 교환되는 이성적인 해결책이 마련되지 않는 이유다.  도그마한 종교는 이성을 마비시킨다.   문제는 이런 종교는 그 신학적 포장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불확실성과 인생의 고비마다 행하는 의식, 그리고사회적 정치적 기능을 하는 원시 샤머니즘의 원초적 욕구에 바탕을 두고 있기에 이런 인간의 한계가 존재하는 한 지속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옥스포드 대학의 사회학자 로빈 던바 (How Religion Evolved 가 설명하는 종교의 진화다.

종교는 진화하지만 인간의 원초적 욕망은 이성의 마비를 유발하는 도그마(독단주의)의 야만성을 포함하고 있다.  지금 이스라엘과 아랍의 또다른 전쟁은 조직화된 종교의 폭력성과 야만성의 또 다른 증거로 보인다. 

신이 약속한 성스러운 땅에는 젖과 꿀 대신에 피가 흥건하게 흐르고 있다.  신명기의 전쟁의 법칙이 재현되는 오늘, 유일신 종교의 성지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모습은 조금도 성스럽지 못하다. 나는 그래서 신도 성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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