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국민 눈높이에 맞는 정치개혁 반드시 이뤄내겠다. 첫째 불체포 특권의 포기, 둘째 금고형 이상이 확정될 경우 세비를 반납하겠다”고 정치개혁의 아젠다를 던지고 있다. 그가 “국민 눈높이에 맞는”이라는 수사를 사용하는 바와 같이 많은 국민들은 국회의원 “특권”의 폐지에 동의하고 이 사안은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공약이기도 하다. 어떤 사안을 “특권”이라고 지칭했을 때 이를 지지하는 국민이 많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누구도 특권을 갖지 않아야 법 앞에 평등한 사회다.
반면 국민의힘 당의 김웅 의원이 최근 불출마 선언을 하면서 “지금 정치인들이 헌법을 너무 우습게 여기는 것 같은데, 고작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잡겠다고 헌법상 제도를 우습게 여기는 것은 결단코 반대한다. 근대 보수주의의 뿌리인 17세기초 영국 의회주의 혁명 때 의회가 제임스1세를 상대해서 얻어낸 기념비 제도가 불체포 특권”이라고 설명했다. 국힘의당을 민주적 정당으로 볼 수 없고, 법치주의 원칙에도 벗어난 헌법을 우습게 여기는 포퓰리즘 공약이 의원 불체포 특권의 포기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남들이 그렇게 하고 싶어서 목을 매는 국회의원을 그만두는 이유를 법치주의 원칙에서 찾고 있다. 그가 국회의원 직을 던지며 전하고 싶은 간절한 호소는 작금의 정치 뉴스 범람 속에 묻혀버리듯 하지만 그는 우리 사회가 고민할 이슈를 던지고 있다. 김웅과 한동훈 누가 옳은가?
국회의원의 면체포 특권이 시작된 것은 영국의 13-15세기 중세부터다. 이때는 국민이 선택한 의원들을 보호하기 보다는 왕이 임명한 의원들을 보호하는 장치였다. 현대적 양원 제도가 정립하기 이전에 왕의 자문관(Advisors)들과 왕의 이해를 대변했던 귀족들이 오늘날 영국의 상원 (House of Lords)의 전신인 영국 의회 (Council)의 위원이 되었을 때 왕의 이해를 보호하고 정부가 정변에 휩싸이지 않게 하기 위해 도입되기 시작해서 김웅 의원이 말한대로 의회주의 혁명 때 국민이 뽑는 영국이 하원 (House of Common)의 불체포 특권을 쟁취하여 입헌군주제로 이전하는 과정의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제도로 정착되었다. 1603년 국회특권법 (the Privilege of Parliament Act)이 영국의 상하의원에 대해 불체포 특권을 공식화 한 역사를 갖고 있다.
초기에는 형사 사건은 물론이고 채무 불이행 등의 민사 사건으로부터의 불체포는 물론 면책 특권을 부여했지만 18세기 이후 국회 면책 특권의 범위는 축소되어 왔다. 현재 많은 나라에서 형사 범죄나 채무에 관한 민사 소송 등에 면책 특권을 인정하기 않고 있다. 터키(튀르키예)는 2016년 개헌을 통해 국회의원의 면책 특권을 완전히 폐지했지만 터키의 권위주의적 정부를 감안하면 본받을 사례는 아니다.
우리의 국회의 불체포 특권과 면책 특권은 미국의 연방 정부의 상하의원에게 적용되는 제도와 거의 일치한다. 의회 활동 중의 발언에 대해서는 면책 특권이 있고, 회기 중에는 불체포 특권이 존재한다. 다만 의회는 스스로 결정에 의해 국회의원의 불체포 특권을 포기할 수 있다. 즉 우리 국회의 면책 특권과 불체포 특권은 다른 나라에 비해 넓거나 특별하지 않다.
경찰, 검찰이 행정부에 귀속되어 있고, 기소권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행정부를 견제해야 하는 의회가 자유로운 활동을 해야 하고 때로는 행정부를 비판해야 한다는 점에서 최소한의 보호 수단을 갖는 것은 삼권 분리와 균형의 제도에도 부합한다. 과거 불체포 특권은 표현의 자유가 존중되지 않고 법치가 불안정한 상황에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안정장치이고 시민혁명의 기념비적인 성취임에 틀림없다.
행정부의 모든 권한을 갖는 대통령에 대해 특정 범죄를 제외하고 기소를 할 수 없다는 보호 장치를 두고 있고, 법관이나 검사들이 탄핵에 의하지 않고 임기가 보호되는 것을 감안하면 의회의 면책특권과 불체포 특권을 “국회의원 특권”으로 일방적으로 불합리한 특권적 제도로 몰아가는 것은 맞지 않다. 우리의 이 제도는 세계의 대부분의 민주국가에서는 갖고 있는 아주 평범한 보편적 제도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의원 불체포 특권이 국민들로 비난을 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당연히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에 대해 국회가 국민의 정서에 반해서 의원들의 불체포 특권을 보호해준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의회는 국회 본연의 임무가 아니라 임기중 불체포 특권을 활용하기 위해 회기를 연장하거나 새로 개시하는 “방탄 국회”를 열기도 하고, 무기명 투표를 통해 당파적 이해나 의원들의 비뚤어진 동료 의식으로 체포동의안을 부결시켜 법치를 훼손하고 있다는 것이 불체포 특권이 의원 특권으로 공공의 적이 된 이유이다.
그렇다면 김웅 의원의 호소, 민주주의의 기념비적 성취이자 헌법의 제도인 국회의원의 면책(The Parliament Immunity)과 불체포 특권(Freedom from Arrest)을 소중히 해야 한다는 법치주의 가치와, 국회의원 특권 폐지의 제일 상단에 올라있는 불체포 특권 폐지 주장 중에 어느 것이 옳은가?
이 판단을 하려면 이 제도가 왜 민주주의가 성숙한 다른 나라에서는 국회의원들의 부당한 특권으로 사회적 이슈가 안되는지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다른 나라도 의회는 본질적으로 당파적이다. 의회란 국민의 의사를 반영해서 국정의 일부를 담당하지만 본질적으로 정당들이 정권을 잡기 위해 경쟁하는 곳이다. 따라서 우리 국회에서 당파적 표결을 하는 것을 무조건 비난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우리나라의 의회에 고질적인 문제가 무기명 투표다. 국회의원은 지역구민을 대표해서 표결에 참여하는 대의정치의 수단이기에 대부분의 나라에서 국회는 무기명 투표를 행하지 않는다. 이점도 우리나라에서 국회의원들의 비뚤어진 동료애나 당파적 표결을 시민들이 선거를 통해 책임을 묻지 못하게 하는 이유이다. 하지만 이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다른 나라에서 의원의 불체포 특권이 의원들의 특권으로 인식되지 않는 이유는 우리나라처럼 수사단계에서 확정판결 전에 피의자를 구속하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특히 폭력의 즉각적인 위험이 없는 화이트 칼러 범죄에 대해 검찰이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기 때문에 체포 동의안을 표결할 일 자체가 발생하지 않는다.
미국의 공화당 대선 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금 40여건의 형사 범죄 위반 혐의로 기소되어 있다. 그의 혐의는 선거 결과를 뒤집으려는 음모(Frauds)와 권력 남용, 기밀 문서의 불법 소지와 증거 인멸 시도 등 모두 심각한 것들이다. 그의 범죄 혐의는 헌법 질서 자체를 부정하는 중요한 범죄이자, 증거 인멸과 위증을 교사한 혐의로 우리나라의 검찰의 기준이면 사전 구속영장이 청구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그 누구도 트럼프가 사전구속 영장의 대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2020년에 이루어진 의회 난입 사건에서 비롯된 그의 범죄 혐의가 3년이 넘어서 최근에야 기소된 것은 시민에 대한 범죄 혐의를 확정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 증거와 법리 검토, 그리고 배심원들의 동의를 얻어내는 신중한 절차가 필요한 일인지를 보여준다.
지금 전쟁을 치루고 있는 이스라엘의 이스라엘 수상 베야민 네타냐후는 뇌물, 직권남용, 정치자금법 위반 등 정치인으로서는 치명적인 중한 범죄혐의로 2016년부터 경찰의 수사를 받고, 2019년에 기소되어 2020년부터 4년째 재판 중이다. 하지만 이 기간 중에 수상으로 다시 집권하고 이스라엘 역사상 최장기 수상으로 재임 중이다. 그가 수사 개시로부터 확정 판결을 받기까지는 10년도 더 걸릴 것이다.
이러한 사례들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피의자들의 방어권, 특히 헌법상 무죄추정원칙이 그 어떤 국민의 법 감정이나, 정치적 반대파들의 정치적 요구에 흔들리지 않는 가치로 존중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물리적 폭력이나 명백한 도주의 우려가 없는 경우 확정 판결전의 구속영장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인권유린으로 간주된다. 그런데 그런 원칙이 휴지조각처럼 경시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따라서 일반인은 마구 사전 구속되는데 국회의원들은 자신들의 결정에 따라 구속적부심 심사를 받지 않고 사전 구속을 피할 수 있기에 국회의원 특권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은 국회의 특권이라기 보다 검찰의 사전구속 영장 남발과 법원의 구속 용인의 관행이 만들어낸 사법권의 특권이자 사법권 남용으로 보아야 한다.
이 제도의 존속 여부는 결국 법치가 얼마나 정치와 독립해서 공정하게 확립되고 운영되고 있느냐로 귀결된다. 과연 한국의 검찰이 정치적 이해와 “국민 정서”라는 압력과 무관하게 기소와 사전구속 영장을 발부한다는 신뢰가 한국 사회에 있느냐는 것이다.
최근 검찰은 문정부 시절의 많은 사건에 대해 재수사를 하고 있다. 당시 청와대 고위직들의 울산 선거 개입 혐의가 그중 하나다. 그것은 검찰이 당파적으로 기소권을 행사했다는 의심에서 출발한다. 문정부에 의해 중용되었던 이성윤 전 중앙지검장에 대한 “김학의 불법출금 무마 의혹” 재판에서 2심까지 무죄가 선고되었다. 윤정부의 검찰이 정치적 기소를 했다는 의심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전에도 다른 글에서 언급했지만 보수와 진보 정권 모두 검찰총장과 법무장관이 국가가 아닌 정권(정파)의 챔피언이 되어 날뛰는 상황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한국의 검찰권이 공정하게 행사되고 있다는 믿음은 적어도 정권의 반대편에 있는 국민들에게는 존재하기 힘들다.
이런 검찰의 사전 구속 남발의 특권이 존재하고 검찰권이 당파적으로 행사되고 있다는 불신이 강하게 존재하는 상황에서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의 폐기나 포기는 민주주의 역사나 법치의 관점에서 바람직하지 않고 위험하다. 그런 관점에서 김웅 의원의 호소는 우리 사회가 더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이 문제의 해결은 국회의 문재가 아니라 검찰 개혁의 과제로 보아야 한다. 법치를 위해 임기가 보장된 검찰총장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매번 낙마하고, 정치검사들이 정치적으로 벼락 출세하고, 기소독점권을 행사하고, 사전 구속을 남발하는 관행을 어떻게 고칠 것인가 근본적인 해법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공수처라는 유명무실의 기구나, 검경 수사권 분할과 같은 가짜 개혁이 아니라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기소권의 남용을 견제하고, 사전구속 영장의 남발을 견제하는 검찰권력의 민주화로만 가능하다. 그 실현은 다른 나라와 같이 일반 시민들이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배심원 제도 (기소 심의 위원회)의 도입과 재판적 사전 구속을 아주 예외적 경우가 아니면 허용하지 않는 재판부의 확고한 인권 우선의 원칙의 정립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의원 불체포 특권은 의회의 특권이 아니라 검찰의 부당한 특권이 만들어내는 문제다. 모든 문제는 근본 원인을 고쳐야 해결된다.
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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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보이
좋은 글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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