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보다 퇴근이 더 짜릿한 이유

현대인이 사랑보다 해방감에 중독된 배경

2025.08.19 | 조회 1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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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오후 6시가 되면 우리는 거의 조건반사적으로 가슴이 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데이트 약속 때문이 아니다. 퇴근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우리는 로맨스보다 해방감에 더 강렬하게 반응하게 되었을까?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심각성이 드러난다. 2022년 혼인건수는 19만 2천 건으로 전년대비 0.4% 감소했고, 2019년 23만9159건이던 혼인 건수는 2020년 21만3502건으로 약 10% 감소했다. 팬데믹의 여파라고 치부하기엔, 이 감소 추세는 코로나 이전부터 시작되었다. 우리는 사랑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사랑할 여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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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라는 이름의 도둑

현대 직장인의 삶을 들여다보면 답이 보인다. 직장인 10명 중 8명은 직장 생활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고, 2명 중 1명(47.9%)이 일상 속 스트레스 수준이 높은 편이라고 응답했다. 우리는 하루 9시간을 직장에서 보내며, 그 시간 동안 축적된 스트레스가 퇴근 후의 모든 관계까지 침투한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스트레스 전이 효과(Stress Spill Over Effect)'라고 부른다.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개인의 감정과 에너지를 고갈시키고, 결국 사적 관계까지 영향을 미치는 현상이다. 연인과의 대화조차 또 다른 형태의 '업무'처럼 느껴지는 순간, 우리는 관계보다 고독을 선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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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감이라는 새로운 쾌락

퇴근은 단순히 일의 끝이 아니다. 그것은 완전한 자유의 시작이다. 아무에게도 설명할 필요 없고, 누구의 기대도 맞출 필요 없는 시간. 연애가 주는 설렘이 상대방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면, 퇴근이 주는 해방감은 오로지 '나'만을 위한 것이다.

이는 특히 20-30대에게 두드러진다. 이들은 취업 경쟁에서 살아남아 직장을 얻었지만, 그 대가로 개인의 시간과 에너지를 모두 소진했다. 연애는 또 다른 형태의 '투자'와 '관리'를 요구한다. 상대방을 이해해야 하고, 갈등을 해결해야 하며, 미래를 계획해야 한다. 이미 지친 현대인에게 이런 요구들은 부담으로 다가온다.

질 리포베츠키
질 리포베츠키

개인주의의 진화

사회학자 질 리포베츠키는 그의 저서에서 현대 사회를 "개인주의의 시대"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단순한 개인주의가 아니라, '방어적 개인주의'다. 사랑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지 않는 사회구조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적 반응이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것으로 조사됐다는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현대인들은 관계의 복잡함보다는 단순함을, 타인과의 교감보다는 혼자만의 평화를 갈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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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만든 연결의 역설

SNS와 온라인 플랫폼은 우리에게 끝없는 연결을 약속했지만, 역설적으로 진짜 연결에 대한 갈망을 줄였다. 언제든 누군가와 소통할 수 있다는 착각은 실제로는 깊이 있는 관계 형성에 대한 동기를 약화시켰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음'과 '연결하고 있음'을 구분하지 못한 채, 표면적 관계들 속에서 진정한 친밀감에 대한 욕구를 잃어가고 있다.

퇴근 후 침대에 누워 무한 스크롤을 하는 시간이 연인과의 대화보다 편안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자는 내가 원할 때 언제든 중단할 수 있지만, 후자는 상대방의 감정과 반응까지 고려해야 하는 '노동'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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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경제학

현대의 연애는 더 이상 감정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경제적 계산과 전략이 개입하는 복합적 활동이 되었다. 데이트 비용, 결혼 자금, 주거 문제 등 현실적 고려사항들이 사랑의 순수성을 압도한다.

반면 퇴근 후의 시간은 순수하다. 넷플릭스를 보든, 게임을 하든, 책을 읽든 그 시간만큼은 어떤 조건도 없다. 투자수익률을 계산할 필요도, 미래를 걱정할 필요도 없다. 오로지 현재의 나만을 위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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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형태의 친밀감

이것이 연애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새로운 형태의 친밀감을 만들어가고 있다. 서로의 피로를 이해하고, 각자의 해방 시간을 존중하며, 함께 있으면서도 혼자일 수 있는 관계. 전통적 로맨스의 틀을 벗어난, 현실적이고 지속가능한 사랑의 형태다.

퇴근이 연애보다 짜릿한 이유는 우리가 냉정해져서가 아니라, 오히려 더 현명해져서다. 우리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진정으로 지속가능한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혼자만의 시간이, 때로는 부담 없는 관계가 더 소중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우리가 갈망하는 것은 사랑 자체가 아니라, 사랑할 수 있는 여유와 환경이다. 퇴근이 주는 해방감은 그 여유를 되찾으려는 우리의 절실한 시도이자, 더 나은 사랑을 위한 준비 과정일지도 모른다.


현대인의 이 모순적 감정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젊은 세대들이 비슷한 딜레마를 겪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를 단순히 세대의 문제로 치부하지 않고, 사회구조적 원인을 파악하여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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