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디쓴 인생, 그러니 무엇이든 당장 쓰자고

낮과 밤이 바뀐 공대생의 모임 운영 이야기

2021.06.17 | 조회 6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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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생의 심야서재 뉴스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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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9 - 쓰디쓴 인생, 그러니 무엇이든 당장 쓰자고

‘내 이름으로 된 책을 내고 싶어요’라며 최단 시간으로 책을 낼 방법을 당장 알려 달라는 사람의 의뢰를 받는다. 사실 겉으로 보이는 의도보다 글쓰기 선생으로서 뭔가 그 문장을 손봐야 하는 건 아닌지 요리조리 해부하거나 분석함과 동시에, 다른 눈으로는 그 사람이 품은 본질적인 세계를 전체적으로 조망하려고 애쓰는 편이다. 어쨌거나 책을 내는 문제는 어디까지나 출판사의 입장이고 저자의 입장에서는 글을 쓰는 것이 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나는 결국 테스 형의(소크라테스) 질문법으로 그 사람의 무지를(자신의 필력이 얼마나 모자란지의 여부 따위?) 깨워줄 수밖에 없다.(미안합니다. 다음 기회에 책을 쓰심이 좋겠군요...)

결국 나는 해맑게 웃으며 이렇게 반문한다. ‘글을 잘 쓰면 됩니다.’ 이런 허무한 대답에 사람들은 알쏭달쏭 알듯모를듯한 표정을 지으며 ‘책은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는데요?’라고 되묻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마치 정해진 대본이 준비된 것처럼 ‘글을 잘 쓰면 됩니다’라고 미소를 지으며 화답한다. 말장난을 하자는 건지 싸우자는 건지 동문서답 같은 대답이지만, 엄밀히 따져 보면 틀린 답은 아니다. 글을 쓰는 근육, 그러니까 적어도 2년 이상 꾸준히 어딘가에서 치열하게 글을 쓰며 근육을 단련시켰는지, 그 부분을 명확하게 확인해야 과연 책을 낼 가능성이 있는지 간단한 진단이라도 내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을 체험해야, 언젠가 책을 낸다는 목표, 그 목표에 일관성 있게 다가서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해가며 자신만의 소재를 발굴해내고 또 과정에서 책이란 것도 만들게 될 테니까.

글을 잘 쓰면 된다는 말에 헛웃음을 짓다 다음 단계로 질문이 확장되기도 한다. ‘어떤 글을 쓰는 게 좋을까요? 저는 주제가 명확하지 않아요?’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다. 살포시 한 걸음을 내밀었는데, 솜사탕처럼 푹신한 구름 위를 통통 튀어 다닐 것만 같았는데, 밑으로 끝없이 추락할 것 같은 나쁜 기분. 그분의 신상에 관하여 아무런 정보조차 습득하지 못한 내가 어찌 영험한 점쟁이가 내린 점괘를 들려줄 수 있을까. 물론 내가 <1984>의 ‘빅 브라더’라면 그분의 일상을 일거수일투족 면밀하게 감시라도 했다면 어떤 실마리라도 찾아볼 수 있으련만, 나는 그가 누군지 전혀 모른다. 오늘 우리 처음 만난 사이 아닌가. 그분이 어떤 경험을 자신만의 영역에서 쌓아왔는지, 어떤 딴짓을 열심히 펼쳐왔는지,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는지, 진지하게 30분 만이라도 이야기를 나누어 본다면 얼핏 힌트라도 줄 수 있겠지만, 무엇이든 ‘열심히 써 보세요’라고 응수해 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안타까운 상황이다. 하지만 무엇이든 쓰라는 말이 틀린 건 아니다. 쓴다는 전제가 첫 번째로 중요하니, 무엇을 쓸까 고민하는 것도 물론 의미는 있겠지만, 고민만 하다, 처음의 마음이 흔들려 버릴 수도 있으니 일단 한 줄이든, 세 줄이든 쓰면서 찾아보자고 조언을 하는 것이다. 일단 쓰겠다는 마음만 확고하다면 어찌어찌 글의 형태 정도는 만들어낼 수 있다. 당신의 관심사, 사랑하는 일, 가까운 친구들과 평상시 주고받는 말들에 귀를 더 활짝 열어보라는 부가적인 조언을 함께 전하며.

여기까지 집중한 사람에게 나는 다음의 말을 건넨다. ‘다시 강조하지만 돈을 쓰는 게 중요합니다.’라고. 글을 쓰든 책을 쓰든 모든 과정엔 돈이 메신저 역할을 한다. 돈을 유용하게 혹은 의미 없이 낭비하든, 우리는 돈으로 어떤 일에 자신의 미래 가치를 실험해보는 것이다. 돈을 쓰면, 만족이든 후회든 어떤 감정 하나는 반드시 찾게 된다. 다시는 그런 헛돈은 쓰지 않겠다,라는 확고한 판단, 그 선생에게는 배울 점이 정말 많았어, 충분히 동기부여가 되었어,처럼 우리는 돈으로 자신의 미래에 긍정적 또는 부정적 판단을 미리 수행해보는 것이다. 돈을 쓰면 우리는 그 일에 보다 신중해지며 진지해지며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하려고 더 성실하게 매진하게 된다. 또한 글을 쓰는 일에 돈을 쓰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돈이 꾸준하고 성실한 습관의 토양을 갖추는데 자양분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무엇이든 꾸준하게 목표대로 수행한다면 당신은 실패보다는 성공에 가까워진다. 물론 실패를 겪지 않을 수는 없다. 주식 그래프가 양봉과 음봉을 짧은 주기로 오르락내리락 거리듯이 우리는 그렇게 성공과 실패를 안방처럼 자주 들락날락하다, 언젠가 크게 파도를 치는 경험, 그러니까 티핑 포인트를 경험하게 될 것이 분명하니까. 그게 만 5년 넘게 글을 써오면서 글쓰기 선생으로서 작가로서 강사로서 내가 얻은 고유한 경험 철학이다.

2년 동안 매일 글을 쓰는 도전, 아니 적어도 일주일에 세 번 정도는 글 쓰는 일에 나선다고 가정해보자. 2년이면 730, 중간에 고비가 찾아올 수도 있으니 30일은 눈감아 준다고 가정하여도 700일을 견뎌야 한다. 곰이 동굴에서 마늘만 먹으며 버틴 세월보다 7배는 더 극심한 고통을 견뎌야 하는 것이다.(그렇게 글쓰기가 어렵습니다. 포기를 선택하시겠습니까?)

어쩌면 당신의 세계에도 할 일을 늘 미루게 조종한다는 ‘팀 어번’의 원숭이 같은 녀석이 도사릴지도 모른다. 당신이 게으름에 빠질 때마다, 아침마다 침대 속에서 몸을 웅크리며 주저할 때마다, 원숭이는 당신의 옆에서 키득거리고 있을지도. 원숭이의 유혹에서 벗어나 당신이 700이라는 숫자를 완성하길 소원하겠지만, 미안하지만 순수한 의지만으로는 불가능하다. 90㎏에서 62㎏까지 몸무게를 감량한 나처럼 지독한 ‘꾸준 벌레’가 아니라면 당신은 정체불명의 의지를 돈으로 살 필요가 있다. 돈은 꾸준한 습관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기반이 될 테니까.

글을 쓰는 것, 책을 쓰는 것, 두 가지 요소를 떠받치는 돈의 소임까지, 그것들은 모두 ‘쓰다'라는 동사와 깊은 관련성을 가진다. 물론 여러분의 소중한 시간을 써야 하는 것 역시 ‘쓰다’와 관련이 깊다. 당신의 이름이 쓰인 책을 소유한다는 것은 오래된 게으름을 물리치고 인생에 의미 있는 시간들을 새롭게 배치하는 일이다. 그 과정을 버텨낸다면 당신은 어떤 이야기든 글로 쓸 재주를 갖추게 된다. 신비로운 ‘쓰다’의 법칙. 이 글을 읽고 인생의 맛이 쓰디쓴 커피처럼 느껴졌다면, 당장 카페로 달려가 투 샷 아메리카노 한 잔이나 마시며 쓴맛을 더 깊이 음미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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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8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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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nflower 🌻

    0
    almost 3 years 전

    쓰다- 글을 쓰다 시간을 쓰다 돈을 쓰다 인생이 쓰다 커피가 쓰다 답글을 쓰다 마음을 쓰다

    ㄴ 답글 (1)
  • 옥돌여행

    0
    almost 3 years 전

    2년 이상 어디에서든 치열하게 글을 써는 행위가 중요하다는 데에 공감합니다. 신글 1년더 장장기로 늘려야겠군요.^^투샷 아아 한잔 마시러갑니다~

    ㄴ 답글 (1)
  • 드림그릿

    0
    almost 3 years 전

    당신의 이름이 쓰인 책을 소유한다는 것은 오래된 게으름을 물리치고 인생에 의미 있는 시간들을 새롭게 배치하는 일이다. 그 과정을 버텨낸다면 당신은 어떤 이야기든 글로 쓸 재주를 갖추게 된다. ..깨우쳐주셔서 감사합니다.

    ㄴ 답글 (1)
  • 망망

    0
    almost 3 years 전

    이루기 위한 독한 심보! 저도 닮아가야합니다. 멋있습니다.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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