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는 BTS 원툴이다? 방시혁은 BTS 때문에 운 좋게 성공 당했다? 방시혁 하이브 의장에 대한 일반 대중의 평가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방시혁이라는 사람을 파면 팔수록, 오히려 방시혁이 없었다면 BTS도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SM엔터테인먼트가 상장했을 때만 해도 무슨 아이돌 소속사가 상장이냐는 말이 있었습니다. 이제 하이브는 그걸 글로벌 시장으로 확대했고 케이팝을 세계에 수출하며 시장을 리드하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단연 방시혁이 있습니다. 그는 어떤 사람일까요? 어떤 점이 엔터 역사를 뒤바꿀 성공으로 그를 이끌었을까요?
우리가 뽑은 방시혁의 성공 포인트는 (1)자유와 (2)위임입니다. 딱 보기에도 자유분방한 사람인 만큼 그는 타인의 자유도 중요시했습니다. 그래서 연습생 BTS에게 잔소리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자유롭게 자기 이야기를 음악으로 표현하라고 강조했죠. 해외 팬들은 BTS가 자기들이 공감할 이야기를 해줘서 좋아한다고 합니다. 자기가 못하는 영역은 적극적으로 위임했습니다. 빅히트 초창기에는 자신이 잘 하지도 못하는 경영을 하느라 회사가 망할 뻔했다죠. 이때부터 자기가 잘하는 음악과 프로듀싱만 하고, 경영은 전문가에게 맡겼습니다. 지금도 하이브는 산하의 다양한 레이블이 자유롭게 아티스트를 만들도록 위임합니다.
방시혁의 성공 포인트를 더 자세히 해킹해보겠습니다.
책만 읽던 아이가 기타를 잡자 일어난 일
방시혁은 어릴 때 내성적이고 방에서 혼자 책만 읽던 아이였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어린 방시혁의 사교성이 떨어지는 것을 걱정해 기타를 하나 사줬습니다. 그걸로 친구들과 어울리라고 말이죠. 기타를 잡은 방시혁은 음악에 빠지게 되었고, 중학교 때부터 친구들과 밴드를 만들고 자기가 만든 곡을 연주했습니다. 아, 물론 음악만 했던 건 아니고 공부도 항상 1~2등을 했다고 합니다. 아시다시피 방시혁은 경기고를 거쳐 서울대 미학과에 입학했죠. 공부를 잘했으니 집에서 굳이 잔소리를 할 것도 없었다고 합니다.
기타 때문에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었으니 부모님의 걱정을 덜긴 했습니다. 그런데 서울대까지 진학한 방시혁이 음악을 한다고 했을 때는 무척 놀랐다고 합니다. 그의 아버지는 돌이켜보면 자신들이 옛날 세대라 시대의 변화를 몰라 걱정만 한 것 같다고 합니다. 방시혁이 독학으로 익힌 작곡 능력은 부모님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수준급이었습니다. 대학생 방시혁은 유재하음악경연대회에서 동상을 수상하고, 그것을 계기로 작곡가 김형석과 박진영을 만나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합니다.
지금의 방시혁을 만든 가치, 분노
방시혁은 모교인 서울대 졸업식 축사에서 자신의 원동력은 ‘분노’였다고 합니다. 그가 가장 중요시한 핵심 가치가 분노라고 생각합니다. 이 분노는 적당히 하는 것에 대한 분노, 기존의 불합리한 관습을 그대로 따르는 것에 대한 분노 등 일상적인 불편에 대한 분노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화나게 만드는 그 작은 문제들을 기어코 해결해나가면서 지금의 하이브와 BTS가 탄생했습니다.
자유를 억압하는 것에 분노한다
1. BTS 음악의 핵심, 자기 이야기를 노래하는 것
방시혁은 기존 엔터사가 아티스트의 자유를 억압하는데 분노했습니다. 지금도 해외에서는 한국의 엔터사가 천편일률적으로 아이돌을 찍어내는 공장이 아니냐는 비판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케이팝의 글로벌적 명성을 이룬 BTS는 그런 자유 억압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먼저 방시혁은 아이돌도 자기들의 이야기를 음악으로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진정성 없이 그저 핫한 작곡가가 써준 곡을 앵무새처럼 따라 부르기만 해서는 차별점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유의지를 가지고 자기들의 이야기를 노래해야 팬들이 공감한다는 것이죠.
무슨 아이돌이 음악성이고 자기 이야기냐, 그냥 얼굴 보고 좋아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글로벌 팬들에게 BTS를 왜 좋아하냐고 인터뷰하면 압도적으로 많이 나오는 대답이 바로 공감입니다. 비슷한 나이대의 가수들이 자기들이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노래하는 것에 위안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그냥 고상한 척 하고 싶어서 팬들이 그렇게 답을 한 것이다? 그러기에는 너무 많은 수의 팬들이 똑같은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음악으로 자기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내내 말했던 방시혁의 선견지명이 맞았던 것입니다.
2. 자유로운 모습이 SNS의 바람을 타다
애초에 BTS는 방목형 아이돌로 유명했습니다. 방시혁은 초등학교 3학년 이상이면 사리분별은 다 할 줄 안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 큰 아이들에게 춤 연습해라, 노래 연습해라 이런 말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음악을 그렇게 강압적으로 누가 시켜서 하면 진심으로 자기 이야기를 음악에 넣을 수 있겠냐는 생각인 것 같습니다.
방목형 아이돌 BTS의 인기가 시작된 분기점은 ‘달려라 방탄’이라는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입니다. 네이버 브이라이브에서 방송되고, 나중에는 하이브의 위버스가 이 브이라이브를 인수합니다. 이 방송에서 BTS는 자유분방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글로벌 팬들의 호감을 사기 시작합니다. 리얼리티 쇼에서 얻은 긍정적인 반응을 바탕으로 BTS는 유튜브를 비롯한 각종 SNS에서 활발히 팬들과 소통하는데, 모두 소속사가 관리한 것이 아니라 멤버들이 직접 운영한 것입니다.
3. 내가 못하는 걸 전문가에게 잘 맡기는 것도 능력
방시혁은 2005년 JYP를 나와 독립해 빅히트를 세웁니다. JYP엔터테인먼트의 공동창업자였고, GOD와 비를 메가히트 시킨 직후였는데 말이죠. 빅히트 초기에 방시혁은 아이돌을 키울 생각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2005년, 2006년에는 실력파 가수였던 임정희와 케이윌이 빅히트를 거쳐갔고, 2007년에는 처음으로 자체 제작한 혼성그룹 ‘에이트’를 데뷔시킵니다. 남성 보컬 듀오인 ‘옴므’도 2010년에 데뷔하고요. 꽤 유명한 가수들이긴 하지만, 확실히 수익성은 높지 않았을 것입니다. BTS를 준비하기 전에 빅히트가 빚에 허덕였다는 것이 아마 이 시기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방시혁은 자신이 경영에는 재능이 없는 100% 음악 프로듀서라는 걸 깨닫고, 경영은 완전히 전문 경영인에게 위임해버립니다. 이때의 전문 경영인은 최유정 당시 빅히트 부사장, 김신규 이사, 그리고 윤석준 이사로 추정됩니다. 2010년에도 빅히트는 10명 남짓의 직원만 있을 때로 모두 창업공신들입니다. 특히 기존과 완전히 다른 비즈니스 전략을 펼친 건 윤석준의 공이 크다고 합니다. 컨텐츠 유통 스타트업을 창업한 이력이 있는 윤석준은 2010년에 빅히트에 전략기획 이사로 합류했습니다. 이 시기부터 빅히트는 수익성이 낮은 발라드 가수가 아니라, 아이돌 제작을 결단합니다. 이후 스토리는 다들 아시다시피 2010년에 보이그룹 멤버를 모집하는 오디션을 개최하고, 약 3년의 연습생 기간을 거쳐 2013년 6월에 방탄소년단이 데뷔합니다.
히어로 리서치 방시혁 2편은 다음 레터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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