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꼭도망일필요는없어]

세 번째 편지

2022.05.15 | 조회 21 | 0 |

지금우리가함께가라앉는다면

그러니 우리는 떠나자

있지, 기분이 안좋아질때면 너와 어딘가로 떠나는 생각을 해.

처음 가보는 도시로, 너무 춥지는 않은 곳으로 말이야.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곳, 눈을 돌리면 푸른 잔디가 넘실대는 곳.

좁은 골목길이 많고, 멀지 않은 곳에 바다가 펼쳐진 곳.

또 약간은 한적한 곳이면 딱이겠다.

아, 무엇보다 나를 아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는 곳이었으면 좋겠어.

지긋지긋한 사람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할 필요가 없도록.

언어도 모르는 낯선 곳에, 오직 너와 나만 툭 떨어진 기분일거야.

하긴, 너랑 같이 있으면 장소가 무슨 상관이겠냐만은.

 

별말없이 너와 걷는 상상을 하다보면,

그때 네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궁금해져.

내가 아는 너는, 우리 사이의 조용함이 마음에 들어,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기다가 나와 눈이 마주칠때면

귀엽게 미소지을 거야. 그 미소에 나도 해맑게 웃고 말겠지.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우리는 같은 템포로 걸을거야.

대화하지 않는 우리 사이에는 믿을 수 있는 사랑이 함께 걷고 있으니,

우리는 오해하지도 넘쳐흐르지도 않겠지.

적당한 사랑의 박자만 저벅저벅, 빨라졌다 느려지기를 반복하고

네가 앞서가면 나도 금방 따라갈테니 너도 아무런 걱정없이 나아갈거야.

 

날이 조금 더워져서 셔츠의 단추를 두세개 정도 끌러놓아.

어느새 해가 열기를 뿜어내기 시작하고, 너도 열심히 걷다가 갑자기 멈춰서서

가볍게 숨을 내쉬고, 이마에 맺힌 투명한 땀방울을 닦아낼거야.

그리고는 고개를 돌리면서 내 이름을 부르겠지. 잔뜩 미간을 찌푸린채,

너무 더운데 우리, 저기서 아이스크림 사먹으면 안되냐고.

네가 뒤돌아볼때면, 자꾸만 여름이 겹쳐져보여.

평소의 너는 상냥한 봄 같지만,

또 어떨 때는 작렬하는 8월의 태양같이 느껴지기도 하거든. 

햇빛이 스며들어 은은한 갈색으로 찰랑대는 너의 머리칼과

가려질리 없는 뜨거움을 막아보려 이마에 손을 얹을 때

언뜻 보게 될,

네 눈동자에 비친 내 모습.

내가 이렇게 환하게 웃어본 적이 있었나, 싶을정도로

밝게 빛나는 나의 표정. 찬란한 미소.

나는 섬광같은 여름을 닮은 너를 평생토록 잊지 못할거야.

네가 어떤 행동을 해도, 어떤 말을 내뱉어도,

나는 영원토록 너를 안아주고 싶은 마음만 커질 게 분명하잖아.

너도 그걸 알잖아, 안그래?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들고 다시 걷다가

(이제 한풀 꺾인 더위에 너는 약간 수다스러워져)

우연히 공원을 발견하고는 둘다 서로를 쳐다보고 눈이 커질거야.

공원 한가운데에 우뚝 서있는 나무가 정말 거대해서.

꼭 영화 이웃집 토토로에 나올법한 그런 신비로운 나무에 압도당해서,

아무말도 하지 못하는거지. 주변 어딘가의 벤치에 앉아,

나무를 바라보며 멍한 시간을 가져.

한 쪽씩 나눠낀 이어폰에서는 백예린의 노래가 흘러나오는데,

그 묘한 분위기에 우리가 숨쉬는 소리와 나뭇잎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소리만

공기 속에 감돌겠지.

 

나는 생각해.

이게 사랑이 아니면 뭘까?

같이 여행을 떠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계속 지켜보고 있으면 함께 떠나는 순간만을 상상하게 되는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게 사랑이 아니면 뭐라고 불러야 할까?

나는 다짐해.

언젠가 내가 누군가에게 사랑을 나누어줄 수 있게 된다면,

꼭 함께 떠나자고 말할거라고.

내가 더 이상 사람에 질리지 않게 된다면,

그래서 네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을 자신이 생긴다면,

그 어려운 말들을 입밖으로 꺼낼 수 있을거야.

한국어로는 쉽게 하지 못할 낯간지러운 표현들

거절당할까 지레 겁먹고 마음 속에 묻어둔 비행기표

여행이 꼭 도망일 필요는 없어

우린 구원이 필요한 게 아니잖아

무언가에 쫒기고 있는 게 아니잖아

우리는 우리만으로도 완전해질 수 있을거야, 다른 건 필요도 없어.

우리는 꼭 떠나자. 가라앉지 말고 떠오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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