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의 주간, 아홉번째 편지, 나눔글1.

2021.02.16 | 조회 8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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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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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고무장갑과 눈사람

“오늘 밤에는 많은 눈이 내릴 예정입니다.” 오후 다섯 시가 넘자 사무실의 분위기가 어수선해진다. ‘무사히 집에 갈 수 있을까?’ 마스크 너머 사람들의 눈빛이 흔들렸고 발걸음을 재촉하며 퇴근을 서두른다. 삼십 대인 나에게 서울의 ‘눈’은 일상을 불편하게 만드는 존재다. 하지만 오늘처럼 함박눈이 내리는 날에는 삼십 년 전 즐거웠던 그때로 시간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대여섯 살 즈음인가보다. 당시 살던 대구에서는 ‘눈’이 귀했고 쌓인 눈을 보는 것은 어려웠다. 눈이라도 오는 날이면 새끼 강아지가 된 것 마냥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그날은 오늘처럼 추운 겨울이었다. “일어나봐 눈 왔어.” 눈을 비비며 유리창 너머 내려 보는 아래층 마당에 평소와 달리 눈이 하얗게 펼쳐져 있었다. 드디어 눈사람을 만들 기회가 온 것이다.

서둘러 두꺼운 외투를 꺼내 입고 장갑을 끼자 엄마는 크고 빨간 고무장갑 두개를 꺼내 오셨다. 그리고 언니와 나의 입은 옷을 꼼꼼하게 검사하신 후 고무장갑을 끼워 주셨다. 정확히 표현하면 끼운 게 아니라 입혀 주신 것 같다. 작은 체구에 길고 큰 고무장갑은 외투 위로 올라와 팔꿈치 너머로 올라왔다. “얼른 나가고 싶어요. 이거 꼭 껴야 해요?” 마음은 급했지만 엄마의 마지막 확인을 통과한 후에서야 눈밭으로 나갈 수 있었다.

일층으로 내려가니 잔디 위로 하얀 눈이 카펫처럼 깔려 있었다. 평소 그곳은 내 몸집만한 주인집 개가 점령해 쉽게 가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날만은 엄마 언니와 함께여서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눈이 가득 펼쳐진 우리만의 공간에 당당하게 걸어갔다. 쌓인 눈을 조금씩 뭉치고 눈덩이를 굴리고 굴리니 차례로 엄마, 아빠, 언니, 동생 눈사람 가족이 생겼다. 친구 눈사람도 만들었을까? 지칠 새도 없이 쉬지않고 눈을 모아 눈사람을 만들었다. 그곳은 나만의 겨울왕국 이었다.

해가 내려갈 때쯤 눈사람 만들기는 끝이 난 것 같다. 몇 시간째 눈 속에 뒹굴었지만 손은 하나도 젖지 않았다. 엄마는 그 작은 손이 시릴까 옷이라도 젖을까 고무장갑을 단단히 끼워 주셨던 것이다. 그때는 몰랐지만 가끔씩 사진을 보며 느낄 수 있었다. 차가운 눈을 만지며 즐겁게 뛰어놀 수 있었던 건 빨간 고무장갑이 있어서 였다는 걸.

이제는 만날 수 없는 그 시절로 돌아가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고 마음 한쪽이 따뜻해진다. 함박눈이 내려 평소보다 길었던 퇴근길이지만 오늘만은 짧게 느껴진다. 이따가 먼지 쌓인 사진첩을 열어 보아야겠다.

 

* 글쓴이 소개 - 전지은

안녕하세요 세상의 모든주간 애독자 전지은 입니다. :)

제가 쓴 글을 누군가에게 보인다는 것이 너무나도 부끄럽고 두려웠어요. 가족이 읽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쓴 글을 용기 내 보냈는데, 이렇게 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읽어주신 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글을 시작으로 옛날 이야기도 꺼내본 저와 가족들은 오래된 사진첩을 다시 열어 보았답니다. 사진 속 어린시절의 그 모습도 느끼고 오랜만에 추억여행을 떠났다 온 것 같았어요.

저는 작년 까지는 눈으로만 글을 보다가 올해 부터 손으로 쓰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필사라는 새로운 취미도 생겼고 먼 미래에 작가가 되고 싶은 마음을 꿈꾸며 지금은 꾸준히 써보는 연습 중입니다.

제 메일은 jeaniejeon27@gmail.com, 인스타그램은 instagram.com/podosnje/ 입니다. 저는 회사원이자 심리상담사로 일을 하고 있으며, 소통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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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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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isoo park

    0
    about 3 years 전

    와 글쓰기 수업에서 나온 것 이군요! 좋으네요, 이런 것 보는 것이요.

    ㄴ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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