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
세번째 한 권, 두번째 편지를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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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10월의 마지막 날이 되었습니다.
원래 이 날은 우리나라에서도 점점 축제가 되어가고 있는 날이지만, 아무래도 마냥 즐길 수는 없는 날이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분들이 무거운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찌 보면 '싱크 어게인'이라는 책이 참으로 필요한, 그런 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다시, 또 다시, 우리 사회에 도래한 이 재난과 슬픔에 관해 생각해봐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이번달은 이런저런 글빚들이 워낙 많이 쌓여 있었던 데다가, 저의 생업이라 할 수 있는 일도 워낙 바빴던 터라 차분한 감상편 하나 남기질 못했네요.
그렇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저는 이 책을 읽고 쓴 몇 편의 글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편지는 제가 쓴 글을 대신 보내드리는 것으로 대신할까 합니다.
모쪼록, 평안한 날들을 회복하고 맞이하길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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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년간 자신이 틀렸다고 반성한 적이 없다면, 그 사람은 틀린 고집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최신 심리학 실험에 따르면, 지능이 높은 사람일수록 자신이 틀렸다는 생각을 더 하기 어렵다고 한다. 모든 사람은 때때로 틀린 생각, 잘못된 고정관념, 진실이 아닌 편향에 빠지지만, 똑똑한 사람일수록 자기는 '틀릴 수 없다'는 착각에서 헤어나오기 힘들어한다(애덤 그랜트, <싱크 어게인> 참고).
똑똑한 사람일수록 고도의 자기합리화로 지나치게 무장하여 결코 고집을 바꾸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지난 몇 년간, 심지어 그보다 더 오랜 시간 동안 자기가 틀렸다고 통렬하게 인정한 순간들이 기억나지 않는다면, 그는 자기만의 거대한 세계에 갇힌 거라고 볼 수 있다. 이 편향적인 확신은 날이 갈수록 강화되기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한 광신도가 된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 역시 만만치 않게 존재한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에 홀리느라, 자기 중심이나 줏대를 갖지 못하는 현상이 매우 광범위해졌다. 세상에는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너무 많아서, 하나에 몰입하는 게 손해처럼 느껴진다. 어느 하나에 몰두하려고 하면, 더 매력적인 다른 것들이 유혹한다. 2시간을 몰입해서 볼 영화 한 편 고르기도 쉽지 않다. 영화 한편을 고르려면, 그 시간에 볼 수 있는 다른 영화, 드라마, 웹툰, 유튜브들과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
그러니까 한편에는 고집을 가질 수 없는 무한한 유동성의 바다라는 게 있다. 이런 바다에서는, 자기 고집을 가진다는 것도 쉽지 않다. 어느 하나의 견해를 택하기 무섭게, 온갖 반론들이 세상에 넘쳐난다. 인터넷만 조금 뒤져보더라도, 거의 동일한 양의 서로 다른 입장에 대한 이야기들을 찾아볼 수 있다. 내가 하는 선택, 내가 가진 고집은 언제나 넘쳐나는 논거로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결국, 삶은 고집과 유연성의 전쟁터 같은 것이다. 고집을 가지려고 하다보면, 어느덧 잘못된 편향이나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자기 방어와 자기 신앙에 급급한 인간이 되어버린다. 반대로, 고집을 경계하며 선택을 열어두다 보면, 그 무엇도 선택하지 못하고, 몰입하지 못하고, 헌신하지 못한 채 자기 정체성 자체를 갖지 못하게 된다.
내가 생각할 때, 이 딜레마를 해소하는 핵심적인 태도가 '용기'이다. 자기 방어를 직시하며 자기가 틀릴 수도 있다는 걸 직시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동시에 수많은 선택들 가운데 어느 하나를 선택하여 나를 헌신할 용기 또한 필요하다. 그러한 헌신 가운데에서, 내가 다시 한 번 틀릴 수도 있다는 걸 직시하고, 다시 나를 부정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게 내가 틀릴 수도 인정하는 바로 그 자리에서, 다시 나를 새로운 것에 투신시킬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의 주체는 그렇게 자기 삶을 만들어간다.
자기합리화로 지나치게 무장하여 결코 고집을 바꾸지 못하는 사람한테는 배울 게 없다. 반대로 끊임없이 새로운 것에만 홀리느라 어느 하나 깊이 있는 선택을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배울 게 없다. 그러나 자신의 선택과 고집에 충실하면서도, 끊임없이 의심하며 유연하게 자기를 바꾸어갈 용기를 가진 사람, 그런 겸손함과 강인함을 가진 사람에게서는 삶 전체를 배운다. 그런 사람에게서는, 삶을 걷는 법을 배운다. 바로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용기를 수혈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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