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의 주간, 두번째 편지, 성인동화.

하늘에서 고양이가 떨어진다

2021.04.21 | 조회 1.27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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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서재

정지우 작가가 매달 '한 권'의 책을 추천합니다.

하늘에서 고양이가 떨어진다

고양이가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언제부터, 어디에서부터 고양이가 떨어진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고양이는 언젠가부터 자신이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자기가 있는 곳이 지구의 하늘이라는 것도 알았다. 모르면 몰라도, 몇 시간 안에 자신은 지구의 바닥에 처박힐 거라고도 생각할 수 있었다.

처음 느낀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물론, 고양이는 자신의 천재적인 낙법 실력을 믿었다. 세상 모든 고양이들은 낙법의 귀재들이다. 높은 곳에서 뛰어 내려도 매끄럽게 착지할 수 있다. 고양이 삶에서의 수치가 있다면, 떨어져 죽은 고양이일 것이다. 어떤 죽음도 괜찮다. 그러나 떨어져 죽는 것만큼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고양이계의 상식이었다.

고양이가 두려움을 느낀 것도 그 때문이었다. 죽음 따위는 괜찮다. 어차피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 길고양이 삶이었다. 어제 함께 생선을 훔치던 고양이도 다음 날 골목 어귀에 죽은 채로 발견되곤 했다. 대부분은 병에 걸려 죽었다. 겨울은 고양이 학살의 계절이었다. 절반쯤은 겨울을 넘기지 못했다. 차에 치여 죽기도 했다. 그러니 죽음 따위는 익숙했다. 문제는 떨어져 죽는 것이었다. 아무리 낙법의 천재라도 이렇게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자신이 떨어져 죽을 거라고 생각하면, 그 수치심을 견딜 수 없었고, 엄청난 두려움을 느꼈다. 떨어져 죽을 바에야, 떨어지기 전에 자살이라도 하고 싶었다.

두려움 다음에는 의심이 들었다. 자신은 갑자기 왜 떨어지고 있는 걸까? 자는 사이에 새가 물어다가 자신을 놓아버리기라도 한 걸까? 아니면 매일 자신을 노리던 파란 지붕집 남자가 자기를 하늘로 던져버린 걸까?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에 오래 몰두하는 건 고양이답지 않았다. 그래서 금방 의문도 거두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새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구름은 한참 아래 있었다. 곁에는 태양이 있었다. 고양이는 잠시 넋을 잃고 자신을 비추는 태양을 바라보았다. 고양이는 햇살을 사랑했다. 이제 바닥에 닿으면, 그래서 낙법에 실패하면, 태양과도 영원히 이별이었다. 그렇게 고양이의 마음에는 두려움 다음에 의심이, 그 다음에는 슬픔이 들어왔다.

갑자기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 고양이는 자신도 모르게 구름에 들어왔던 것이다. 구름 속에 들어오니, 정신이 없었다. 슬픔을 느낄 겨를도 없었다. 순간 고양이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눈이 잘 떠지지는 않았지만, 구름들 사이로 다른 고양이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고양이라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저 무수한 색깔의 점들 혹은 얼룩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 무수한 점들 혹은 얼룩이 모두 고양이였던 것이다.

구름 속은 점점 어두워졌다. 바로 옆에서 천둥 소리도 들렸다. 몰랐지만, 고양이는 먹구름 속에 들어온 듯했다. 구름 속은 어두컴컴했고, 이따금 치는 번개로 번쩍였다. 번개가 번쩍일 때마다 떨어지고 있는 무수한 고양이들이 보였다. 고양이는 경악했다. 어째서 이렇게 많은 고양이가 떨어지는지 알 수 없었다. 심장이 벌렁거렸다. 그렇게 갑자기 구름에서 쫓겨났다.

온 세상이 어두컴컴했지만, 그래도 세상의 풍경이 보였다. 자신이 살던 동네였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인간들이 켜놓은 불빛들이 점점이 보였다. 가로등, 자동차 헤드라이트, 집 안의 불빛들. 고양이가 늘 밤이면 피해다니던 빛들이었다. 고양이는 여전히 주위에 다른 고양이들이 떨어지고 있나 열심히 둘러보았다. 그러나 고양이는 없었다. 내리는 건 비 뿐이었다. 고양이는 자신이 잘못봤던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무언가 이상했다. 몸의 감각이 없었다. 몸의 감각이 없다니? 감각이 없다는 걸 어떻게 안단 말인가? 감각이 있는 존재는 감각이 없는 상태에 관해 알 수 없다. 그런데 감각이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자신은 보고 있었지만 눈으로 보는 게 아니었다. 들을 수 있었지만 귀로 듣는 게 아니었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지만 정말 그랬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자기 자신이 빗방울이 되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고양이는 비명을 질렀다. 자, 이제, 두려움, 의심, 슬픔, 놀람은 경악까지 왔다. 그러나 이제 고양이에게는 입이 없었으므로 비명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빗방울이 된 고양이는 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비는 내리기만 하는 게 아니었다. 내리다가 옆으로 날아갔다가 다시 살짝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가기도 했다. 그렇게 점점 지상이 다가왔다. 자신이 살던 동네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르자 경악도 사라졌다. 그저 바람과 중력을 타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몸에 익숙해졌다. 시간 감각도 점점 사라져서, 얼마나 오랫동안 떨어지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고양이였던 시절의 기억이 어렴풋이 날 뿐이었다. 엄마 생각이 났다. 형제들과 함께 엄마를 따라 뒷산을 헤집던 시절이 기억났다. 형제 중 누군가는 어떤 여자가 잡아갔다. 누군가는 죽었다. 그래도 제법 몸집이 클 때까지 셋은 남아 있었다. 그들은 어엿하게 자랐고, 엄마를 떠났다. 얼마 뒤, 길에서 죽은 엄마를 보았다. 오늘처럼 비가 쏟아지는 날이었다. 고양이는 엄마를 한 번 핥았다.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

어째서 자신이 하늘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되었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었다. 적어도 자신은 떨어져 죽는 고양이는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빗방울이 되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빗방울이 된 고양이가 느낀 마지막 감정은 안심이었다. 결국 이제는 다 괜찮아졌다.

빗방울은 땅에 닿았다. 엄밀히 말하면, 땅 위에 있던 한 어미 고양이 시체 위에 떨어졌다. 어느 고양이가 다가와 눈을 감고 빗물을 핥았다. 빗물은 고양이의 목을 타고 몸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빗물이 된 고양이의 의식도 사라졌다. 어두컴컴한 목구멍이 그가 본 마지막 장면이었다.

고양이는 눈을 떴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고양이는 빗물 고인 엄마의 털을 핥았다. 처음 죽은 엄마를 봤을 때, 두려움이 들었고, 엄마가 아닐 거라 의심했고, 엄마인 걸 알자 슬픔에 젖어 들었다. 그저 얼룩인 줄 알았던 것들이 엄마 몸 속에 가득한 구더기인 걸 알았을 때 놀라 자빠질 뻔했고, 자신이 엄마 잃은 고양이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경악에 울부짖었다. 그 모든 감정이 지나가자, 비로소 엄마를 핥을 수 있었다. 어릴 적, 엄마 품 속에서 느꼈던 털의 감촉이 그대로 기억나니, 묘한 안도감이 느껴졌다. 그렇게 고양이는 마지막으로 안심하며, 그러나 그 모든 감정을 껴안고, 그렇게 엄마 곁을 떠났다. 마지막으로, 고양이는 자신이 비가 되어 참으로 기쁘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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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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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슬콩

    0
    almost 3 years 전

    가슴이 너무 먹먹하네요

    ㄴ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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