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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관한 영화라고 하면, 가장 먼저 <뉴월드The New World, 2005>가 떠오른다. 포카혼타스 전설을 스토리의 골자로 하고 있는데, 감독의 입맛에 맞게 여러 현실적인 측면을 더해 만들어진 영화이다. 내가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 있다면, 캡틴 스미스가 원주민들을 만나 독백을 이어가는 부분이다.
영화는 시종일관 잔잔하고 내면적인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다. 그는 원주민 공동체에는 자신들의 문명이 전혀 가지고 있지 못한, 모두 잃은 사랑과 덕목이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는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중상모략, 협잡, 탐욕, 이기심, 속임수 등이 없다. 그들은 순수하고, 의욕에 차있고, 활기 있고, 사랑하며, 의리와 우정이 있고, 신의와 믿음, 신념으로 무장하고 있다. 그런 내용의 독백이 이어지면서 원주민의 삶이 그려지는데, 이 부분은 몇 번이나 봐도 처음과 같은 감동이 느껴진다.
한때 나는 이 영화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라고 이야기했는데, 다른 것보다도 초반부의 그런 잔잔한 분위기와 독백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었다. 바다와 독백이란, 언뜻 듣기에도 무척 어울리는 조합인데, 그런 조합을 이 영화처럼 구현해낸 영화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여전히 어느 고요한 바닷가에 이를 때면, 자주 이 영화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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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하는 또 다른 영화들로는 지브리 애니메이션들이 있다. <붉은 돼지>의 낭만과 자유와 방탕이 있는 지중해라든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나온 바다 위를 달리는 기찻길은 평생 잊힐 것 같지 않은 이미지가 되었다. <마녀배달부 키키>의 항구 마을 또한 나에게 바다를 사랑하는 마음을 키워주었다.
청소년 시절 처음 보았던 그런 만화영화들에 힘입어, 나는 더 깊이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던 것 같다. 청소년기의 꿈은 늘 그런 바다 어딘가에 사는 것이었다. 바닷바람이 불고, 자유가 있고, 낭만과 아름다움이 있는 곳에 사는 일이었다. 그렇게 한번 얻은 꿈은 세월이 지나도 좀처럼 흩어지지 않는 것 같다. 나는 여전히 어느 바닷가에서의 삶을 동경하고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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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대한 또 다른 영화로는 <바닷마을 다이어리Our Little Sister, 2015>가 있다. 늘 새로운 가족에 관해 이야기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이야기가 다시 한 번 빛났던 영화였다. 영화의 메시지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바닷가의 2층 주택에서 만들어가는 세 자매와 또 한 소녀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무척 마음 깊이 닿아왔던 터였다. 그런 분위기의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 분위기의 삶이라고 하면, 다소 추상적이지만, 뭐랄까, 그저 바닷바람이 부는 것만으로 다 괜찮은 삶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현실의 온갖 복잡다단한 욕망과 욕심, 경쟁은 없을 것만 같고, 그저 매번 뛰어가 달려들면 되는 바다와, 함께 사는 사람들과의 잔잔한 애정, 그리고 삶을 이어가기 위한 적당한 돈벌이와 일 정도만 있는 그런 삶 같은 것이다. 나에게 바다는 이상하게도 계속 그런 잔잔하고도 투명한 어떤 삶을 상상하게 한다. 아래는 이 영화를 보고 썼던 글이다. 그저 별다른 이유 없이, 나는 내가 쓴 글 중에서 가장 사랑하는 글들 중 한편으로 이 글을 꼽는다.
https://www.facebook.com/writerjiwoo/posts/2102876556628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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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등장하는 영화를 마지막으로 한 편만 더 꼽으라면 <어바웃 타임About Time, 2013>을 꼽고 싶다. 이 영화는 아마도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많이 떠올렸던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특히, 나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대해 정말 수도 없이 생각했다.
시간여행자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에서, 아버지는 마지막 시간여행으로 아들과 함께 하고 싶은 시간을 하나 고른다. 그 시간은 아들이 어렸을 적, 둘이서 함께 달렸던 바닷가이다. 그는 그 순간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기쁜 순간이었다고 말한다. 아들과 영원한 이별을 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그 바다를 함께 달려보고 싶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만 나도 인생 영화라고 하면 이 영화를 고른다. 특히,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 많이 떠올리게 된다. 어떤 사람처럼 늙고 싶냐고 하면 이 영화의 아버지처럼 늙고 싶다. 어떤 사람처럼 사랑하고 싶냐고 하면 이 영화의 주인공처럼 사랑하고 싶다. 다른 어떤 화려하고 멋진 삶보다도, 이 영화가 담아낸 그런 소소한 삶을 살아내고, 마지막에는 바닷가를 다시 한 번 달리고 싶다. 그렇게 이 삶도 끝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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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주간'은 이제 막을 내리고자 합니다. 다음 번에는 구독자분들의 '나눔글'로 찾아뵙겠습니다. 바다에 대한 이야기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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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지몽
어바웃타임 외에 보지 않은 영화들이네요. 작가님의 글을 읽으니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바웃타임의 아버지보다 더 다정하고 멋진 아버지라 될 거라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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