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번째 한권, 두번째 편지, 한 권 리뷰.

2022.11.23 | 조회 1.04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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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서재

정지우 작가가 매달 '한 권'의 책을 추천합니다.

구독자님,

네번째 한 권, 두번째 편지를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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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11월도 저물어가는데, 올해는 참 이례적일 정도로 따뜻한 11월을 보낸다는 느낌이 듭니다.

자고로 날이 많이 추워져야 밖으로 다니고 싶은 마음도 줄어들고, 집에서 따뜻한 코코아 한 잔과 함께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들텐데 말이죠.

그러나 다르게 보면, 역시 그만큼 사랑하기 좋은 날들이 이어지는 셈이고, 사랑하는 만큼 사랑에 관한 책을 읽기에도 꽤나 어울리는 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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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님, 이번 한 권인 <사랑을 지키는 법>은 읽어보셨나요?

얼마나 괜찮은 독서 경험이셨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마 책에 담긴 여러 이야기 중 하나 쯤은 와 닿는 게 있었으리라고 생각해봅니다.

제가 지금 기억에 나는 대목은 글쓰기에 대한 것입니다. 나의 상처에 관해 글을 쓰는 일이 사람을 어떻게 치유하는지에 관하여 과학적으로 설명한 부분이 제 안에도 오래 기억에 남아 있네요.

그러나 역시 제가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조율'에 관한 부분입니다. 처음 그 대목을 읽고 너무나 충격을 받고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 저도 한창 육아를 하고 있던 중이라 더 그랬던 것 같기도 합니다.

마치 소울메이트가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며 조율해나가는 듯한 그 장면의 묘사가 여전히 아름답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이 "공감의 최고조"의 순간으로서 "조율"에 관하여는, 역시 제가 써두었던 글이 한 편 있습니다. 오늘도 그 글을 편지의 남겨둘까 합니다.

여러모로 타인과의 거리가 멀어지면서, 외로움이 커져가는 시대이자 계절인 것 같기도 합니다. 삶에서 '조율'의 순간들을 조금씩 발견할 수 있기를 바라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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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읽은 책 중 내 마음을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끌어당긴 책 딱 한 권을 꼽으라면, 조나 레러의 <사랑을 지키는 법>을 꼽고 싶다. 책 한권 읽어내는 일에 몰입할 수 없을 만큼, 여러모로 정신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는 요즘이지만, 이 책 만큼은 출퇴근 지하철에서 내려야 할 역을 놓칠 만큼 몰입해서 읽게 된 책이었다. 얼마 전 ‘사랑’에 대한 책을 출간했고, 지금도 ‘사랑의 인문학’을 쓰고 있는 입장에서, 이 책이 있는데 내가 또 사랑 책을 출간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회의마저 살짝 들 정도였다.

그동안 사랑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쓰기도 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그런 이야기들이 증명받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건져올린 일상에서의 사랑법이라든지, 다른 인문학적 기반을 통해 했던 사랑의 성찰이라든지, 같은 것들이 심리학이나 과학 연구 등으로 모두 증명되는 걸 보는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글은 전혀 딱딱하지 않고, 작가의 내면적인 이야기들이 함께 어우러져서 깊이 몰입하게 되기도 했다. 읽을 만한 책을 찾아헤매던 와중에 발견한, 오아시스 같은 책이었다.

책에는 사랑과 글쓰기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옮기고 싶은 이야기가 참으로 많지만 그 중 하나만 꼽자면 ‘조율의 순간’에 대한 부분이다. ‘조율’이라는 다소 낯선 개념이 사랑에 얼마나 핵심적인지를 이야기하는 부분에 깊이 공감했다. ‘조율’은 부모와 아이 간 일종의 상호작용을 의미하는 개념인데, 매우 예민한 차원에서 거의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자동반사적인 작용에 가깝다. 사소한 스킨십, 표정 변화, 시선의 이동, 목소리의 톤, 서로간의 냄새, 안아주는 위치나 자세, 등을 토닥거리거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속도 같은 것들이 아주 예민한 악기를 다루듯이 서로간에 ‘조율’되면서 ‘애착관계’가 형성되는 층위에 대한 이야기다.

부모와 아이 사이에 일어나는 이 엄청나게 미시적이고 무한한 ‘조율 과정’은 아이에게 “사랑이란 실체를 볼 수 없는데도 당연히 존재하며 항상 거기 있다는 믿음”을 주기에 위대하다. 조율의 순간은 단순히 우는 아이를 달래고 안심하게 되는 수준이 아니라, 그보다 더 심오하고도 광대한 차원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우리는 “애착 대상과 조율 관계를 발전시키면서 마음의 거리를 없애는” 방법을 배운다. “공감이 최고조”에 달하면서, 그 무수한 미세 감각들의 상호작용 안에서 실제로 '사랑'이 생겨버린다. 아이는 사랑의 존재를 믿게 된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사랑이 있다는 ‘믿음’을 얻는다.

아이가 부모와의 ‘조율’을 통해 얻는 이 사랑의 존재는 평생 아이를 지지해주는 마음의 힘이 된다. 인간은 아무것도 의지할 게 없을 때, 독립적으로 삶을 모험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무언가에 보호받고 있거나, 무언가를 지니고 있거나, 무언가 내면이 힘으로 가득 차있다고 믿을 때 모험을 한다. 새로운 것을 향해 삶을 집어던지고, 도전을 하며, 삶을 만들어나간다. 어릴 적 ‘조율’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된 ‘사랑의 존재’는 우리 인생을 내내 따라다니면서, 삶 속에서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근원이 된다. 호기심, 창조력, 상상력, 모험심 등이 이 ‘조율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감각이 마음으로, 경험이 믿음으로, 순간이 영원으로 되어가는 시점이 인간에게 있는 것이다.

누군가와 깊은 사랑을 나눈다는 것, 혹은 부모가 된다는 것은 이런 ‘조율’ 경험을 다시 소환하는 일 같다. 현실의 온갖 잡다한 의무들, 평가들, 강박들을 잊고, 사랑의 감각에 깊이 몰두하는 건 그 자체로 인생 전체를 통틀어서 이례적인 경험이다. 아이의 눈빛, 목소리, 몸짓, 숨소리, 눈동자의 그 무한한 감각들과 하나하나 연결되면서, 부모는 ‘조율의 순간’에 참여한다. 남는 건 눈앞의 사랑하는 존재 밖에 없다. 그런데 그 존재가 주는 경험이 바다와 같다.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은 무한하게 쪼개지며 관계맺는 조율의 순간에 참여하면서, 치유받는다. 사랑이 존재한다는 걸 다시 알게 된다. 사랑을 믿게 된다. 삶이 사랑이라는 공기로 채워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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