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 좋은 시절이었다.”
넷플릭스 인터뷰에 답하는 지미 페이지의 얼굴은, 보는 나도 절로 미소 짓게 만들었다. 부드럽게 굽이 치는 눈주름과 투명할 정도로 매끈한 피부, 자연스러운 은발은 또 어떤가? 초점을 잃은 오컬트적 시선에 흑마술사 같던 어둠의 흔적조차 찾아 볼 수 없다.
그는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이라는 신화를 창조한 괴물이다.
기타 천재로 못 치는 곡이 없고 20대 초반에 영국에서 제작되는 히트곡 대부분에 세션맨으로 참여하며 조기 성공을 거뒀다.
그는 음악을 마법으로 여겼고, 천국의 계단〈Stairway to Heaven〉을 살 수 있는 황금으로 묘사했다.
그런 지미가 약물과 오컬트에 빠진 것은 불가피한 사정이다.
레드 제플린의 총괄 프로듀서로서 〈Stairway to Heaven〉보다 나은 곡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과 전 세계를 도는 살인적 투어 속에서 밴드의 모든 비즈니스와 예술적 방향을 직접 핸들링했다.
이 거대한 과부하를 견디기 위해서는 현실의 감각을 마비시켜야 했고 그 방법이 헤로인과 오컬트의 맹신이었다.
레드 제플린의 공연을 보라! 특정한 리프와 리듬을 반복함으로써 관객을 집단적인 트랜스 상태에 빠트린다. 지미 페이지에게 공연장은 콘서트홀이 아니라 수만 명의 집단 에너지를 하나로 모아 폭발시키는 마법의 제단이었다.

그러나 부작용이 상당했다.
약물 중독으로 통제력을 잃은 지미 페이지는 로버트 플랜트의 아들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슬픔을 못 느낀 것이 아니다. 슬픔이 과도해서 자신만의 동국 속으로 숨어버렸다. 그는 음악과 주술과 약물을 구분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존 본햄의 죽음과 레드 제플린의 해체.
사람들은 존 본햄의 죽음이 레드 제플린을 해체시켰다고 말하지만 불꽃처럼 타오르던 비행선 레드 제플린의 추락은 그전부터 진행되고 있었다. 로버트 플랜트는 아들의 갑작스런 죽음이 오컬트를 추종하다 생긴 저주라 생각했고, 매일 밴드를 떠나고 싶어했다. 게다가 영혼의 동반자로 여겼던 존 본햄까지 죽자 지상 최고의 밴드라 할지라도 로버트에게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지미는 약에 취해 바닥을 헤매고 프로듀싱마저 존 폴 존스에게 넘어간 마당에 밴드 해체를 막을 것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쯤 되면 지미 페이지는 방관과 죄책감의 무게 속에 완전히 붕괴되어야 맞다. 돈이 아무리 많든, 기타를 아무리 잘 치든 상관없이. 하지만 지미는 파멸하지 않았다. 파멸 속에서 생환했다.
여기서 질문!
목숨보다 끊기 어렵다는 헤로인을 어떻게 끊었나? 지금 지미의 얼굴을 보면 마약 청정국과 같아 그가 중독자였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지미는 헤로인 중독도 오컬트적으로 해결했다. 1983년, 재활원 대신 자신의 저택에 스스로를 가두고 마약을 끊겠다 선언했다. 선언으로 될 것 같으면.. 그런데 이게 됐다.
더 이상 기타리스트로 기능할 수 없다는 공포와 딸 스칼렛 앞에서 술에 취한 유령처럼 살다가 사라질 수 없다는 다짐, 그리고 다소 독특한 현대 의학의 도움을 받았다.
스코틀랜드 출신 의사 메그 패터슨은 뇌 전기 자극 장치를 이용한 치료법을 개발했는데 뇌에 미세한 전류를 흘려 엔도르핀 생성을 촉진함으로써 약물 금단 현상을 획기적으로 줄여주었다. 지미 외에도 에릭 클랩튼이나 피트 타운젠트도 이 신경 전기 치료(Neuro-Electric Therapy)의 도움을 받았다는데…
그래서 정말 끊었나? 끊었다. 이건 확실하다.
헤로인 중독은 피부와 눈빛을 영구적으로 손상 시키지만 지금 지미의 얼굴에는 중독자 특유의 창백함이나 초조함이 완전히 사라졌다. 게다가 염색 없이 윤이 나는 이 은발은 그가 약물의 그늘에서 벗어났음을 상징한다. 이를 증명이나 하듯 2007년, <02 아레나 공연>에서 지미 페이지는 60세 중반의 나이에도 한 번의 실수 없이 완벽한 연주를 선보였다.

그를 심연에서 건져 올린 정말 중요한 과정이 빠졌다.
1980년 레드 제플린 해체 후 음반계에는 CD 열풍이 몰아쳤다. 레코드사들은 별다른 보정 없이 LP를 대충 CD로 옮겨 닮았는데 완벽주의자인 지미 페이지가 이걸 두고 볼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1990년, 갓 마약에서 탈출한 지미는 뉴욕의 스털링 사운드에서 레드 제플린 전곡을 ‘제대로’ 손봤다. 이것이 그 유명한 [Led Zeppelin Boxed Set]다.
마약과 오컬트 대신 집중할 것이 생겼으니 천재에게 이보다 좋을 수 없었다. 레드 제플린 음반의 디지털화 , 그것은 해체 후 파편화 된 밴드의 역사를 재정립하는 과정이었고 방관과 도피로 팀리더로서의 책임을 방기했던 과거에 대한 속죄였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다.
세기가 바뀌고 24bit 기술이 음질의 판도를 바꾸자 70세의 노장은 한번 더 리마스터링에 도전했다. 2014년부터 레드 제플린의 전 앨범을 발매 순서대로 리마스터해 발표했는데 음질만 높인 게 아니라 수십 년간 금고 속에 잠들어 있던 미발표곡들을 발굴해 함께 공개했다. 수천 시간에 걸친 마스터 테입 검수는 지미에게 기억의 정돈과 인생의 반추라는 선물을 가져다 줬다. 그리하여 이리 아름답게 늙은 것이다.
뭔가 잘못됐다.
금빛 태양과 같았던 로버트 플랜트는 세월의 풍파를 그대로 얼굴에 새기며 풍성한 대지의 노인이 됐는데 악마 추종자와 같았던 지미 페이지는 반지의 제왕 레골라스가 늙은 것 같은 은발의 노신사라니.
무엇이 지미 페이지의 환한 미소를 만들었을까?
니체가 이야기했던 어두운 심연 위의 외줄을 위태롭게 건너며 초인이라도 된 것일까?
그의 므두셀라 미소는, 자신의 그림자까지 사랑하기로 결심한 자가 짓는 ‘Amor Fati’ 의 증거일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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