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피레터 2.0 - 알고리즘이 이끄는 대로 여행을 떠나 보다

알고리즘이 이끄는 대로 여행을 떠나 보다

핸드폰 알람이 울리면 제때 꺼야 한다는 좋은 핑계 덕분에 침대 머리맡에는 늘 핸드폰을 둔다. 그러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핸드폰을 확인하게 되고, 내친김에 간밤에 쌓인 알람들도 확인하게 된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작고 붉은 알람에 손을 뻗는 그 즉시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끝도 없이 쏟아지는 알고리즘의 흐름에 올라타게 된다. 이것이 바로 어느샌가 내 삶의 일부로 자리 잡은 새로운 습관이다.

이제는 스마트폰이 없었던 시절에는 대체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냈는지 잘 떠오르지도 않는다. 기기를 켜기 전, 이것으로 무엇을 할지 고민하고 선택하는 힘은 어느샌가 사라졌다. 알고리즘이 보여주는 것을 일방적으로 소비하는 데만 정신이 팔린다.

어느 날 아침에는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알고리즘을 계속 따라가면 무엇을 보게 될까? 유튜브 영상 댓글을 보다 보면 ‘원래 유튜브에서 보려던 영상은 따로 있는데 알고리즘을 따라가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는 댓글을 심심찮게 보게 된다. 나는 어떨까? 원래의 의도와는 얼마나 멀리 떨어진 곳으로 여행을 떠나게 될까?

그래서 한번 알고리즘이 이끄는 여행 경로를 추적해 보기로 했다. 우선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보이는 알람을 따라 인스타그램 앱을 켰다. 몇 없는 알람을 훑어보는 데는 0.5초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추천 탭에 올라온 다른 사람들의 게시글을 확인하는 데 시간을 썼다. 내 취향과 꼭 알맞은 인플루언서가 올린 릴스 영상에 빠져들어서 해당 계정을 찾아가 다른 릴스들도 계속 시청했다. 더 이상 볼 게 없어진 후에는 해당 계정을 빠져나가 다시 추천 탭을 들어가 보았는데 그사이에 재미있는 해외 릴스가 새롭게 등장했다.

‘옛날 힙합 vs 요즘 힙합’이라는 짧은 제목을 단 짧은 길이의 유머 릴스가 너무 재밌었고, 특히 ‘옛날 힙합’의 예시를 소개할 때 나온 노래가 중독적이었다. 곧장 유튜브 앱을 켜서 원곡을 찾아 들었다. 노래를 들으며 댓글 창을 켜니 ‘옛날 힙합 vs 요즘 힙합 바이럴 영상 보고 온 사람’이라는 댓글이 가장 상단에 올라와 있었다. 댓글에 좋아요를 누른 이들은 모두 나와 같은 알고리즘 여행자임이 분명해 보였다.

노래가 너무 좋아서 두 번 재생했다. 노래를 듣다 보니 문득 내가 좋아하는 영상 하나가 떠올랐다. 올드 스쿨 힙합 바이닐로 디제잉을 하는 영상이라 지금 듣고 있는 곡과도 분위기가 얼추 비슷했다. 그래서 해당 영상을 찾아가 열심히 노래를 들었다.

그런데 노래를 듣다 보니 영상 오른쪽 한쪽에 알고리즘의 추천 영상이 눈길을 끌었다. 소셜미디어의 위험성을 소개하는 11분짜리 테드 강연이었다. 노래를 듣다 말고 바로 그 영상을 재생시켰다. 영상을 보다 보니 나도 모르게 반성하게 되었다. 사람의 평균 수명에서 수면 시간, 식사 시간, 근무 시간, 학습 시간을 제외하면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별로 없는데 우리는 그 귀한 시간을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는데 쓰고 있다는 걸 똑똑히 알려주는 영상이었기 때문이다.

알고리즘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 본 여행은 이 영상을 마지막으로 끝을 냈다. 0.5초면 확인할 수 있는 인스타그램의 알림을 들여다보는 매우 사소한 시작이 끝내는 몇 시간에 걸쳐 두서없이 이어지는 알고리즘의 흐름 속으로 나를 빠트렸다는 게 믿기 어려웠다.

알고리즘은 나의 취향과 성향에 들어맞는 것만을 소개해 준다. 그런데 이번 여행을 통해 알고리즘의 소개에서 맥락을 찾기란 어렵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알고리즘의 추천에는 처음, 중간, 끝이 없어 정확히 어느 순간에 알고리즘에서 벗어나야 할지 짐작할 수가 없었기 떄문이다.

목적지가 있는 여행은 우리의 현재 위치와 앞으로 가야 할 방향을 알려준다. 그런데 여행의 목적지가 없다면?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는 절대 알려주지 않고 그저 우리를 마냥 헤매게 하는 것만이 유일한 목적인 여행이 있다면, 그 여행은 얼마나 지칠까.

게다가 어쩌면 이 여행의 끝을 내기 위해서는 극단적인 방법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경로를 하나씩 기록하면서 원래의 목적에 비해 현재의 내가 얼마나 멀리 왔는지 확인하거나, 핸드폰 없이 밖을 나서보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알고리즘이 없던 시절이 잘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이미 알고리즘의 흐름을 타고 꽤 멀리까지 여행을 떠나온 것 같지만, 그래도 지금이라도 알고리즘과의 여행이 나를 어디로 이끄는지를 주기적으로 확인해 보아야겠다. 맥락도 없고 목적지도 없는, 그저 헤매기만 해야 하는 여행은 지치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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