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피레터 2.0 - 이런 평범함도 추억이 될 거야

이런 평범함도 추억이 될 거야

때때로 아무것도 아닌 하루가 무한정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무것도 아닌 하루란 정말 어떤 일도 생기지 않는 하루라는 뜻보다는, 뻔히 예측할 수 있는 일이 반복되는 하루에 가깝다. 대체로 어제와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서, 늘 비슷한 고민에 빠지고, 늘 같은 길을 걸으며 어제와 별반 다를 바 없는 루틴이 반복되는 하루 말이다. 이런 날을 반복해서 보내다 보면 도무지 이런 하루의 가치를 짐작할 수 없게 된다.

그러다 문득, ‘언젠가는 이런 단조로운 삶을 그리워하게 되는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이 떠오를 때가 있다. 특히 예전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사소하고 일상적인 순간을 보낼 때가 그렇다.

예를 들자면 꽤 늦은 밤, 술집이 양쪽으로 늘어선 좁은 골목에서 살짝 벗어난 길목에 위치한 헬스장에서 운동하고 난 뒤 술과 음식에 취해 들뜬 사람들 사이를 혼자서 유령처럼 지나치고 집으로 돌아갔던 순간. 아파트 단지로 이어지는 횡단보도를 딱 한 번만 건너면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나, 술집 바로 앞에서 피어오르는 담배 냄새, 눈이 부신 가게 조명들과 완전히 단절될 수 있었던 순간이 나의 평범한 일상이었던 적이 있었다.

헬스장을 더 이상 가지 않는 지금은 횡단보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자극과 고요를 편안하게 넘나들 수 있었던 마법 같은 순간이 꿈만 같다. 평범하고 흔하게만 여겨졌던 예전의 일상이 조금은 그립기도 하다.

타지에 사는 친구를 만난 뒤 전철을 타고 돌아오는 길 또한 마찬가지다. 지상철의 비중이 높은 1호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다 보면 집과 가까워질수록 객실 내 사람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창밖에는 숲과 논, 풀이 그려낸 녹색 풍경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는 언제 마지막으로 친구를 만나러 타지에 갔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지만, 그래도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는 항상 들뜬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주는 풍경이 늘 함께했다는 사실은 먼 훗날의 내가 한 번쯤은 그리워하게 될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특히 혼란스럽고 복잡한 마음이 한없이 커질 때가 온다면, 불안을 잠재우고 고요함을 선사해 주는 작고 사소한 풍경은 나의 일상에서 흔하고 쉽게 찾을 수 있었다는 점이 미래에 내게 위로가 될 것 같다.

이처럼 사소하고 평범한 순간들도 언젠가는 위안을 주는 특별한 추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염두에 두고 있으면 우리의 시야는 얼마나 더 넓어질까. 사소한 일에서도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발견할 줄 알고, 현재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걸 넘어 향후의 나에게 그것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함께 고민할 줄 아는 시선을 갖게 된다면 말이다.

만족을 찾기보단 불안을 먼저 떠오르는 고민 많은 사람으로서 이는 아직은 먼 훗날의 이야기이긴 하다. 그렇지만 아주 작은 시도를 조금씩 해내는 것만으로도 일상의 모든 일을 아름다운 추억거리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사소한 일에도 크게 감탄하기, 조금이라도 기분을 좋게 해주는 순간을 발견했다면 꼭 말이든 행동으로든 잘 표현해 두기 등등. 평범한 순간을 소중하게 확대해 주는 작지만 감탄스러운 방법이 세상에는 참 다양하니까.

이런 활동들이 쌓이고 쌓여, 미래의 나는 현재의 어떤 평범한 순간을 소중한 추억처럼 떠올리게 될지 궁금하다.

자유로운 코멘트 혹은 답신을 주세요!

오늘의 감상이나 떠오르는 것을 공유해주세요 😄

남겨주신 답장은 필진에게 공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