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피레터 2.0 - 도망치고 싶을 때 떠나는 여행

도망치고 싶을 때 떠나는 여행

어렸을 적, 여행은 내 인생에 감칠맛을 더해주는 향신료 같았다. 일상과는 다른 경험을 통해 내 삶을 더욱 다채롭게 만드는 요소였다. 어른이 되어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팍팍한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을 때마다 나는 여행을 떠올리곤 했다.

어릴 적부터 나는 승부욕이 강한 성격이었다. 어려움에 부딪히면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지, 도망치는 것은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가능하면 현재의 상황을 파악하고, 어려움을 타파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매번 다른 문제가 찾아왔기에, 각기 다른 해결책을 찾으면 되는 그런 인생이었다. 그러나 회사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매일 비슷한 문제에 고통받고, 시간이 흘러도 그 문제가 속 시원하게 해결되는 일이 잘 없었다.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힘들 때마다 무조건 맞서는 것 말고도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도망치는 것이 틀린 답이 아니라는 생각. 살다 보면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있는가 하면,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없지만 장기적으로 끈기 있게 물고 늘어져야 하는 문제도 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내가 마주한 문제들은 주로 후자였다. 그렇다면 이미 다양한 일에 지친 나는 어떻게 장기간 물고 늘어질 수 있을까? 정체된 일상을 환기할 기회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 기회가 바로 여행이었다.

견딜 수 없을 때, 현실에서 도망가고 싶을 때 나는 여행을 떠났다. 올해 초 잦은 해외여행과 국내 여행을 다닌 것도 그런 맥락이 반영되어 있다. 내가 지금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골머리를 썩히기보다는 새로운 환경에 자신을 노출시키고, 단순하게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며 여행을 하면 복잡한 머리가 정리되곤 했다. 일상의 공간에서 벗어나 바다를 보며 멍을 때리거나, 산속에서 눈을 감고 조용히 자연의 소리를 듣는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물론, 여행을 다녀오고 나면 도피처로 선택한 여행이 내 문제의 답이 아니라는 사실은 명확해진다. 하지만 한 방향으로 쌓여가던 스트레스를 여행을 통해 한 번 끊고 가는 것이 얼마나 정신 건강에 좋은지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느낄 수 있었다. 인생이란 결국 스스로 내 삶의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스스로를 더 알아갈 수 있는 여행, 혼자만의 여행을 떠나야겠다고 다짐한다.

어렸을 때부터 내가 겪었던 다양한 여행 경험이 지금의 나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어려움 속에서 도망치고 싶은 순간마다 떠나는 여행은, 나를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해주고, 다시금 힘을 내어 현실을 마주할 용기를 준다. 여행은 내가 현실에서 도망치는 순간, 나를 재충전시키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는 소중한 도피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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