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구원은 서울시의 생활권 계획 40년 역사를 정리하고 발전 방향을 모색한 ‘서울시 생활권계획의 변천과정과 발전방향’ 보고서를 발간했다. 생활권 계획은 1980년대부터 2023년까지 40여년에 걸쳐 시대 변화에 맞게 변화해 왔는데 초기엔 도시문제 해결이 주 목적이었다면 최근엔 주민참여를 통한 지역 맞춤형 도시관리로 그 초점이 옮겨졌다.
다만 현재 생활권 계획은 내용이 방대하면서도 중복되는 지점이 많아 핵심 내용 파악이 어렵고, 주민참여단 구성이 고령층이나 여성 등 특정 계층에 치우쳐 다양한 계층의 의견 수렴이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또한 자치구의 계획 수립 참여와 지역 특성 반영이 미흡하고, 법정계획으로서 위상이 불명확한 점이 문제로 꼽혔다.
이를 위해 보고서에서는 지역생활권계획을 자치구 단위로 통합하고 계획내용을 간소화하여 자치구가 주도하는 생활권계획 수립하고 다양한 주민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참여 방식의 다각화를 모색하는 등의 대안을 제시했다.
인문·사회적 특성까지 고려해 도시 미래상 만든
‘생활권계획’소생활권에서 권역계획까지, 단계적 진화 거듭
서울시 생활권계획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일찍이 1981년 구 단위 도시기본계획을 수립하면서 '생활권계획'을 도입하였고, 1990년대 '자치구 도시기본계획'에서는 '권역별 계획'을 통해 자치구를 몇 개의 생활권으로 구분한 바 있다. 2000년대에는 '권역별 발전계획'을 통해 서울을 5개 권역(대생활권)으로 구분했고, 2010년대에 이르러 5개 권역과 116개 지역생활권을 대상으로 '2030 서울 생활권계획'을 수립했다.
생활권계획이란 지역주민들의 실제 일상생활이 이뤄지는 공간적 범위인 생활권을 대상으로, 해당 지역의 물리적 환경 뿐 아니라 인문·사회적 특성까지 고려하여 바람직한 미래상과 실천방안을 제시하는 중간단계의 도시계획이라 할 수 있다.
가장 처음 생활권 계획이 나타난 1980년대에는 거대도시의 과밀화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생활권계획을 도입했다. 당시 서울은 인구 800만의 거대도시로 급성장했고, 기능이 도심에 과도하게 집중되어 교통혼잡과 생활환경 악화 등의 문제가 나타났다.
이에 서울시는 구 단위로 생활권계획을 세워 인구 2~3만 명 단위의 소생활권에 기반을 두고 도시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1981년 관악구를 시작으로 1983년까지 17개 구에 대한 ‘구단위 도시기본계획’을 수립했는데 이는 최초의 자치구 단위 생활권 계획이었다.
1990년대에 들어서는 지방자치제 실시에 발맞춰 ‘자치구 도시기본계획’을 법정계획으로 도입했다. 25개 자치구 전체 인구 평균이 37만 명에 달했는데 과도한 인구를 품을 수 있는 도시계획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주민참여와 상향식 계획기조를 반영하여 당시 자치구 도시기본계획에서는 자치구를 몇 개의 동질적 생활권으로 구분하여 ‘권역별 계획’ 수립을 시도했었다.
2000년대 이후에는 서울시가 주도하는 권역 단위의 생활권계획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2006년 ‘2020 서울도시기본계획’ 수립 당시 서울시는 5개 권역별 발전계획을 수립하여 권역 차원의 도시관리 방향을 제시했다. 이는 자치구의 지나친 요구를 견제하고, 서울의 균형발전을 도모할 필요성에서 비롯됐다.
2010년대 들어서는 권역과 지역생활권이 결합된 형태의 ‘2030 서울 생활권계획’이 수립됐다. 2018년 완성된 이 계획은 서울을 5개 권역과 116개 지역생활권으로 구분했다. 각 지역의 주민참여단을 구성하여 약 4,300여 명의 주민의견을 수렴하는 등 상향식 생활권계획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지난 40년간 서울의 생활권계획은 소생활권에서 출발해 자치구 권역별계획을 거쳐 서울시 5대 권역 계획에 이르기까지 단계적인 발전을 거듭해 왔다. 게획의 공간범위는 점차 확장됐고, 주민의 참여는 높이는 방향성으로 변화해왔다.
시대 변화에 맞춰 새로운 도전 직면
편향성 띤 참여, 전문가 의견 조화 등 대안 필요
2020년에 들면서 서울시는 급격한 시대 변화에 직면했는데 바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도시가 개인의 일상생활을 중심으로 도시구조가 재편되면서 생활권계획의 역할이 더욱 강조되고 있는 시점이다.
실제로 서울시가 2022년 12월 발표한 '2040 서울 도시기본계획'에는 지역 특성을 반영한 자족적 '보행일상권' 조성이 핵심과제로 제시되었다. 보행일상권은 서울시민이 걸어서 10~15분 내외 거리에서 주거, 일자리, 여가, 교육, 의료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서비스를 모두 누릴 수 있는 권역을 의미한다.
서울시 도시기본계획에 나타난 보행일상권 개념은 생활권 계획이 제시하는 116개로 구분된 지역생활권 개념과 일맥상통한데 이와 더불어 지난해 국토교통부는 일상생활권 단위로 도시계획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생활권계획’을 제도화 하는 방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렇게 된다면 그동안 비법정계획으로 수립·운영되어온 생활권계획이 법정화 되어 필요한 지자체별로 적절한 공간단위 생활권계획을 수립하여 운영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현재 생활권 계획은 주민참여와 자치구 협력에 기초한 상향식 도시계획을 지향했는데 편향적 참여로 인해 다양한 주민의견을 수렴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있다. 주민참여단 구성 현황을 보면 주로 50·60대(74%)로 수성됐고, 여성(62%) 비율이 남성(38%)보다 훨씬 만았다. 직업에서도 전업주부(47%)와 자영업(28%)가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또한 주민의견 수렴과 전문가 의견이 조화를 이루는 것도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용도지역이나 용적률처럼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은 주민의견보다 전문가 식견을 우선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주민과 전문가, 행정이 함께 참여하는 협력적 계획 수립 체계가 강화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역특성 반영한 자치구 생활권계획 정착이 관건
서울시 생활권계획이 앞으로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는 자치구와 지역의 특성을 존중하는 계획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기초지자체가 도시기본계획 수립권을 가진 것과 달리, 서울 25개 자치구 평균 37만 명의 인구를 가진 지방정부임에도 불구하고 개별 자치구의 도시계획 권한은 매우 제한적이다.
이번 연구에서는 향후 서울시 도시기본계획과 자치구 도시관리계획을 연결하는 중간단계 계획으로 '자치구 생활권계획'을 법제화할 것을 제안했다. 서울시는 '서울 도시기본계획'과 '권역생활권계획'을 통해 도시의 미래상과 부문별 계획을 총괄 조정하되, 지역생활권계획은 자치구가 주도하여 수립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서울시의 가이드라인 제시와 최종 승인권 아래 자치구가 계획을 입안하고, 지역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상향식 계획 수립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지역생활권별로 중복되거나 과다한 계획내용은 자치구 차원에서 간소화하고, 해당 지역 특색에 걸맞은 생활SOC 공급, 마을 정비 등의 내용은 강화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자치구 생활권계획의 실행력 확보를 위한 행정적·재정적 지원방안도 시급하다. 서울시는 생활권계획에 담긴 사업이 관련 위원회 심의를 거칠 때 우선 고려되도록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균형발전특별회계 등을 통해 자치구 생활권사업에 대한 예산지원을 확대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이처럼 서울시 생활권계획은 지난 40여 년간 인구 1,000만의 거대도시 서울의 다양한 도시문제에 대응하며 단계적 발전을 거듭해 왔다. 앞으로 서울시와 자치구 간 협력적 역할분담, 다양한 계층의 주민참여 활성화, 그리고 지역 특성을 반영한 자치구 생활권계획의 정착이 중요한 과제로 남아있다. 변화하는 도시환경 속에서 시민의 일상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생활권계획이 지속적인 발전을 기대해 본다.
정민구 저널서울 에디터 (journalseou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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