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해가 떴다.
전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요즘은 인간들이 많이 보인다. 작은 인간이 지나가다 말고 나에게 다가왔다. 자그마한 손가락으로 나의 표면을 찔러본다. “구멍이 뽕뽕 났다”고 말하는 작은 인간의 손가락이 통통하고 말랑하다. 큰 인간이 작은 인간을 안으려다 나를 본다. 큰 인간이 작은 인간을 보며 입꼬리를 올린다. 눈꼬리는 아래로 휜다. 저 얼굴을, 인간들은 ‘웃는다’고 표현했다. 대개의 경우 큰 인간은 저를 닮은 작은 인간을 볼 때 그런 얼굴이었다. 작은 인간들도 그렇다. 자신을 안거나 내려다보는 큰 인간에게 역시나 ‘웃는다’.
생각에 빠진 사이에 그 애가 나타났다.
그 애란, 매일같이 양쪽이 다른 신발을 질질 끌고 나타나는 남자앤데 매일같이 ‘웃는다’의 반대 얼굴을 하고 있다. 악에 받쳐 눈꼬리는 한껏 치켜 올라가고, 억울함을 이기지 못해 입꼬리는 아래로 향한다. 그래, 이것은 ‘운다’라고 했다. 저 얼굴은 우는 얼굴. 그 애는, 아니 눈앞에 다가왔으니 이 애는 매일 울고 있다.
이 애는 나의 위에 털썩 앉는다.
그러려니 한다. 마치 관성처럼 매일 반복되는 일과였기 때문에. 한참을 훌쩍이며 울다가 분연히 일어나 나에게서 떨어져 나간 조각을 주워 바다에 던진다. 유난히 거센 바람에 나는 아주 천천히 조금씩 깎인다. 얼마나 더 작아져야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는 진짜 ‘돌’이 될까? 나는 인간이었다가 돌이 된 게 아닐까? 쓸 데 없이 생각이 많잖아.
상념이 멈춘 건 내가 젖어서다.
이 애가 내 위에 올라 앉아 무릎에 얼굴을 묻고 소리 없이 한참을 있더니, 몇 방울의 물이 뚝뚝 떨어져 표면이 약간 젖었다. 비가 오나? 아니다. 비는 인간의 얼굴에서 흐르지 않는다. 이건 이 애의 ‘눈물’이다. 이쯤 되니 약간 우쭐해진다. 제법 인간에 대해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우직하게 제자리를 지키는 돌에게 너무 많은 말을 하지 말라.
이 애처럼, 눈물을 흘리며 알아듣지도 못할 말들을 주절대는 건 더 반대다. 씩씩대며 눈물을 주먹으로 닦다가 멈칫하더니 손을 내리고 가만히 있다. 바다를 보는 것 같다. 궁금해 곁눈질을 하니, 얼굴이 해와 바다의 색으로 물들어 있다. 처음 본다. 인간은 달처럼 희거나 흙처럼 어둡다. 왜 얘만 여러 색깔을 가진 걸까?
마침 이 애가 붉은 부분을 만지고 낮은 신음소리를 낸다. 저것도 안다. 저것은 ‘아픔’이다. 한 자리에 오래 있어 본 돌만이 알 수 있다. 작은 인간들은 늘 나에게 부딪치거나 걸려 넘어지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작은 인간은 ‘아픔’을 있는 힘껏, 요란하게 표출한다. 이토록 나지막하게 삼키는 작은 인간의 ‘아픔’은 처음 보았다. 대개는 혼자 뛰다가- 나와 부딪치고- 아프다며 시끄럽게 울다가- 큰 인간에게 안겨 사라진다. 그런 고로, 나는 이 작은 인간이 고요해 마음에 든다.
당신의 심심한 수요일에 까먹을,
줄귤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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