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 - 뜨개방 현상소

첫 번째 이야기. 여러분의 최근 사진첩엔 무엇이 있나요?

2022.08.14 | 조회 1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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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개방의 이모저모

실 말고도 뜰 수 있는 것들이 세상에 많더라구요. S와 J가 매주 글을 뜹니다.

 

J. 

7월 24일 - 7월 25일 

불과 하루 만에 꽃봉오리가 활짝 열렸다. 이 꽃의 이름은 익소라이고 꽃말은 '죽다 살아난', '지옥에서 돌아온' 이다. 물론 뻥이다. 내가 지었다. 왜 그렇게 지었냐면 말이죠..

이 친구는 일 년 전에 연희동의 어느 꽃집에서 데려왔다. 여느 때처럼 더위에 지쳐 터덜터덜 걸어가다, 나와는 달리 에너지있게 활짝 핀 꽃이 예뻐서 구매했다. 그리고 한두 달 후, 꽃이 모두 떨어졌고 지금 돌아보니 그때부터 우리의 진짜 관계가 시작되었던 것 같다.

물을 꾸준히 주는데도 꽃이 피지 않았다. 충분히 관심을 가지는데도 잎이 자꾸 축축 늘어졌다. 급히 영양제를 사서 꽂아두었다. 효과가 하나도 없었다. 잎이 늘어지다 쪼그라들다를 반복했다. '그래 갔구나.. 괜히 또 내 손에 들어와서 죽었구나.' 생각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버리기는 싫었다. 상태가 좋지 않은 걸 알면서도 물은 그냥 꾸준히 줬다. 별 기대는 없이 습관적으로. 잎들이 갈색으로 변하고 더 이상 자라지도 않았지만 나도 그런 건조한 마음으로 물을 주고 볕을 쐬어주었다.

그런데, 봄이 시작되는 4월 쯤이었나. 무심코 보다가 초록 큰 잎들 사이로 아주 작은, 빨간 잎 하나를 발견했다. 신기해서 만져봤더니 이 촉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아주아주 매끈하게 부드러웠다. 새 잎이었다! 새 잎이 돋아나고 있었다. 그 죽어가던, 축축 늘어지던, 아주 건조해서 끝난 줄 알았던 이 식물에서.

새 잎이 돋아난 이후 이 친구의 봄맞이 퍼포먼스는 아주 빠른 속도로 펼쳐졌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내가 이거 할라고 겨울동안 움츠리고 있었지 몰랐냐 비웃듯이. 여러 가지들에서 똑같이 생긴 빨간 아기 잎이 자라났고, 그 잎이 성장했을 즈음 사진 속 봉오리들이 하나둘씩 뿅 돋았다. 그리고 꽃이 폈다.. 마침내. 

내가 익소라를 그 때 놓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가끔 생각한다. 떠난 줄 알고 물을 주고 햇빛을 쬐어주는 일을 그만두었으면, 새 잎이 자라나고 봉오리들이 솟고 꽃이 피는 과정을 바라보는 이 행복을, 작지만 아주 큰 행복을 놓쳤을 거라고. 

며칠 전 봉오리가 또 하나 솟았다. 아마 곧 꽃이 필 것이다. 이렇게 맘껏 꽃을 다 피어낸 후엔 이제 다시 잎이 축축 쳐지겠지. 하지만 괜찮다. 다가올 겨울은 지난 겨울과 다를 것임을 알기에. 물론 똑같이 습관적으로 물을 주고 볕을 쬐일 거다. 다만 포근한 마음으로! 

 

S.

7월 30일

오늘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몇 걸음 옮기다 말고 우두커니 서서 하늘 사진을 찍는 사람을 보았다. 건너기도 촉박한 시간에 잠시 멈춰 하늘을 찍는 그는 조금 멋있어 보였다.

어디선가 이런 말을 들었다.

“하루에 하늘을 5번 이상 보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오묘한 색을 띠며 노을 지는 하늘을 보는 그의 표정은 행복해 보였다. 옅은 미소와 함께 한껏 하늘을 향해 들어 올린 손은 나로 하여금 하늘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오늘 하늘의 어떤 것이 그의 걸음을 멈춰 세웠을까.

똑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는 없다는 속담처럼, 하늘도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 떠 있는 구름과, 노을 지는 오늘의 하늘은 이 순간에만 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하늘을 보던 그분은 찰나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사진은 지금으로부터 딱 일주일 전, 7월 30일 저녁 하늘에 생긴 무지개를 찍은 것이다. 희미해서 잘 보이지 않지만 무려, 쌍무지개다! 무지개의 일곱 빛이 선명하게 피어오르던 때부터, 떴는지도 모르게 사라질 때까지 걸린 시간은 10분 남짓. 그 시간 동안 나는 운이 좋아 하늘을 볼 수 있었다.

뜨개방 현상소의 첫 사진으로 이것을 가져온 이유는 딱 하나.

혹시라도 이날 하늘을 보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사진으로나마 무지개와 하늘이 주는 경이와 순간의 행복을 감응하길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 문득 걸음을 멈춰 세워 올려다보고 싶게 만드는 그만의 하늘을 만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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