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편] 2022.06.04~05

포르투 여행: 게으른 여행객을 위한 여백이 있는 도시

2022.06.05 | 조회 3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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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보내는 편지

경험주의자 독일 교환학생의 해외 생활 일지입니다.

구독자 님 안녕하세요,

채은입니다. 4편은 포르투에서 쓰고 있어요.

저는 긴 여행들로 피로가 쌓인 와중에 포르투에 오게 됐습니다. 여긴 평화롭고 여유로워요. 게으른 여행객도 강박이나 죄책감 없이 즐길 수 있는 도시랄까요.

포르투에 온 뒤로, 왜인지 잠을 푹 자지 못하고 매일 꿈을 꿉니다. 그래도 쌓인 피로로 자연스레 밀려오는 낮잠은 좋네요.

 

오늘도 제 글과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1. 저녁 8시 반. 포르투의 도루강 앞에 앉아있다.

펜스 하나 없이 발아래로 보이는 강물이 무섭지만, 그만큼 위험한 일이 없어서 어떤 가림막도 없는 게 아닐까 싶어 안심하게 되는 아이러니.

그래도 옆에 다리를 쭉 늘어뜨린 아저씨처럼은 못 앉아 있겠다. 겁도 없는 인간.

 

어제도 밑에 아무것도 없는 장벽 위에 사람들이 잘도 앉아 있었다. 수진이도 사진을 찍겠다며 그곳에 올라가서 포즈를 취했다. 사진은 확실히 더 잘 나오는 것 같았다.

때로는 위험을 감수할 줄도 알아야 하는 것 같다.

 

 

2. 도루강의 강물은 투명하지도 푸르지도 않지만 여유로웠다. 물의 흐름마저 포르투 같았다.

평화로운 도시사람들의 말소리도, 경적 소리 없는 거리도, 카페나 식당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도 모두 잔잔한 물 같다. 서두르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분위기.

물론 그것 때문에 이틀 내내 숙소에서 낮잠을 푹 잔 건 아니다. 피곤이 그득그득 쌓여 있었을 뿐이다. 일주일 남짓 남은 정혈도 하나의 원인이었다. 그런 건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냥 받아들인다.

 

우리는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만 바꾸면 된다.

 

 

3. 삶에서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많진 않다.

 

하지만 그렇다면 자서전이 왜 나오고, 자기 계발서가 왜 나오겠는가. 대부분의 일은 내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흐르지만 그 첫 발을 떼고, 선이 이어질 점을 찍는 건 인간의 몫이다. 선이 직선일지, 곡선일지 혹은 그냥 고꾸라지거나 뚝 끊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까 그냥 가면 되는 거다. 나만 모르는 게 아니다. 이 세상 인간들 모두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그 점은 왜인지 안심이 된다.

 

서두르지 말고, 안되는 일에 너무 애쓰지도 말고. 흐르는 대로.

 

옆을 힐끔 봤더니 수진이도 글을 쓰고 있다. 무슨 글을 쓰는지 궁금하지만 일기 같으니까 곁눈질은 그만하기로 한다.

 

 

4. 내가 있는 독일로 여행 와서 여러 도시를 함께 다니고 포르투 여행에 온 수진이.

 

나야 독일에 있는 기숙사가 내 집이라서, 매일 외출을 하고 와도 밤에는 편안하게 쉬는 기분이 들었다. 수진이에게는 그마저도 매일이 여행이었겠지.

여행은 즐겁지만 동시에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다어떤 여행을 하느냐에 따라 다른데, 우리는 지금껏 꼭꼭 씹고 음미하기보다는 하나하나 놓치고 싶지 않아서 여러 음식을 입에 넣고 과식한 느낌이 있다.

아무렴, 자주 하지 않았던 형식의 여행이라서 신선하긴 하다.

 

 

5. 그런 와중에 포르투는 원래의 나 같은 여행이라서 좋다.

요즘의 나 같진 않고 예전의 나 같다. 무슨 차이인지 모르겠지만 좀 다르긴 하다. 나만 아나. 아무렴 좋다. 뭐가 맨날 그렇게 좋은지 모르겠지만 요즘은 매일이 좋다.

 

 

6. 환경이 나를 만드는 건지, 나를 구성하는 세계는 내가 조립하는 건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스물여섯의 나는 둘 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곳에 가서, 꿈꾸는 삶을 아무렇지 않게 꾸려가고 싶다. 언제 어디서 무얼 할지는 모르겠다.

 

독일에 온 뒤 흰 도화지가 하나 더 생겼다.

이전 도화지를 펼쳐볼 수도 있겠지만 난 이 도화지가 맘에 든다. 새 종이에 그림을 그릴 거다. 이전보다 더 다채로운 색으로 크레파스를 마구 문대고 있다.

나를 믿고 그냥 가보기로 한다.

 

 

7. 포르투의 여백은 나를 쉬이 잠들지 못하게 한다.

고민과 자유, 행복과 억압이 동시에 떠다닌다. 여백은 여백 그대로의 매력이 있는 법인데 말이다.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법을 더 배울 필요가 있다.


 

둘째날에는 언덕 공원에서 그림을 그렸고
둘째날에는 언덕 공원에서 그림을 그렸고
셋째날에는 도루강 앞에서 그림을 받았다.
셋째날에는 도루강 앞에서 그림을 받았다.
셋째날 밤은 이번 여행에서 가장 좋은 순간이었다.
셋째날 밤은 이번 여행에서 가장 좋은 순간이었다.

 

추신. 포르투는 색이 가득한 도시. 영감과 사랑이 잔뜩 샘솟는 것 같다. 여러분도 이 곳에 꼭 갔으면 좋겠다.

 

오늘은 포르투에서, 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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