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편] 2022.06.22~23

골똘히 성찰하기 2

2022.06.23 | 조회 38 | 0 |

독일에서 보내는 편지

경험주의자 독일 교환학생의 해외 생활 일지입니다.

그때 우리는 인도의 오래된 경전 <아슈타바크라 기타>의 말을 이해하게 된다. '삶의 파도들이 일어나고 가라앉게 두라. 너는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다. 너는 바다 그 자체이므로.'

- 류시화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지독하게  독일의 겨울에는 침대에 납작 붙어 있었다.

기상 시간은  11 즈음. 해도 빨리 지는데 이상하게 수면 패턴이 꼬였었다. 기껏 해봐야 다섯시간 정도 햇빛을 보았다.

 겨울엔 수많은 파도가 쳤다. 나를 둘러싼 상황과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마음에도 파도치는 일이 반복됐다. 과제를 하면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만남과 이별을 하는 과정에서, 마주치고 싶지 않던 나의 취약성을 만날 수밖에 없었다. 나의 취약성은 <회피하기>였다.

 

과제가 마음대로 되지 않을  부족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 수업을 빠지기 일쑤였다. 갖가지 변명을 대면서 수업에 가지 않을 이유를 만들었다. 어제 늦게 자서, 마음에  드는 완벽한 과제물을 하지 못해서, 부끄러워서. 그저 회피했다.

 

특정한 사람과의 관계가 마음처럼 풀리지 않을  좀처럼 갈등에 직면해 보기도 했다.

이제껏  사람을 보고 싶은 마음을 애써 외면했고 솔직한 마음을 말하는 것이 두려웠다. 끝장을  때까지 가서야 모든 것을 말했지만 이미 늦은 때였다. 상대와 나의 타이밍은 전혀 짝이 맞지 않는 퍼즐처럼 달랐다. 상대방을 비난하는 데에 최선을 다했고 나의 실수를 되돌아보지 않았다. 그렇게  진실한 마음을 들여다보고 성찰하는 시간을 회피했다.

 

매일 침대에 누워서 노래를 듣고 유튜브를 봤다. 파도치는 마음을 달랠 것들을 끊임없이 찾기 위해서였다. 

삶의 파도들이 일어나고 가라앉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서 그랬다. 고작 스물 중반이면서 파도 없이 안정적인 생을 바랐다. 나는 나의 관망자도, 중심도 아니었다. 거센 파도에 엎어지고, 얕은 파도 앞에서는 쓸데없이 잠수를 했다. 내가 바다  자체임을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지난 학기가 끝난 2 즈음에야 복잡하게 얽힌 실마리의 본질을 보고 싶어졌다. 상황의 여유가 드디어 마음의 여유를 만든  같다는 느지막한 핑계로 직면을 마음먹었다.

 

나는 처음부터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오랫동안 단정 지었다. 실패 후에 끝내 성공을 하는 과정형 인간이라고만 생각했다.

예를 들면, 대학교 1학년  학사경고를 받았지만 나중에는 학과 수석을 하고 장학금을   받은 자신을 칭찬하기만 했다. 나는 무언가를 끈질기게 해내는 인간이고 나를 성장시킨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실패는 그저 실패로 남았고 그로부터 무언가를 배우지는 않는 오류가 있었다.

하지만 부족함을 인정하고 당시의 내가   있는 범위에서 최선을 다했다면 분명 나쁜 결과는 피할  있었다. 그때의 나를 질책하고 싶지는 않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반성의 여지가 있었다. 나는 부족한 나를 남들에게 보이는 것이 너무나 무서웠다. 질타 받을까봐 두려웠고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끔찍하게 싫었다.

정작 나를 손가락질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를 구석으로 몰아넣고 있는 건 나였다.

 

상대에게 솔직한 마음을 전하는 건 발가벗겨진 기분이 들어서 싫었다. 거절이 두려웠고, 나와 상대의 마음이 다를까 봐 두려웠다.

상대방은 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정도 말로 이해할 것이라고 합리화했다. 10 마음을 받았던 상대는 갑자기 100 말하는  모습에 당황을 표했다.  사람이 바보 같다고 생각했고, 지금껏 함께한 시간이 전부 날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어렸다. 심지어는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도 다른데, 어떻게 상대와 내가 다를 것에 겁을 냈을까. 너무도 당연한 이치 앞에 고작 미물인 내가 오만했던 것이다.

 

 즈음 나는 행복 저금통에 한창 빠져 있었다매일 하루 하나씩 행복했던 일을 적어서 저금통에 메모를 넣었다. 그때 조금 깨달았다.

행복이 별것이 아니듯 나를 파도치게 하는 것들도 별게 아니라는 것을. 그냥  자체가 삶이구나.

나의 성찰은 예상치도 못했던 곳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독일에서, 채은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면 답장이나 댓글 남겨 주세요! 언제나 환영합니다.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독일에서 보내는 편지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 2022 독일에서 보내는 편지

경험주의자 독일 교환학생의 해외 생활 일지입니다.

 에서 나만의 뉴스레터 시작하기

결제/플랫폼 관련 문의: admin@team.maily.so

사업자정보 보기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