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편] 2022.06.11~12

이방인의 삶, 두번째

2022.06.15 | 조회 2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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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보내는 편지

경험주의자 독일 교환학생의 해외 생활 일지입니다.

구독자 님 안녕하세요,

채은입니다. 메일링을 시작한 지도 3주가 돼가네요. 시간이 참 빠르죠. 한국은 요즘 날씨가 어떤가요? 독일은 햇빛이 강하면서 동시에 선선한 날들이 계속되고 있답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미세먼지 없이 맑은 하늘이 가장 그리울 것 같아요. 그럼 오늘도 마음껏 글을 즐겨주세요.

 

추신. 메일이 제때 발송되지 않은 것을 오늘에야 알았습니다. 날짜를 잘못 기입하는 실수를 했어요. 매번 확인했는데 지난 주말에는 바빠서 발송 현황을 확인 못했더니 이런 일이 생겼네요. 앞으로는 더블 체크 꼭 해서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대신 이번 주 토요일에 본편과 함께 특별 편을 하나 더 보내드릴게요. 무탈한 하루 보내세요.


 

썩 마음에 드는 이방인의 삶이지만 모든 인생이 그렇듯 피할 수 없는 고단함은 여전하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고단함은 애석하게도 나의 성별과 관련 있다. 이 이야기는 구체적으로는 동양인 여성의 외국에서의 삶인 셈이다. 일단 먼저 밝히고 싶은 것이 있다면, 나는 화장을 하지도 않고 머리도 짧다. 뒷머리가 조금만 자라도 바로 쳐내는 화끈한 증상이 있다. 치마나 원피스, 구두 등 여성들의 전유물이 되어버린 의복이나 잡화를 선호하는 편도 아니다. 구구절절하게 서론을 늘어놓은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성들의 플러팅 타깃이 되는 아이러니를 말하고 싶어서다.

 

인파가 많은 곳에 가서 난데없이 윙크를 날리는 남정네들을 마주치는 건 일상이다. 할아버지, 청년 모두 너 나 할 것 없이 줄기차게 눈을 깜빡인다. 그냥 고장 난 인형 같던데. 주로 한국 욕을 지껄이면서 무시하고 지나가는데 요즘엔 나도 고장 난 윙크를 해줄까 싶다. 스스로 어떻게 보이는지 알면 되게 재밌을 것 같아서 미러링 해주고 싶은 마음이랄까. 그래도 무시가 늘 답이라고 생각한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전시장에서 전시 준비를 도와주다가 잠깐 담배를 피우러 나왔을 때, 멀리서 한 흑인 남성과 눈이 마주쳤다. 슬며시 웃길래 이곳 사람들이 늘 그렇듯 가벼운 인사 같은 미소라고 생각했다. 그러고는 혼자만의 흡연을 즐기는데 눈 아래에 새 신발이 보였다. 고개를 올려보니 아까 그 흑인 남자였다. 스몰톡을 걸어오길래 나 역시 그 정도 선에 맞게 대답했다. 상대는 지금 뭐 하고 있는지, 이곳에 왜 있는지 물어봤고 나는 졸업 전시회 수업이라 전시회 준비를 돕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외국은 워낙 스몰톡이 익숙한 문화이기 때문에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전에도 성별과 관계없이 스몰톡을 걸어오는 사람들이 많았고 모두 친절했기 때문에 딱히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 갑자기 지구로 외계행성이 떨어지듯 뚱딴지같은 소리가 날아와 박혔다. ‘What are you doing tonight? Would you like to spend some time with me? 오늘 밤에 뭐해? 나랑 같이 시간 보낼래?’ ??? .. ‘What the fuck.’

주변에 사람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혹은 친구와 함께 있었다면 분명하게 왓더퍽이라고 말했을거다. 더 가관은 그 이후였다. 나는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고 더 이상 어떤 말도, 대답도 하고 싶지 않다고 얘기했다. 그러자 과장된 몸짓을 보이면서 ‘Oh please~ relax relax. Don’t scared of me. I just want to relax you.‘ 뭐래 날 언제 봤다고 편하게 해주고 싶다는 거냐. 말이 안 통한다 싶어서 단호하게 대답을 날려줬다. 잘 하지도 못하는 영어는 긴급 상황이 되면 술술 나왔다.

’No no. I don’t need it. I just want to stop talking with you. I feel so uncomfortable and you made it. If you really want to relax me, just go and don’t say anything.‘ 그러자 그는 내 예상대로 황당한 표정을 지었고 나는 후다닥 전시장 안으로 들어왔다. 친구들에게 이상한 남자의 존재를 알렸고, 그는 투명창 너머로 나를 20분 정도 보고 인사하는 무의미한 짓을 하고 떠났다.

 

이외에도 많은 일이 있었으나 적당한 수위 조절을 하면서 글로 전달할 수 있는 정도는 이 정도이다. 하지만 이런 황당한 일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에서보다는 살만하다고 느낀다. 놀랍게도 한국에서는 더 한 일이 많았다.

그래서 생각했다. ‘어디서나 여성으로 사는 게 고단하다면, 이왕 내가 살고 싶은 도시에서 살자!’ 무슨 일을 겪어도 끝은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습관이 된 요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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