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학원에서 얻은 것(과 잃은 것)

생각보다 담담해서 놀랄 걸

2023.05.04 | 조회 662 |
2
|

삶은 구하기 나름

개잡부형 사회인이자 무장점 제네럴리스트의 존버와 공부와 삶의 일기

"너가 대학원 올 줄은 꿈에도 몰랐어"

대학원 첫 학기, 우리과 교수님 중 한 분이 내게 하신 말이다. 그분의 당황스러운 표정이 아직까지 기억난다.

난 정말 자주 '의외의' 선택을 했다. 여기서 말하는 의외의 선택이 어떤 의중이 있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전략이 있던 건 전혀 아니었다. 내 지인들이 평가하는 내 의외의 선택은 1) 중공업회사 홍보팀 입사 (정확히는 최종 합격) 2) 거기를 제끼고 다른 회사 인턴 3) 그리고 퇴사 4) 다시 창업 등이 있다. 지금 아는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1)번에서 멈췄을 거다.

개중 가장 의외의 선택이 바로 대학원 입학이다. 대체 2016년도의 구현모는 왜 대학원에 들어갔는가?

이유 하나. 내 공부력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그렇다. 나 공부 잘하는 줄 알았다. 괜찮은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검증하는 과정을 내가 즐길 수 있을 줄 알았다. 천부당만부당한 소리였다. 상대적으로 경쟁이 낮은 학부 수업에서나 먹혔지, 대학원에서는 전혀 먹히지 않았다. 세계 석학들이 쓴 논문을 소화하는 것도 힘들었고, 하필 그걸 영어로 읽어야만 해서 더 힘들었다.

이유 둘. 공부하는 나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공부하면 뇌의 알파파와 베타파가 승화해서 내 안의 흑염룡이 다이아몬드 드래곤으로 진화하고 나도 뇌섹남이 되지 않을까? 라는 마음이 조금 있었나보다. 정확히는 공부하는 삶에 대한 동경 아닌 동경이 있었다. 내가 그걸 동경하는 줄 착각했거든. 난 공부하는 나보다 돈 벌고 돈 쓰는 나를 한 2342423배 좋아했다.

마지막 이유. 내 판단력에 대한 자만이 있었다. 대학원 가기 전에 진짜 간을 많이 봤다. 학부 동기, 학부 선배, 다른 선배한테도 많이 물어봤다. 내가 '많은 정보를 획득한 줄' 알았다. 내가 획득한 정보 중에 일부는 편향됐고, 일부는 거짓됐고, 일부는 맞았다. 이걸 구별해내는 눈이 당시의 내겐 없었다. 이 상태에서 판단력에 대한 자만이 있다보니, 결국은... 따흐흑.

---

그래서 대학원을 통해서 얻은 게 뭐니? 물으면 5가지를 꼽을 수 있다 (영끌)

사람. 좋은 선배와 동기들을 많이 만났다. 아직까지 연락하는 동기들과 선배들도 있고, 교수님들도 있다. 세상이 좁다보니 이런 인맥들이 도움이 될 때도 있고, 자극이 될 때도 있다. 내가 그들에게 도움이 될런진 모른다.

학습하는 방법. 대학원 공부 시작하면서 해외 논문, 해외 아티클에 대한 접근방법을 깨달았다. 해외에서 어떤 키워드가 뜨면, 어떻게 접근해서 어떤 정보를 취득해야 하며, 어느 소스의 정보가 신뢰도가 높은지 등을 파악할 수 있었다. 산업 도메인뿐만 아니라 아주 최소한의 실험 설계와 통계 지식 그리고 논리적 사고도 배울 수 있었다. 체득과 별개임.

특정 도메인에 대한 기초 지식. 학부가 알파벳이라면, 석사는 문장 정도다. 그 사람의 전공 분야에 대해 문장 정도 쓸 줄 아는 사람이 된다. 그 산업이 어떤 메커니즘으로 돌아가고, 어떤 연구가 있고, 이론적 토대가 무엇인지 정말 '기초' 수준으로 알 수 있다.

대학원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알았다. 과마다, 전공 분야마다, 지도교수마다 당연히 천차만별이겠지만 기본적으로 어떤 동력으로 돌아가는지 알 수 있다. 다시는 궁금하거나 아쉽지 않다.

자신. 내 스스로에 대해 알았다. 나는 생각보다 깊게 공부하는 걸 싫어하고, 정답이 아닌 서술형 문제에 대해 오랜 시간 탐구하는 것을 질려한다. 오랜 시간 탐구하기보다 빠르게 테스트해보고 성취감 or 실패감을 얻는 것을 좋아한다.

---

그래서 대학원 다니면서 잃은 것은 무엇인가?

극한 상황이 아니라면, 대학원 '석사' 과정에서 무언가를 잃기 쉽지 않다. 그만큼 예측 가능한 루트란 뜻이다.

그래도 꼽자면 2년의 시간이다. 이게 가장 크다. 내 공부력을 테스트하는 데에 있어서 굳이 2년이나 투자해야만 했을까? 지도교수와의 관계라거나 내 1학기의 매몰비용이라거나 '겨우 1학기만으로 알 수 있을까?'라는 마음가짐으로 인해 무려 4학기 (2년)를 써야만 했다. 사실 1학기만 다니고 그만 두었어도 괜찮았을 듯하다. 2년만큼의 기회비용은 측정 불가다.

---

누군가가 대학원을 물어본다면

우선, 목표를 명확히 해야 한다. 교수가 되고 싶은 건지, 내 공부력을 테스트하고 싶은 건지, 학력 or 학벌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다든지, 직장에서 필요하다든지 등등. 그 목표에만 맞으면 후회없이 돌진하면 된다. 그냥 '그 분야가 재밌어보여서' 라고 하면 그냥 해외 논문 공짜로 돌아다니는 거 30개 영어로 읽어보면 감 나온다. 내가 환상에 젖었는지 아닌지.

좀 더 디테일하게 들어가보자. 우선 학부생. 당장 취업을 해야 할 정도로 경제적 상황이 궁핍한지, 내가 부모를 봉양해야 하는지, 내돈내삶이 되는지 돌아봐야 한다. 모든 걸 다 가질 수는 없다. 비슷한 시기에 취업한 친구들보다 경제적으로 쪼들릴 거고, 만약 부모님이 은퇴를 하신다면 가장이 될 수도 있다. 그때 대학원생이라는 신분은 족쇄이자 천벌처럼 다가올 거다.

더불어, 교수를 꿈꾼다면 미국 유학까지 가도 내가 경제적으로 무리 없는지 봐야 한다. 장학금은 불확실한 변수고, 부모님의 지원은 좀 더 상수에 가깝다. 집에 돈 있는지 봐라. 돈 없으면 웬만하면 가지 않는 게 비교적 현명하다 (로스쿨도 마찬가지다).

직장인. 직장인은 조건만 따지면 된다. 돈과 시간. 둘 중 하나가 애매모호하다 싶으면 굳이 갈 필요 없다. 만약, 커리어 피봇을 위한 투자라면 해볼 법하다. 다만 너도 알고 나도 알겠지만 석사가 그 분야의 전문가라거나, 그걸 기점으로 커리어 피벗을 한다? HR 권한이 실무 팀장에게 가고 있는 이 마당에 너무나 적용 불가한 전략이다.

사실 대학원을 묻는 사람의 절반은 "대학원 가고 싶은데 내게 용기 줄 근거가 필요해"라는 입장이 많다. 그래서 일부러 더 비판적으로 답한다.

나 역시 석사까지밖에 못했고, 우수한 학생이 아니었으며, 내 경험 안에 갇혀 있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나름 질문자에 대한 의리있는 답변 아닐까 싶다. 어차피 교수님들은 다 오라고 한다.

---

대학원이란 무엇인가

 

해서 나쁘지 않지만, 안 한다고 손해보는 곳은 아니다. 반대로 말하면, 해도 애매하고 안한다고 해서 흠이 아닌 곳이다. 2년을 박기보다 그 2년을 다른 데에 투자하면 경제적으로 좋을 수 있는 곳이다. 다만, 학습이라는 특성으로 인해 젊을 때 아니면 힘든 곳이기도 하다.

할 이유가 100가지면, 하지 않을 이유가 101가지 정도 되는 곳이랄까. 애매하다.

 

그럼에도 삶은 꽂히면 가는 거고, 답은 구하기 나름이며, 중요한 것은 미래를 추론하기보다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럼에도 삶은 꽂히면 가는 거고, 답은 구하기 나름이며, 중요한 것은 미래를 추론하기보다 만들어가는 것이다. 

웬만하면 맞춤법 틀린 부분 없을 텐데, 있으면 봐주셈. 

본업 : 비밀

부업 : 미디어 뉴스레터 어거스트

기타 : 인스타그램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삶은 구하기 나름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2개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 채언

    1
    12 months 전

    (마음 접기)

    ㄴ 답글 (1)

© 2024 삶은 구하기 나름

개잡부형 사회인이자 무장점 제네럴리스트의 존버와 공부와 삶의 일기

자주 묻는 질문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53길 8, 8층 11-7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070-8027-28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