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뒤에야 보내는 취준 일기

5년 전의 너에게

2023.05.10 | 조회 5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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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구하기 나름

개잡부형 사회인이자 무장점 제네럴리스트의 존버와 공부와 삶의 일기

"너가 취업한다고?"

내 삶에 가장 의외였던 선택이 대학원이라면, 2번째는 취업이었을 거다. 취업했다고 하니까 교수님은 "니가 그따구밖에 못하니까 그따구 회사밖에 못가지"라고 하고, 취업 준비한다고 하니까 "아 진짜? 회사생활 괜찮겠어?"라고 걱정해주는 친구들도 있었다 (진짜 걱정).

석사 졸업 논문 작성과 동시에 취업을 준비했다. 왜 취업을 준비했냐면... 우선 공부는 내 길이 아니었다. 역량도 부족하고, 성미도 맞지 않았다. 또, 돈을 벌고 싶었다. 정말 운이 좋게도 대학원에서도 프로젝트를 하면서 돈을 받았으나, 모두가 말하는 회사생활을 통한 규칙적인 근로소득을 창출해보고 싶었다.

어디로 가야 하오

그렇다면, 어딜 가고 싶었는가? 되는 데라면 어디든 가고 싶었다. 일단 들어가고, 안에서 뭐라도 하겠지라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지금 생각하면 '내가 거길 왜 가'라는 분야의 회사들도 많이 썼다. 편의점 유통업, 중화학공업, 자동차 회사 등 산업 분야를 가리지 않았고 홍보부터 영업 그리고 심지어 광고상품개발까지 온갖 직무에 들이댔다. 지금 쓰라고 하면 저렇게 쓰진 않겠지. 자기소개서를 쓰는 연습이었다고 치자.

자기소개서는 어떤 재료를 썼는가? 가능하면 성과를 숫자로 말할 수 있는 활동 위주로 적었다. 정확히는 a라는 문제 의식으로 b를 했더니 c가 됐고 d를 배웠다를 말할 수 있는가? 를 기준으로 삶을 정리했다. 구구절절 개인사는 제꼈고, 대학교 다니면서 했던 활동 (구글 뉴스랩, 미디어 콘텐츠 제작 활동 등) 을 적어냈다. 어차피 심사위원들은 세세히 보지 않고, 거칠게 본다. 개인사는 지겹고, 달라보이는 걸 적어야 한다. 다만, 너무 뻔해보이는 달라보이는 것 말고 (내성적인 성격을 고치기 위해 동아리 활동 블라블라).

내 글을 보는 사람들이 대부분 직장인일 거라, 자기소개서 이야기는 여기서 종료. 좀 더 공금하시면 댓글. 어영부영 몇 군데에 붙었고, 어영부영 몇 군데에 다녔고, 최종적으로 한 군데에 정착했다. 운 좋게 다 대기업이었다.

세상에 완벽은 없어도 최적은 있다

대기업과 스타트업 그리고 프리랜서와 중소기업 등의 장단점을 묻는 글이 인터넷에 많더라. 실제로 다녀봤을 때,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차이점은 크게 보면 1) 대기업은 설명할 필요가 없다 2) 스타트업은 으스대기에 좋다 3) 실속은 대기업이 100배 많다 4) 스타트업은 시스템이 없고, 대기업은 시스템이 있다 (평가 절하하는 경우도 있다만)

우선, 대기업은 설명할 필요가 없다. 무슨 일하니? 물으면 삼성전자 마케팅이야. 냉장고 팔아. 이렇게 이야기하면 끝. 스타트업은 으스대기에 좋다. 가치를 이야기하거나, 혁신을 이야기하거나. 대기업다니면서 이야기하기엔 좀 민망한 그것들. 역으로 보면, 그거 없이는 못 다닌다.

실속이 알차다. 대기업 연봉이 짜다고? 한국의 가구별 중위소득은 2021년도 월 250 내외, 대기업 노동자 중위소득이 월 445 내외고 대기업 신입사원 초봉이 연 4000 내외, 20대 노동자 평균 소득이 240. 대기업 중에서 짜다고 불리는 CJ가 ENM 신입사원 사무직 기준으로 4천 내외.

그러니까, 대기업 다니면 중위 소득 이상이 보장되는 셈. 심지어 20대 후반이니까 상위 30% 정도는 될 거다 (보수적으로 잡아도). 그러니까 대기업 다니면 어디 가서 월급 짜다고 이야기 안 하는 게 갈등 피하는 길이다. 심지어, 사내 대출을 운영하는 회사도 있고 회사별로 연계된 은행과 저금리 대출 상품이 있어서 레버리지를 만들기도 쉬우니 얼마나 좋은가.

또 다른 장점. 바로 동기다. 동기가 믿음을 주고 사랑을 주는 건 아닌데, 동기가 있다 보니 실제 업무 진행 시 도움을 받을 때가 종종 있다. 또 다른 피어 그룹을 만드는 건, 사회 생활의 지지대가 된다.

대기업의 채용 과정을 뚫고 온 친구들은 꽤 뻔하고, 꽤 다양하다. 여기서 말하는 뻔하다는 기준은 그래도 어느 정도 최소한의 사회생활을 위한 인격이 구축되었다는 것이다. 인서울 4년제 대학을 나오고, 면접관 앞에서 굽힐 줄 알고, 적당히 영어도 할 줄 알고, 적당히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 들어온다.

여튼, 다양한 필터링을 거치고 들어오는 만큼 어느 정도 qualified된 인재들과 교류할 수 있고 그들이 내 사회적 자본이 될 수 있다. 회사 내부도 마찬가지다. 회사에서 멍청한 사람은 있더라도, 진짜로 멍청하고 생각 없는 사람은 드물다 (이건 비단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과 스타트업도 매한가지다만). 대기업 안에서 10년 정도 버티고, 리더 자리도 꿰찰 사람이면 뭐 하나 잘 하는 건 확실히 있다는 뜻이니까 보고 배울 사람도 잇다.

신입을 위한 코스도 준비되어 있다. 교육이든 뭐든. 뭐, 모든 회사가 사바사고 팀바팀이다만 확률적으로 대기업이 더 좋은 건 맞다.

취할 건 취하고, 줄 건 줘야 한다 

다 좋은 게 어디 있겠는가. 단점도 있다. 안락하게 망하기 쉽다. 대기업의 매출은 사실 '뻔'하다. 반도체나 조선 그리고 해운 슈퍼사이클을 제외하면, 대기업의 매출은 전년도 매출을 기준으로 플러스 마이너스 N퍼센트 안에 있기 마련이다. 귀신같이 성장은 없더라도, 개같이 멸망은 없는 셈.

이 말인 즉슨, 내가 열심히 안해도 어느 정도 매출이 보장된다는 것이다. 이미 좋은 매출 구조를 만들었기에, 개인의 슈퍼플레이로 드라마틱하게 변하는 게 없다. 그러니까 개인 입장에선 스스로 절차탁마할 동기부여가 약하다. 내가 못하면 망하는 중소 및 스타트업과 명백하게 다르다.

또 하나의 단점은 대체가능성이다. 앞서 말했다시피 이미 매출 구조가 정해져있고, 매년 신입과 이직을 받아도 조직이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 건강하기 때문에 대체하기도 쉽다. 처음 3~5년이야 우리 조직이 키우는 인재지만, 그 이후부터는.... 어떻게 더 나은 인재로 대체시킬지 열심이다.

마지막으로 단점은 직무전문성이다. 대기업의 마케팅팀은 주로 '대행사'를 끼고 모든 것을 운영한다. 대기업의 대행사이다보니, 얘네도 대기업인 경우가 있다. 이 말인 즉슨, 대기업의 사무직 인재는 매니징과 보고에 특화되고, 실무력은 제로로 수렴할 가능성도 높다는 것. 이건 회사마다 다르겠다만, 내가 본 것들 기준.

천둥벌거숭이의 반성

지나고보니 내가 몇몇 회사를 거치면서 배운 건 분명히 있다. 우선, 내 오만방자함에 대해 배웠다. 세상은 넓고 고수는 많다. 대체 난 무엇을 알고 있다고 그렇게 나댔을까. 회사에 말없이 있는 사수들도 알고 보면 날고 기는 사람이고, 내가 안다고 생각한 부분은 일부이며 그 이외의 영역은 내가 아는지 모르는지도 파악 못하는 블랙박스와 같았다. 난 너무나 부족했다. 업무력부터 커뮤니케이션까지.

위대한 구조를 마주했다. 앞서 말했다시피 한국 대기업의 구조는 위대하다. 현재 대기업들이 3년 동안 신입을 안 받아도 회사는 잘 굴러간다. 한국 대기업이 글로벌 탑티어 기업들과 경쟁해서 이길진 모르겠다. 하지만, 생존력은 훨씬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1950년대 이후 한강의 기적과 함께 이렇게 올라온 거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한국 콘텐츠는 싸고 + 잘 만드는 데에 강점이 있는데, 한국 기업은 가장 효율적인 구조를 만드는 데에 도가 튼듯.

마지막으로 배운 것은 '사람'이다. 대기업의 지속가능성은 구조가 만들어낸다. 글로벌 경제 상황에 따라 잠깐의 침체는 있더라도, 구조가 있다면 버텨낼 수 있다. 대기업은 구조가 전부고, 실무는 사람이 전부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의 10%는 내게 달려있고, 40%는 내 파트너들에게 달려있고 50%는 내 인지 영역 바깥에 있는 무언가 (행운) 가 관장한다. 일은 사람이 전부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취준을 하고 보니 깨달았다. 갈 수 있다면 대기업에 가라. 한국 대기업들 욕 많이 먹지만, 여기만큼 좋은 데도 없다더라.

그럼에도 삶은 꽂히면 가는 거고, 답은 구하기 나름이며, 중요한 것은 미래를 추론하기보다 만들어가는 것이다. 

웬만하면 맞춤법 틀린 부분 없을 텐데, 있으면 봐주셈. 

본업 : 비밀

부업 : 미디어 뉴스레터 어거스트

기타 :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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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8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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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채언

    0
    11 months 전

    교수님 나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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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영지

    0
    11 months 전

    비공개 댓글 입니다. (메일러와 댓글을 남긴이만 볼 수 있어요)

    ㄴ 답글 (1)
  • bonnie

    0
    11 months 전

    비공개 댓글 입니다. (메일러와 댓글을 남긴이만 볼 수 있어요)

    ㄴ 답글 (1)
  • 무리

    0
    11 months 전

    비공개 댓글 입니다. (메일러와 댓글을 남긴이만 볼 수 있어요)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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