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셈은 남의 일입니다. 뺄셈만 직접 하세요.

자기 어필 시대에 역행하는 것 같지만, 인간관계 기본 중의 기본

2025.01.17 | 조회 1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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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는 왜 그런 무리한 청구서를 내밀었을까

실화입니다.

어느 대표님이 한시적 프로젝트에 고용한 매니저 F 이야기예요. 오랜 지인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누가 봐도 긍정적이고 의욕적이었고 꽤나 헌신적으로 매달릴 것 같았습니다. 물론 일 시작하기 전에 업무 내용과 보수에 대해서도 합의되었기에, 분위기는 좋았습니다.

그런데 일이 끝난 후, 대표님은 F에게서 황당한 요구를 받게 됩니다. F가 프로젝트 수행 과정에서 본인이 한 업무를 자잘하게 쪼개서 청구서를 가져왔거든요.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누구와 소통하는 데 얼마, 어떤 문서 작업에 얼마, 이런 식으로요. 이미 하기로 한 과업 범위를 벗어나는 새로운 일이 추가된 적도 없는데 말이죠. 

대표님에게 이는 F의 프로페셔널리즘으로 받아들여진 게 아니라 돈 줄 거 아니면 일 시키지 말라는 신호로 받아들여졌습니다.   

F에게는 자기 수고 하나 하나가 소중하고, 아깝고, 다 과금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대표님은 F에게 지급하기로 사전에 약속한 것만 다 준 다음, 관계를 정리했습니다. 이는 개인적인 신뢰를 잃는 데 그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똑똑하고 열정적인 F는 왜 그런 무리한 청구서를 내밀었을까요. 혹 서운함으로 인한 상처를 다스리는 방법이 엉뚱하게 나간 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사람을 바꿀 수도 있는 감정 "서운함" 

논어학교를 통해 사람들을 만나면서 배우게 된 인심(人心: 사람의 마음) 중에서 참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게 있습니다. 바로 "서운함"과 "원망"입니다. 가끔씩들 털어놓는 속내를 듣다 보면, 특히 "서운함"으로 인한 상처가 생각보다 크다는 걸 새삼 재확인하게 됩니다.

서운한 감정은, 스펙이나 지위나 재산 같은 "가진 것"과 무관하게, 누구에게나 생겨나는 감정입니다. 또 어떤 감정보다도 뒤끝이 오래 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짜증스럽고 열받는 일들은 한순간 화가 나도 욕을 하든 응징하든 무시해버리든 하면서 털어냅니다. 그런데 서운함은 좀 다릅니다. 

서운함은 잘 잊혀지지 않고, 자꾸 생각을 곱씹게 만듭니다. 알아주지 않아 억울했던 일을 자꾸 회고하게 만듭니다. 심한 경우 그게 한이 되어서 어떤 걸 쳐다보지도 않게 되거나 끊게 되기도 하고, 역으로 그게 강력한 추동력이 되어서 뭔가를 결행하게끔 만들기도 하더군요. 

나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사전적으로 서운함은, 내 마음에 모자라서 아쉽거나 섭섭한 느낌이 생긴 걸 말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중요한 부분은 "내 마음에"입니다. 상대방한테서 내가 기대한 만큼의 뭔가가 나오지 않아서 서운해지는 것이지요. 금전적 보상도 있지만, 본질은 자기 가치와 마음씀에 대한 흡족할 만큼의 보상, 즉 "알아줌"의 문제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미 내가 준 게 있어서입니다. 마음을 주고, 신경씀을 주고, 시간을 주고, 지혜와 능력을 주고, 자원을 주고, 믿음을 주고. 남과 비교했을 때 내가 더 특별하고 무겁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에 대한 호감만으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일에 대한 약속이나 계약에 따라서였을 수도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바라는 게 있어서였을 수도 있고요. 뭔가 주게 된 배경이 무엇이든, 내가 줬다고 생각하는 만큼 돌려받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면 서운함을 느끼게 됩니다. 

상대방에게 무엇을 어느 정도나 돌려받아야 서운함이 풀릴까요? 공자는 돌려받을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아야 군자다워진다고 강조합니다.

왜 서운함 다스리는 법을 강조했을까

흥미롭게도 <논어>에서 가장 자주,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감정은 바로 서운함입니다. 논어에서 맨 처음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은 이렇게 마무리됩니다.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서운해하지 않아야 군자다."

논어 학이편1,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남이 알아주건 말건, 자기 본분을 다하는 것 자체에 집중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에서 '남'이란 임금이고, 드러나지 않은 주어인 '나'는 신하입니다. 수평적인 친구나 연인 관계에서도 한 쪽이 다른 쪽에 서운할 일이 생기는 게 다반사인데, 군신관계에서야 당연한 일이죠. 더구나 모든 신하가 임금과 1:1 교류가 가능한 게 아닙니다. 동료 선후배 신하들과 임금 한 사람의 마음을 두고 경쟁하는 관계입니다. 승진할 자리도 한정되어 있고, 보상받을 수 있는 재원에도 한계가 있죠. 

그래서 신하 입장에서는 자신이 세운 공을 임금이 알아주느냐 하는 문제에 민감할 수밖에 없죠. 어떤 경우에는 사활을 걸고 자기 몫을 지켜야 하는 문제가 됩니다. 내가 평소 얼마나 진심을 다해서 어떤 공을 세웠는지 임금이 일일이 들여다봐주지도 못할뿐더러, 내가 세운 공을 선배나 동료가 어떻게 가로채갈지도 모르니까요. 

자리와 보상을 두고 경쟁하는 조직사회에서는 현재 지위가 어디든 간에, 최상위 리더가 아니라면 누구나 경험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공자는 늘 대안을 줍니다. 걱정의 관점을 바꾸라는 겁니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을까봐 걱정하지 말고, (오히려 내가) 사람을 알아보지 못할까를 걱정하라." 

논어 학이편16, "불환인지불기지 환부지인야(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

신하가 평생 신하로 살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자리가 중요한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지가 중요합니다. 직함은 신하여도 실질적으로 역량으로 보나 역할로 보나 리더일 수 있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조직에서 독립해 스스로 업의 리더로 일어서기 위해 애쓰고 있죠. 다 똑같습니다. 리더로 살아가기로 했다면, 생각을 리더 입장에서 해야 한다는 게 공자의 조언입니다. 신하 마인드로만 생각한다면 남(=임금)이 나를 알아주기만을 바라야 하지만, 임금(=리더) 입장으로 보면 생각하는 방향이 완전히 반대가 됩니다. 내가 사람을 잘 알아볼 줄 알아야 남을 이끌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리더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바라보고 있는 존재입니다. 더 이상 남이 나를 알아줄까를 걱정할 일이 없죠. 하지만 본인이 사람을 잘못 보고 일이나 역할을 잘못 맡기게 되면, 그 리스크는 결국 리더 본인 몫이 됩니다. 그래서 공자는 "(오히려 내가) 사람을 알아보지 못할까를 걱정하라"고 조언한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가지고 사람을 봐야 할까요? 

자기 공을 스스로 덧셈하지 않는 사람

궐당이라는 동네에서 한 동자가 공자가 시킨 심부름을 하는 모습을 본 한 사람이 물었습니다.
“혹시 배움에 더해짐이 있을 자입니까?” (="앞으로 유망주가 되겠습니까?")
"나는 그가 (어른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고, 그가 선생과 나란히 가는 것을 보았으니, 배움을 더하려고 하는 자가 아니라 빨리 이루려고 하는 자다.”

논어 헌문47 

남이 나를 얼마나 알아주는지에 지나치게 민감해지면, 자기 실력이나 업적을 부풀리거나 강조하려는 유혹에 쉽게 빠지게 됩니다. 빨리 남에게 인정받고 남이 자신을 무시 못할 존재로 인식하기 바라기 때문에 조급한 마음에 쫓기게 됩니다. 그래서 궐당 동자 같은 행동이 무심코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아직 준비가 많이 부족한데도, 자기가 선망하는 그룹과 동격으로 보여지게 행동합니다. 불특정 다수가 자기를 그렇게 대접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이죠.  

그런 마음이 작동하게 되면, 자기 노력과 기여를 실제보다 크게 평가하는 덧셈의 함정에 빠집니다. 처음에 말씀드린 매니저 F가 그런 경우 아닐까요. F가 악의가 있었거나 일을 일부러 무성의하게 한 건 아니었습니다. 자기 전문성을 무시당할까봐 불안했던 것입니다. 자기 역할을 했으니, 추가로 금전적 보상을 받아야겠다는 어필이었죠. 

문제는 F의 덧셈이 역효과만 불러왔다는 것입니다. F가 추가 과금하겠다는 자기 서비스는 보통 사람이라면 약속된 업무 범위에 포함되어 있으니 너무 당연히 해야 하는 작은 요소에 불과했으니까요. F가 남보다 그 일을 월등한 수월성으로 해낸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트러블을 일으켜 서로가 곤혹이었던 순간이 여러 번이었죠. 자기 공을 먼저 내세우게 되면, 그만큼 잘못이나 무능도 더 크게 부각됩니다. 

궐당 동자의 모습이나, F의 모습이나, 본질은 같다는 게 느껴지시나요? 자기를 알아달라는 어필이 본질입니다. 본질이 같기 때문에, 또 다른 상황에 놓여도 둘은 비슷한 에피소드를 반복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기 능력이건 노력이건, 자기가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들에 대한 채점은 남이 하게 내버려두고, 남이 알아주건 말건 묵묵히 본분에 충실하는 사람을 찾으세요. 그런 사람에게 가점을 주면 실패하지 않습니다. 

뺄셈을 남이 하기 전에 스스로 하는 사람

"맹지반은 공을 자랑하지 않았다. 패주하면서 후미에 처져 있다가 장차 도성 문을 들어오려 할 적에 말을 채찍질하며 '내 감히 (용감하여) 뒤에 있었던 것이 아니요, 말이 전진하지 못한 것이다'라고 했다."

논어 옹야13

노나라 대부였던 맹지반은 전쟁에서 퇴각 중 도성에 맨 마지막으로 들어오면서, 사람들에게 칭송받을 기회를 스스로 버립니다. 당시 중국에서는 싸움에 지고 돌아올 때 가장 후미에서 적군을 상대하며 들어오는 걸 공로로 여겼습니다. 맹지반은 가만히만 있었어도 자동으로 영웅 대접을 받을 수 있었지만, 굳이 자신이 자기 의지로 그런 게 아니라 말이 느려서 그리 되었다며 칭송받을 기회를 포기한 것입니다. 

맹지반은 스스로 자기 자신을 뺄셈하는 상징적인 인물입니다. 그럼으로써 오히려 진정성을 인정받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받을 칭송을 스스로 밝혀서 자기 공이 아니라고 하는 자세를 공자는 곧음[直]이라고 합니다. 겉과 속이 일치해서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이 곧음입니다. 영어로 Integrity(진정성)이라고 하는 게 바로 곧음입니다. 겉으로만 양반 행세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 보지 않을 때에도 양반다운 마음가짐과 행동을 일관되게 해야 Integrity가 있다고 합니다. 

무엇을 거저 얻으려는 마음이 없이 정직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뺄 것은 먼저 빼는 사람은 믿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꼭 잡으세요. 배신당할 일이 없습니다.  

덧셈은 남이 하게 두고, 뺄셈은 스스로 먼저 하면 서운한 감정에 휘둘릴 일이 없습니다. 뺄셈을 당하기 전에 내가 먼저 하면, 아플 일도 없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 반대로 합니다. 

내 공을 내가 직접 계산합니다. 그러니 내가 계산한 총합보다 남의 대접이 부족한지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공로를 직접 계산하라고 시키는 제도(성과 기술서 등)도 어느 정도 작용하지만요. 하지만 정답은 남에게 있습니다. 내 역량, 가치, 공로에 대한 계산. 덧셈은 타인의 일로 두는 게 현실적인 태도입니다. 

그들이 더해주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지 나를 돌아보고, 그들에게 더함이 있는 일을 찾아서 하면 점수도 얻고 마음도 얻습니다. 

뺄셈은 남이 하기 전에 내가 먼저 합니다. 뺄셈은 당하면 아프지만, 내가 하면 덜 아픕니다. 남이 생각하는 내 단점, 크든 작든 내가 잘못한 점들, 남의 눈에 아쉽거나 불만일 수 있는 일들을 객관적으로 헤아려보고 미리 조치해보세요. 

뺄셈을 스스로 하는 사람에게는 신뢰감이 생깁니다. 

자기 자신에게는 뺄셈만 하고, 덧셈은 타인의 일로 두세요. 만약 주변에 자기 자신에게 뺄셈은 잘하는데 덧셈을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꼭 붙잡으세요.

자기 어필 시대일수록 꼭 가져야 하는, 자기 가치를 가꾸는 첫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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