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 첫 번째ㅣ스토리텔러 #트리키네코

🎞이야기를 담고 싶어요

구독자님, 안녕하세요.

오늘은 저의 두 번째 편지를 띄웁니다.

노래를 만들어 부르는 사람, 트리키네코입니다. 어릴 때는 음악을 듣고 노래하는 것이 너무 좋아서 시작했었는데 지금은 어쩌다 보니 싱어 송라이터가 되었어요. 

저는 창작을 늦게 시작한 것 같아요. 좋아하고 계속해왔지만 20대 초반까진 밴드에서 노래하는 거 말고는 방법을 잘 몰랐고 내 음악 작업으로서의 창작과 독립성을 생각하게 된 건 20대 중반부터인 것 같아요. 

창작을 시작하고 보니 가사를 쓰는 일이 가장 어려웠어요. 글을 쓰는 거 자체는 어릴 때부터 시도해왔지만 유치한 글들을 수없이 많이 버렸어요. 가사 때문에 한창 괴로워하던 시기에는 습한 여름밤, 비가 막 내리기 시작해 흙이 발목에 튀며 흙냄새가 나는 밤에 우산을 쓰고 걷던 풍경을 묘사한 글도 있을 정도예요. 

노트에 잔뜩 쓴 유치찬란한 글들을 나중에 우연이라도 가족들이 보고 어머 얘 뭐야 할까 걱정이 되어, 종이 파쇄기로 돌리다가 귀찮아져서 두껍게 여러 장 뜯은 종이에 결국 칼날이 망가져 파쇄기가 사망한 적도 있어요. 예전 노트들을 다 찢어버리고선 요즘엔 주로 타이핑해서 기록합니다...

그러다 좋은 영화를 본 날, 혹은 어떤 심경의 변화가 생긴 날 써두었던 메모 속에서 적절한 나만의 표현을 발견할 때가 있고 그런 걸 모아두었다가 필요한 멜로디에 가사를 넣어보기도 하는데 사실 그보다 더 좋은 건 이야기가 생긴 가사를 쓰는 거에요.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가사로 정리되면 멜로디가 자연스레 떠오릅니다. 그래서 요즘은 곡을 쓸 때 가사를 더 먼저 쓰게 되었어요.

가끔은 운명 같은 영화를 보고도 글이 샘솟는 날이 있어요. 그렇게 쓴 가사는 단 한 줄에도 영화 속 장면이 떠오르고 순식간에 절 그곳에 데려가 줍니다. 그리고 이런 영감을 주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어떻게 시나리오를 쓰게 되는 것일까 종종 궁금해져요.

📽립반윙클의 신부

창작자 중에는 스스로에게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샘솟는 사람이 있는데, 자전적 이야기 단계를 벗어나 아예 새로운 세계를 그려내는 사람들이 너무 대단해요. 그런 이야기를 가진 사람을 동경합니다. 영화도 그중 하나에요.

특히 이와이 슌지 영화를 좋아합니다. 덕질을 하기엔 너무 작품 수가 적어서(…) 꽤 오래 잊고 있었는데 올해 ‘립반윙클의 신부’를 보았습니다.

2016년 영화인데 제목과 포스터만으로는 그다지 끌리지 않아 사실 저도 이와이 슌지 영화니까 궁금해하면서도 몇 년 동안 숙제처럼 미뤄뒀었는데 우연히 어떤 심심한 밤 보게 되었습니다.

립반윙클의 신부라니. 지금은 이보다 더 좋은 제목이 있을 수 있을까 싶어요.

쿠로키 하루는 도화지 같은 매력이 있는 배우네요. 처음엔 뭔가 아오이 유우와 비슷한 이미지를 가진 배우를 찾았구나 싶었는데 순수해 보이기도 하면서 잔혹하거나 단호한 역할도 잘 소화해낼 것만 같은 얼굴입니다.

영화 속에서 나나미와 아무로는 가장 시선을 끄는 캐릭터이면서 속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이에요. 특히 아무로는 너무 이상한 사람인데 선인지 악인지 처음엔 알 수 없어요. 나나미 앞에서는 항상 도와주는 사람입니다. 나나미도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삶을 이어나가는데 누군가에겐 독이 될 수도 있는 선택들입니다. 그런 이중적인 부분들이 묘하게 현실적 설득력을 가졌어요.

많은 생각을 가져다주는 영화를 정말 좋아합니다. 미묘한 감정들과 관계에 대한 생각과 질문들에 마음이 복잡해졌는데, 어쩐지 영화 중반부터는 계속 울면서 보았던 것 같아요. 누군가에겐 주인공 캐릭터가 답답할 수도 있겠지만 혹시 이 영화가 좋으셨다면 이와이 슌지 감독이 영화 발표 전에 출간한 동명의 소설 '립반윙클의 신부'를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저도 며칠 전에 읽었는데 책을 읽는 내내 영화를 자세히 다시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보통 원작이 있는 영화는 책을 먼저 보면 영화가 시시하게 느껴지곤 해서 영화를 먼저 보는데, 영화감독이 쓴 소설이라 그런 걸 수도 있지만 '립반윙클의 신부'에서는 어느 쪽이 먼저든 상관없을 것 같아요. 

[playlist:waves from trickyneko #2]

음악에서도 영화같이 장면이 스치거나 떠오르는 걸 좋아해요. 오늘의 플레이리스트는 그런 관점에서 선곡했어요 💿

#트리키네코 소식

지난 편지에서 춤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요, 얼마 전에는 새 프로필을 위한 사진들을 찍었어요. 그리고 여름이 오기 전에 새로운 싱글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그럼 다음 편지에서 만나요!

Photograhed by Magarette Film

📮 편지를 보내는 사람들

모호 mohho
기타치고 노래하는 사람. 솔로프로젝트인 ‘모호프로젝트(Mohho Project)’와 일렉트로닉 포크 밴드 ‘호와호(howaho)’로 활동 중이다.

이호 eeeho
인문학을 사랑하는 이과 출신 음악가. 싱어송라이터 ‘이호(eeeho)’, 일렉트로닉 포크 밴드 ‘호와호(howaho)’로 활동 중. 항상 인생의 갈림길에서 그 때의 마음을 좇다보니 현재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

트리키네코 trickyneko
싱어 송라이터. 인간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서 끌어올리는 듯한 감정의 세계를 소리로 맞바꾼다. 2011년 EP ‘꿈의 통로’, 2015년 1집 ‘모든 계절의 밤’, 2019년 2집 ‘수면 아래’. 마포FM 게릴라디오 DJ로도 활동했다.

홍한나 annaHong
시각예술분야 종사자. 비 가시적인것과 가시적인것 사이에서 고민하며 작업과 생활을 병행한다. 아트랩반 개인전 Circuit Mode(2018), REC Mode(2018), 별관 개인전 General Error(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