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스태커라티?!
무슨 뜻인지 짐작이 가시나요.
뉴스레터 비즈니스에 관심이 많은 분이라면 서브스택(Substack)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여기에 지식계급을 뜻하는 리터라티(literati)를 붙인 합성어입니다. 대략 뉴스레터를 보내는 지식 엘리트를 뜻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서브스택은 2018년 출시한 뉴스레터 플랫폼으로, 유료 또는 무료로 뉴스레터를 발행하고 구독하는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보수 미디어인 The Dispatch나 중국에 관한 인사이트를 전하는 Sinocism 등이 서브스택을 통해 뉴스레터를 발행하면서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서브스태커라티는 [콜롬비아 저널리즘 리뷰]의 지난해 겨울호에 실린 칼럼의 제목입니다. 서브스택의 창업 과정과 지금 떠오르는 쟁점을 하나씩 짚고 있는 글인데요. 이 글에는 두 가지 상반된 관점이 있습니다.
- 서브스택은 공정한 미디어 환경을 만들고 있다.
- 서브스택은 기존 미디어의 과오를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아마 전자에는 레거시 미디어를 대체할 만한 뉴스레터를 통해 미디어가 민주화될 수 있다는 희망찬 전망이 드러나는데요. 반대로 후자에는 VC라는 자본을 등에 업은 뉴스레터 플랫폼이 과거보다 공정한 미디어 무대를 제공해줄 수는 없으리라는 회의론이 담겨 있습니다.
⚖️ 이제 시작이지만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
이 칼럼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바로 이것입니다.
아래 스크린샷에 등장하는 일곱 개 사진의 공통점을 찾아보세요.
이 사진은 서브스택의 유료 뉴스레터 인기 순위(1~7위)입니다. (지난해 말부터는 이 전체 랭킹을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눈치채셨나요.
서브스택의 유료와 무료 뉴스레터 순위 각각 25위까지를 살펴보았는데, 이들 유력한 뉴스레터의 발행자 대다수가 백인 남성이었다는 겁니다. 게다가 적지 않은 경우가 정치적으로는 보수였다고 합니다.
칼럼의 저자가 말하듯,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이 사진은 조선일보 홈페이지에 소개된 칼럼니스트 목록입니다.
모두 32명인데요. 여성은 단 3명입니다. 9%. 다시 봐도 믿기지 않는 비율이지만 미디어는 쉽게 다양성을 향해 마이크와 펜을 쥐어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콜롬비아 저널리즘 리뷰의 칼럼이 지적하듯 서브스택처럼 우리가 아주 새로운 플랫폼이라고 믿는 곳조차 기존 미디어의 지형과 인정 체계를 그저 연장시킨 것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서브스택은 이렇게 항변합니다. "우리는 미디어가 아니라 플랫폼이다."
플랫폼이라는 이유로 개입할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한국에서 유독 기시감이 드는 말이기도 한데요. 그래서 더욱 믿음직스럽지 못하게 느껴지는 변입니다. 플랫폼과 자본이 방 안의 코끼리를 무시하는 사이, 서브스태커라티의 운동장은 더욱 기울어져 갈 겁니다.
💻 한국의 골드칼라 플랫폼
한국의 사정은 어떨까요.
서브스태커라티를 좀 더 우리에게 친숙한 말로 옮기면 골드칼라(gold collar, 지식 노동자)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최근 몇년간 원티드, 퍼블리, 폴인, 트레바리 등 골드칼라 플랫폼이라 불릴 만한 것들이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제가 살펴본 플랫폼은 커리어리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퍼블리가 내놓은 서비스로, '퍼블리 뉴스'에서 최근 이름을 바꿨습니다. 커리어리는 "신뢰할 만한 업계 전문가들이 트렌드를 해석하고 인사이트 제공"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요. 기본적으로 퍼블리가 선정한 전문가들이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이용자들이 이들의 큐레이션을 구독할 수 있습니다.
200명 정도의 큐레이터가 총 10개 분야(카테고리)에서 활동 중이었는데요. 서브스택에 관한 칼럼처럼 성별을 한번 세어보았습니다. (커리어리가 제공하는 정보와 서치 등을 통해 대략적으로 세었고, 성별을 추정하기 어려운 경우는 제외했기 때문에 완전히 정확한 숫자는 아닙니다.)
큐레이터의 63% 내외가 남성이었고, 10개 분야 가운데 프로덕트 디자인을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남성의 비율이 높았습니다. 프로덕트 디자인을 제외하고 보면 여성은 30% 정도였습니다.
남성의 비율이 유독 높은 분야는 엔지니어 & CTO(93%), 데이터(86%), 투자(80%), 벤처캐피털(76%)이었습니다.
새롭게 짜는 뉴스 큐레이션의 지형 역시 서브스택만큼 기울어진 게 분명한 듯 보입니다. 기존 서비스인 퍼블리의 이용 고객 가운데 절반 이상이 여성이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더욱 기이한 모습입니다.
🧰 플랫폼의 윤리
사례들을 살펴본 것이지만 사실 혁신을 얘기하는 많은 플랫폼 또는 미디어의 사정이 크게 다른지 알 수 없습니다. 새로운 것이라 얘기하는 것 같지만 너무나도 익숙한 모습을 반복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서브스택의 답변은 "플랫폼이기 때문에" 면책할 수 있다는 것이지만, 우리는 사실 "플랫폼이기 때문에" 더 많은 윤리적 판단을 요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시대의 권력, 엘리트, 전문가, 인플루언서, 롤모델을 규정하는 일에 관한 것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물론 해법을 찾는 것은 결국 플랫폼 설계자의 몫이 되겠지만, 고민하기 시작하는 것이 첫 단추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결국은 그 조직의 다양성(diversity)이 그 고민의 마지막 단추를 채워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