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메일 혀입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소식이 이어진 지 이미 한 주가 지났습니다. 남의 나라 소식에도 문득 우울감에 휩싸이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크리에이터 시대의 전쟁'답게 전쟁 크리에이터의 유쾌한 장면이 바이럴되기도 하죠.
아래 틱톡커의 영상을 보세요. 이 우크라이나 군인은 딸에게 자신이 무사함을 전하기 위해 Smooth Criminal에 맞춰 춤추는 틱톡을 올립니다.
네, 미래라는 것은 이상한 곳이고 그래서 살만한 곳입니다.
허위 정보에 미온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미국의 빅테크들도 발빠르게 움직입니다. 러시아발 허위 정보에 계정을 폐쇄하거나 러시아 국영 언론 링크 공유나 노출을 시스템상 제한하는 등 유례 없이 반러시아 전선으로 똘똘 뭉쳤죠. 소위 명분 있는 검열입니다.
이와는 조금 다른 맥락에서 착잡하고 텁텁한 하나의 결정이 전해졌습니다.
패트리온이 우크라이나의 NGO 모금 계정을 차단한 일입니다.
"전투기 멤버십에 가입하세요"
우크라이나의 NGO Come Back Alive는 2014년 우크라이나군을 돕기 위해 설립한 모금 단체입니다. 모금을 통해 우크라이나군에 방탄조끼, 구호 장비 등을 지원하고 퇴역군인의 재활을 도와왔죠.
이 단체는 적어도 2020년 5월부터 패트리온에 멤버십을 개설해 운영해왔다고 합니다. 올해 초만 해도 유료 구독자는 1,000명 미만으로 월 2만 달러 정도의 수익을 모금했는데요. 러시아의 침공 직후 멤버십 가입자가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고 합니다.
보시다시피 만사천여 명이 가입해 월 구독 수익이 43만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역시 지금은 삭제됐지만, 우크라이나 정부 공식 웹사이트에서도 이들의 패트리온 계정을 링크해 모금을 홍보하기까지 했습니다.
처음 문제가 된 건 이들의 표현이었습니다. 멤버십 레벨의 이름 자체가 총알(Bullet), 발사체(Projectile), 폭탄(Bomb), 미사일(Missile), 탱크(Tank), 전투기(Aircraft)였습니다. 멤버십에 가입하는 것이 마치 우크라이나군의 군사 무기를 후원하는 것처럼 오해할 여지가 있었죠.
결정적인 문제는 이 단체가 밝힌 모금의 용도였습니다. "포병용 소프트웨어가 탑재된 태블릿, 쿼드콥터, 군용 차량 등에 활용하고" "저격수와 사수 등을 훈련한다"는 것 등이었습니다.
러시아의 침공 다음날인 2월 25일, 패트리온은 결국 이 계정을 폐쇄합니다. 패트리온이 이날 밝힌 입장문의 일부입니다.
요약하자면 패트리온은 이 단체의 모금 목적이 (정당한 창작 행위가 아닌) 유해 및 불법 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창작자에 관한 어떤 복잡한 사정
패트리온은 이 글에서 우크라이나 적십자사 등 다른 모금 단체를 안내했고, 우크라이나에서 활동하는 패트리온 창작자가 3,000여 명 이상임을 알렸죠.
대중의 반응은 엇갈렸습니다. 창작 플랫폼으로서 당연한 처사고 전쟁을 크라우드펀딩할 수는 없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패트리온이 러시아의 편을 들어준 거라는 항의도 빗발쳤습니다.
이들의 결정이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었을 겁니다. 예컨대 패트리온이 이들의 멤버십 후원을 허용한다면 어땠을까요. 패트리온이 후원 수익에서 수수료를 공제하는 것은 소위 "전쟁으로부터 이득을 챙기는 행위"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패트리온의 법무 책임자가 남긴 코멘트에서 행간을 읽을 수 있습니다.
패트리온의 CPO인 Julian Gutman 역시 자신이 우크라이나 태생임을 밝히며, "패트리온의 미션은 창작자가 돈을 벌게 하는 것이며, 우리의 제품은 창작자를 위한 구독 결제에 집중한다"는 이 글을 지지했습니다.
이말인즉슨 패트리온은 그들의 정책을 들어 Come Back Alive의 계정을 차단한 것이지만, 사실 그들이 기준점으로 삼아야 할 창작자란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패트리온이 집중해야 할 미션은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그 결정의 근거였음을 넌지시 알 수 있죠.
패트리온의 결정은 과연 올바른 결정일까요. 누구도 단언해 말할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이 결정은 극단으로 치닫는 정치적 상황에서의 창작자 플랫폼의 역할, 책임, 정책, 압력 등에 관한 끝없는 질문을 던집니다.
Come Back Alive는 단 하루간의 비트코인 후원으로만 환불되어버린 패트리온 월 수익에 버금가는 후원금을 모금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는데요. 우크라이나 현지 영자 매체인 키이우 인디펜던트(The Kyiv Independent)의 패트리온 계정은 침공 직전 1,000명 미만이던 유료 구독자가 1주일여 만에 5천여 명으로 증가했습니다.
모두의 평화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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