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너를 생각해. 지금의 너를 생각하는지, 그때의 너를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어. 가끔 들리는 너의 소식을 들으면 잘 사는 거 같아 보이진 않아. 사실 넌 과거에도 잘 살진 않았잖아. 너는 어떤 열등감에, 어떤 자격지심에 휩싸인 사람이었잖아. 남들에겐 친절을 베푸는 사람이었지만, 너 자신에게는 친절을 베풀지 않는 사람이었잖아.
그래서 그랬나봐. 너는 너를 사랑하는 것보다, 나를 사랑하는 게 편했나봐. 너는 내가 뭐가 없어서 불편하다고 하면 그걸 선물했고, 내가 어떤 영화가 보고 싶다고 하면 예매를 했고, 내가 어떤 옷이 예쁘다고 하면 그 옷을 입고 나타났지. 그러니까, 너는 나의 아주 사소한 찰나까지도 저당 잡았지. 그때부터였어. 내가 너에게 멀어지기 시작하고, 네가 조급해지기 시작한 게.
내 이별은 늘 일방적인 거 알아? 나도 예전엔 몰랐는데, 이제 알았어. 너에게 나의 감정을 말 했다면, 너는 애써 그 조급함을 감췄을 거야. 근데 그때는 그럴 수 없었어. 그때 난 그게 내가 내린 유일한 답이었으니까. 알잖아. 나 남의 말 맨날 듣는 척하면서 하나도 안 듣는 거. 너도 나에게 예외가 될 수 없었던 거. 넌 늘 예외가 되고 싶어했는데, 아니었잖아.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기억해? 내가 그 책 진짜 싫어했잖아. 이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내 말은 항상 다 맞다고 하던 네가 그 책은 좋다고 했잖아. 그래서 내가 왜 좋은지 이유를 말하라고 했잖아. 그때도 내가 그거에 하나하나 다 반박했을 거야. 사실 그때 네가 말했던 이유는 하나도 기억이 안 나. 근데 그거 알아? 나 이제 그 책 좋아해.
나는 몰랐어. 네가 너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인 것처럼 나도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라 는 걸. 너는 그걸 알았겠지? 지금 생각하면 너는 너를 사랑하기 위해 나를 사랑했던 사람이고, 나는 나를 사랑하기 위해 너를 밀어냈던 사람이야. 우리는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한다는 것까지 너무 닮은 사람이었어. 그러니까 우리는 서로에게 사소한 사람으로 남았어야 해.
우리가 우리에게 준 영향이 아주 사소했어야 해. 서로의 기억이 아주 사소해서 서로가 얼굴도, 이름도 잊을 만큼 사소한 사람으로 남았어야 해. 어떤 음악으로, 어떤 순간으로 서로를 떠올리는 사이가 아니라 아주 옛날 어느 순간 스쳐 지나간 사람처럼 사소한 사람으로 남았어야 해.
그랬으면 내가 너를 통해 나를 볼 일도 없었을 거고,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여 전히 몰랐을 거야. 그러면 누군가가 나에게 굴곡이 없다고 말하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을 거야.
그러니까, 너와 나는 아주 사소한 사이였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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