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드라마퀸

아이고 할머니와 그래도 할머니

2022.09.29 | 조회 1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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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던이의 썩 무던하지 않은 하루

할머니를 추억하며 이런저런 생각 정리

초등학교 친구들 사이에서 우리 할머니는 '아이고 할머니'였다. 별 것 아닌 일도 과장 하면서 아이고, 아이고, 호들갑을 떨었기 때문이다. 무슨 일로 그렇게 아이고 하셨는지 지금 기억하려고 보니 아무 것도 생각이 안 난다. 그 정도로 정말 대수롭지도 않은 일들이었다. 친구들은 "오늘도 할머니 아이고 하시겠네" 하고 웃었다. 할머니는 밖에서 조용하고 고상한 척을 했지만 사실 관심 받는 것을 좋아하셨던 것 같다. 인생을 연기하듯 사는 드라마퀸이다. "아이고~너는 왜 그렇게 사냐~!!"라며 당신의 50넘은 동생들을 전화로 소리소리 드잡이를 해놓고 다른데서 전화가 오면 "여보세요옹? 오옹 그래요옹? 홍홍홍" 하고 받았다. 우리 부모님은 성적을 가지고 크게 뭐라 한 편이 아닌데, 60점인가 받은 미술 시험지는 조금 부끄러워서 책상서랍에 숨겨놓은 적이 있다. 할머니는 평소에도 내 일기나 연애편지를 몰래몰래 훔쳐봤다. 옛날엔 프라이버시라는 개념이 없었던 걸까. 아무튼 그날도 낮부터 내 방을 뒤져서 숨겨둔 시험지를 찾아 놓고는 모르는 척 하고있다가 엄마 아빠가 퇴근하고 돌아와서 저녁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이게 뭐니~?" 하면서 시험지를 들고 쨘 등장했다. 나는 주인공들의 갈등이 불편하고 스트레스여서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다. 할머니는 막장 드라마일수록 좋아했고, 귀가 잘 안 들린지 오래라 온 가족은 드라마 주인공들이 소리지르며 싸우는 장면을 맥시멈 볼륨으로 들어야했다. 귀가 잘 안들린건 노화때문 보다는 TV 어느 프로그램에서 '귓밥은 두면 자연스럽게 흡수된다'는 걸 보고 귓밥을 십수년을 파지 않았기 때문이다. TV는 할머니 삶의 바이블이었다. 가끔은 드라마 주인공에 빙의되어서 현실에서 써먹곤 했다. 이상하게 할머니는 주인공보다 드라마의 악역을 따라했다. 어떤 드라마에서 자기 딸이 미혼모가 되어 돌아오니까 손녀인 아이를 몰래 갖다 버렸는데, 그걸 보면서 나보고 "너도 조심해라, 결혼 전에 애 낳아오면 아빠 얼굴에 먹칠 하는거야." 하셨다. 나는 "요즘은 뭐 그게 흠도 아니고 많이들 결혼 전에 갖는가보던데 뭘" 이라고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할머니는 내가 어디서 아이를 가져오면 진짜로 버릴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는 '그래도 할머니'였는데, 뭔가를 주장할 때 논리나 이유가 없이 '그래도 내 말이 맞다'고 고집을 부리셨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그래도' 하나로 모든 논리를 반박했다. 

이 '아이고 할머니'와 '그래도 할머니'가 합쳐져서 우리의 대화는 대부분 이런 식으로 '아이고'로 시작해서 '그래도'로 끝났다.

"아이고~~ 그러면 못 써!"

"왜?"

"그냥! 그냥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

"(논리적 반박)"

"그래도 그러면 못써!"

상대방이 '그래도'로 일관하면 이 말싸움은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논리는 무논리를 이길 수가 없다. '그래도 카드'가 있어서 어떤 싸움이든 이길 자신이 있었는지 할머니는 항상 누군가와 싸웠다. 사랑 받는 타입이었냐 미움 받는 타입이었냐 하면 할머니는 후자에 가깝다. 나는 내가 손해를 보는게 차라리 속이 편한데 할머니는 손해를 보면 잠이 안 오는 것은 물론이고, 남이 손해를 봐야 직성이 풀렸다. 학업, 남편, 돈, 둘째 아들. 빼앗긴 것들이 많아서 독해졌나보다. 

"왜 아들이 좋은데!"

"그래도"

"왜 한국인 사위를 원하는데!"

"그래도 사돈이 한국에 있는게 좋지"

"왜 사돈이 한국에 있는게 좋은데?"

"몰라, 그래도."

내가 초등학교 때 할머니는 60대였다. 지금 우리 엄마 아빠가 60대인데 큰 딸이 결혼도 못한 걸 생각하면 할머니는 젊은 나이에 할머니가 됐다. 버스를 탔는데 젊은이가 자리를 양보해주더라며 코웃음을 쳤다. "아이고, 나 할머니 아니에요!"하며 좋은 일 하려고 한 사람 하고도 싸웠다. 내가 그 얘기를 듣고 손녀가 벌써 키가 160cm가 넘어서 어디 가면 성인 취급을 받는데 할머니가 아니면 뭐냐고 했더니, "그래도 어디가서 할머니 소리 들을건 아니지" 했다. 나는 사람 상대하면서 에누리를 하려면 생각만으로 피곤한데, 할머니는 정가가 정해진 마트는 재미가 없었다. 가장 최근 내가 한국에 갔을 때는 하필 코로나 규제가 제일 심할 때였다. 2주 격리 후 회를 먹으려고 작은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다 모시고 간 수산시장 앞에 장이 서 있었다. 차에 마스크를 두고 내린 우리 할머니는 엄마 아빠가 주차하고 마스크를 가져올 동안 손으로 입을 막고 구석으로 가면서도 온 신경과 시선이 장에 팔려있었다. 빨리 가서 흥정을 하고 싶어서 온몸이 근질 거렸다. 생각해보니 그 때도 그놈의 고추 모종과 "생강을 키워서 먹으면 싼데..."하며 생강을 사려고 하셨다. "생강? 그걸 누가 키우게?" 했더니 "심어 놓으면 자라" 하셨다. 다시 말하지만 심어 놓으면 자라는건 잡초 밖에 없다. 손녀도 이제 돈 잘버니까 생강 많이 사드릴게, 짜잘한 돈 아끼려고 안그래도 바쁜 엄마 아빠 괴롭히지 마시라고 잡아 끌다시피 모시고 장을 빠져나왔다. '그래도 할머니'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무던한' 나 뿐이었다. 내가 차근차근 인내심을 가지고 설득하면 "그래도!"가 "으응, 그런가?", "그래, 알았어"로 바뀌었다. 아빠가 "할머니는 네 말만 들으니 니가 좀 잘 얘기해봐라"라고 할 정도로, 고집 센 할머니를 다룰 수 있는건 나밖에 없었다.

외가도 마찬가지. 우리 가족은 그냥 전부 다 꼬장꼬장 고집이 세다고 봐도 무방하다. 가장 푸릇푸릇하고 꽃 같을 나이에 매일 2시간씩 할아버지와 바둑을 두는 날 보면서 외삼촌이 말했다. "우리 집안에서 여기 이 두 노인 모시고 살 수 있는건 무던한 너 하나일거야." 내일 당장 시험이 있어도, 감기에 걸려서 너무 몸이 안 좋아도 외할아버지와의 바둑은 "그래도"였다. 외갓집은 압구정 쪽인데 이대랑은 평균 1시간 반~2시간이 걸린다. 대전에서 KTX타고 등교하는 것과 다를바가 없다. 나는 사촌동생들의 실험쥐처럼 외갓집에서 3년을 살았다. 실험쥐의 결과는 보나마나 "살기 부적합". 사촌들은 아무도 바둑을 배우지 않았고, 모두가 대학생활 내내 자취를 했다. 

얼마 전 입사지원서를 쓰는데 질문 중 하나가 "자신의 커뮤니케이션과 팀웤 능력이 드러나도록 기술하시오"였다. 간단하게 이렇게 쓰고 싶었다. "저희 할머니, 할아버지와 대화를 10분만 해 보십시오. 제가 이분들과 유일하게 대화 가능한 커뮤니케이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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