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쑤레터ep.39]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기

수고를 들여 치열하게 이해하는 것

2022.03.11 | 조회 8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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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부여여행에서
지난 2월, 부여여행에서

 


 

🎧 같이 들어요

뒤공 - 시

시란
쓰여진 채로
시는
쓰여진 대로
가네

우린
가끔은 그래야만 하겠지
가끔은 괜찮기도 하겠지
우린
가끔은 나아가려 하겠지

 

박연준 시인은 말했습니다.
다 쓰여진 시가 자신의 손을 떠나고 나면,
자신이 더이상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말입니다.

시는 쓰여진 채로 읽는 이에게 다가갑니다.
쓰여진 대로 읽는 이에게 다가갑니다.

그 다음부터는 오롯이 읽는 이의 몫입니다.

시인이 의도한 바가 있건 없건 간에
더이상 그것은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되어버립니다.

말과 말 사이, 문장과 문장 사이,
종이에 쓰이지 않은 더 많은 '투명한 말'을 통해
당신이 상상하기를, 시는 바랍니다.

-쓰는 기분, 박연준-

 

 

💬 오늘의 쑤필

 

친구, ‘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나는 사실, 시라는 것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게끔 문장을 일부러 헝클어뜨리고 단어를 마구 늘어놓은 불친절한 예술이라고 생각한 적도 많습니다. 나에게 '시'는 잡히지 않는 하늘의 뜬구름, 혹은 햇빛이 우리의 눈을 속이는 광학적 환각인 무지개 같은 것이었습니다.

얼마전 편지에서 나는 친구들에게 고백했지요. 감정이라는 것은 분석하거나 정의하거나 이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나는 이제서야 깨달았다고 말입니다. 갑자기 어떻게 그런 깨달음이 찾아왔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제 알겠습니다. 바로 '시' 덕분이었습니다. 무슨 이야기냐고요?

모든 것은 새로 읽기 시작한 한 권의 책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박연준 시인의 '쓰는 기분'이라는 산문집입니다. 나는 그녀의 문장이 지닌 목소리를 좋아합니다. 차분하고 담담하지만, 그래서 어쩐지 더 울렁거리는 목소리입니다. 하지만 나에게 그녀의 시는 항상 이해하기 벅찬 것이었기에, 시집보다는 산문집을 좋아했지요. '쓰는 기분'은 그녀가 시를 쓸 때의 기분에 대해 직접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드디어 그녀의 시를 이해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집어 들게 되었어요.

나처럼 '시'가 어려운 친구를 위해 책에서 한 부분을 가져왔습니다.

당신은 시를 통해 뭔가를 '알고' 싶으신가요?
안다면, 당신은 알아낸 것으로 무엇을 하려 하나요?
시는 '이해받고 싶어하는 장르'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니 당신이 시를 앞에 두고 이해하고 싶어 하거나
이해할 수 없어 괴로워한다면,
아예 처음부터 다르게 접근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시'라는 집의 입구를 다른 쪽에서 찾아보는 게 어떨까요?

아이의 웃음에는 의미가 없습니다. 그냥 웃음이죠.
저녁 때 들리는 산비둘기 소리엔 의미가 없어요.
그것들은 이해할 게 아니라, '감각'해야 합니다.

언어로 이루어진 거라 해서 의미를 찾으려 들면
시는 당신을 자주 배반할 겁니다.
시는 언어를 사용하지만 언어를 벗어나,
의미 너머로 가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시 앞에선 이해나 의미가 무색해진답니다.
그보다 시가 시로서 내는 소리, 뉘앙스, 에너지를
받아들이고 맛보세요. 소리내서 읽어보세요.

-'쓰는 기분' 중 발췌, 박연준-

나는 이 부분을 읽고서야 어렴풋이 알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시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감정 또한 그런 것이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이유도 이해해야만 하는 내 자신이 조금은 피곤해지는 순간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한 가지 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래야만 하는 사람인 것을을요. 이해할 수 없는 이유 또한 이해해야 하는 사람인 것을요. 모든 것을 '그냥 원래 그렇다'고 저항 없이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습니다. 궁금증을 품고 의심하며 치열하게 알아가는 과정에서 희열을 느끼는 것을 어쩌겠어요. 무언가를 마음 깊이 알게 되는 것이 좋은 것을 어쩌겠어요.

그 과정에서 만나는 것들이, 그 과정을 거쳐 알게 된 것들이 더 오래, 더 깊게 나에게 머무를 것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렇구나' 하고 쉽게 넘겨보냈던 많은 것들은 결국 나에게 오래 머물지 않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런 사람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박연준 시인의 책과 함께, '디킨슨'이라는 드라마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19세기 미국의 천재시인 중 한 명이라는 여성시인 '에밀리 디킨슨'을 다룬 드라마입니다. 그녀의 이름은 귀에 익지만 나는 그녀가 시인이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어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녀에게, 그리고 시에게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길과, 시를 대하는 그녀의 태도가 나를 '시'의 세계 한 가운데로 끌어당겼습니다. 나의 관심을 몽땅 빼앗았습니다.

그러니까, 아마 나는 지금, 나만의 방식으로 시를 이해하는 과정 위에 있는 것 같습니다. 더 제대로 '감각'하기 위한 과정을 밟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나의 손에는 '에밀리 디킨슨'의 '고독은 잴 수 없는 것'이라는 시집이 들려 있습니다. 박연준 시인으로부터 에밀리 디킨슨까지. 나는 이렇게 또 한 번 치열하게 시를 이해해 볼 참입니다. 그래서 제대로 느껴 볼 참입니다.

어렵다고, 원래 그런 거라고, 그저 흘려보내지 않는 삶의 태도를 갖고 싶습니다. 어려워도, 원래 그런 거라도, 수고를 들여 치열하게 이해하며 살고자 합니다. 나라는 사람은 그래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 추신

1. 날씨가 정말 봄이네요!

2. 댓글은 어떤 내용이든, 짧든 길든 언제나 환영해요.
   긴 답장은 ssoo9108@gmail.com 으로 부탁합니다.
   나는 친구의 생각도 항상 궁금하거든요.


 

무언가를 느끼고 이해하는 것에
조금의 정성이 더해진다면,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나만의 관점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요?

친구에게 있어
그런 정성을 기꺼이 감수하게 하는 것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나만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점점 재미있어지는 요즘입니다.

 

즐겁고 안전한 주말 보내요.

 

2022년 3월 11일 금요일

구독자의 친구 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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