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8, 이번 레터는 제것입니다

💃🏻🐆,👌,🌎::나홀로집에

2022.06.20 | 조회 2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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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리밋

동갑내기 30대의 좌충우돌 각자도생 일주일 취재기

💃🏻🐆 멋장이미식가 Kelly, 👌 그럴 수 있다 ㅇㅋ, 🌎 미라클 지구,

🤎 그리고당신, 구독자


💃🏻🐆_한밤의 미지

자전거가 고장 나지 않아 다행이었다. 자전거 바퀴보다 새카만 길이었다. 사람 한 명이 가방을 들고 걸어가면 꽉 찰 법한 좁은 길로 왼편은 차가 빠르게 달려나가고 오른편에는 풀이 우거져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분명 도로에서 흰 빛을 쏘아 내리고 있는데도 길은 어두웠다. 한참을 올라도 인기척은 전무했고 도로가 옆이다 보니 동물의 흔적 조차 없었다. 학교 앞 같은 가파른 언덕길은 아니지만 길은 종이를 쌓아 올리듯 조금씩 부드럽게 높아지는 언덕이었다. 사당 고개를 자전거로 넘었다고 의기양양했던 것도 이제 다 옛날 일이 되어 나는 이미 길 초입부터 자전거에 의지해 내 몸을 질질 끌고 올라갔다. 새로 입은 병아리 노랑 피케 티에 땀이 묻고 있었다. 마스크를 벗어도 계속 숨이 찼고 지도를 아무리 확인해도 목적지 당도는 요원했다. 그리고 덜컥 무서워졌다.

나는 종종 태엽을 끝까지 감은 새빨간 장난감 자동차처럼 튀어나갈 때가 있다. 흥미로운데, 해볼까? 그리고 대부분 한다. 완벽주의 탈출을 위한 훈련이었는데 동굴에서 자고 있던 미친 면을 깨운 셈이다. 왜 미쳤냐면, 지속성과 독립성 그리고 유연성의 부재 혹은 부족 때문이다. 그래서 한밤을 달린 밤에도 나는 계속 생각했다. 여기다 자전거를 버리고 갈까, 커다란 택시를 불러서 자전거랑 같이 태워 달라고 할까. 중간 중간 지도를 확인하며 양재천으로 들어갔을 때도 긴장됐지만 무섭지는 않았다. 홍대에서, 선릉에서, 노원에서 달려갔던 경험을 믿고 있었다. 내가 과천으로 나왔고 이제부터 천변이 아니라 도시를 달려야 한다는 걸 깨달았을 때부터 긴장되기 시작했다.

버스로 조차 지나가본 적 없었던 과천 길을 자전거로 달리는 동안에는 인기척 자체가 긴장이었다. 인간이 갑자기 튀어나올 것 같았고 전에 안양천에서 개를 안고 달리게 만들었던 이상한 남자가 떠올랐다. 최대한 빠르게 과천을 벗어나기 위해 서두르느라 지도를 보기 어려워 길을 벗어나는 바람에 몇 번씩 왔던 길로 돌아가야 했다. 몇 번을 헤매며 도달한 어둡디 어두운 녹색 길을 혼자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면서 어차피 자전거는 버릴 수 없고 나는 더더욱 버릴 수 없으니 주변을 구경하면서 가려고 했다. 자전거에 올라타서 기어를 바꾸며 올라가도 봤다. 하지만 점점 모든 게 무거워졌다. 양재천에서 과천으로 빠졌을 때 그냥 그때 돌아가서 택시나 탈 걸, 몇 번이고 길을 잃었을 때 돌아갈 걸, 또 이렇게 사고를 쳤구나. 생각 없는 사람을 탓하더니 나야말로 가장 생각 없는 사람이야. 그리고 오늘 내가 한 행동들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내가 그때 사과했어야 했던 걸까, 하지만 그건 내가 사과할 일이 아니었어. 그 사람은 일을 못 하는 걸까, 아니면 언제나처럼 내가 개떡같이 말한 걸까, 아 개떡 맛있는데 미안하다. 정작 언덕길을 올라가며 나는 다른 무엇보다도 내가 너무 무거웠다. 나는 이제 내가 너무 무거운데 이런 나를 질질 끌며 길이 끝날 때까지 올라가야만 했다.

눈물이 차오르는 시기조차 지나 아는 사람 중에서도 어떤 사람이 이 이야기를 듣거나 나를 우연히 발견하면 진짜 즐겁게 웃겠다고 생각하며 완전히 진이 빠졌을 때서야 해치 석상이 나타났다. 요코소, 서울시. 해치상 조차 멀리서 보면 공사 때문에 막아 놓은 걸로 보여 잠시 완벽한 절망에 빠질 뻔 했지만 그 착각 덕에 해치 석상을 지나며 마음에서 우러나는 감사 인사를 보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내리막길이었다. 자전거로 흘러가는 내리막길은 자그마한 언덕도 평지도 없어 다음 달리기를 위해 페달을 밟을 필요도 틈도 없는 길이었다. 내가 얼마나 무거운지를 잊을 수 있을 정도로. 그래서 그 가벼움에 자전거 정거장을 발견해도 조금 더 달렸다. 다음에 튀어나오는 결정도 이렇게 무겁고 가벼워 무섭고 즐겁겠지.


👌_SEE YOU NEXT WEEK

이번주는 안녕히,
이번주는 안녕히,

🌎_SEE YOU AGAIN

다음주는 건강히,
다음주는 건강히,

✒ 이달의 편집자 💃🏻🐆

이번 레터는 저의 독주였습니다. 저만을 위한 무대라니 생애 처음이네요. 이 영광을 동료들에게 돌립니다. 자전거를 달렸던 밤과 어울리는 음악을 골랐어요. 여러분, 늦은 밤 문득 서로가 생각나는 그런 여유 있는 한주가 되기를. 주말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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