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 다시 쓰는 시작

💃🐕🐴🍷 :: 틴더, 학창시절, 취향

2021.10.04 | 조회 4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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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리밋

동갑내기 30대의 좌충우돌 각자도생 일주일 취재기

💃🐕 멋장이미식가 Kelly 🐴 안다정보스 동호수와집 🍷 게으른개미 비언어 🤎 그리고 당신, 구독자


💃 마음의 문을 닫아주세요 🐕

  며칠 전, 틴더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그동안 대부분의 데이팅앱을 찍어 먹어보고 틴더에 정착했던 요 몇 개월, 가끔 서로를 확인하는 인스타그램 친구도 생겼고 종종 대화를 나누는 다른 언어권 친구도 생긴 걸 봤을 때 분명 문득 누군가와 대화하고 싶을 때 가장 적합한 플랫폼이긴 하다. 외모, 몸, 취향소유물 등으로 프로필 사진을 구성하고 프로필도 직접 작성하다보니 구경만 해도 재미있는 케이스도 많았다. 본인이 원하는 걸 적기도 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본인을 어필하기도 하고 이모티콘 조차 채우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일단 동물 사진이 프로필에 있으면 가만히 구경하고 있기도 좋았다. 그러던 틴더에서 드디어 탈퇴했다. 계정 삭제 완료.

  와인이 문제라고 하고 싶은데, 사실 술맛을 기억하는 내가 문제다. 한 잔에서 끝내지 않고 더 마시면 얼마나 맛있는지를 알고 있는 내가 문제다. 그런데 정말 맛있지, 요즘 같은 밤에 화이트 와인이 밤에 화이트 와인을 마시며 음악도 듣고 영화도 보고 책도 읽으면 세상이 123% 정도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마음에 여유라는 호수가 가끔 범람할 때가 있고 그런 순간은 주로 와인이 있는 밤이어서 그때는 누구하고도 대화를 하지 말아야 하는데, 틴더를 했고, 대화를 하다가 바로 다음 날 만나기로 약속했다.

  최근 하늘을 올려다보면 구름 사이 사이에도 음영이 보인다. 그날은 더 깊고 더 높았다. 햇볕은 쨍쨍했고 바람은 잔잔했다. 그 사람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이런 저런 신변잡기식 대화를 나눠도 마음은 편했다. 대화하기 편한 사람이었다. 카페에서 대화를 하다가 침묵이 돌아도 어색하지 않았고 공원을 같이 걷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냥 편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틴더에서 만난 사이였기 때문에 상대가 기대하는 관계는 내가 느낀 편안함과 완벽히 충돌 중이었다. 내 첫 연애가 떠오르는 시간이었다. 상대는 나와 스킨십이 하고 싶고, 가능하면 더 다양한 성적인 관계를 맺고 싶지만 나는 전혀 내키지 않아 다양한 방식으로 거절하는 불편한 시간.

  호다닥 헤어지고 나서 고민에 빠졌다. 서로 원하는 방향이 다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이트를 더 해봐야 하는 건지, 기존 방식대로 일과 커리어에만 집중해서 고통스러운 평온함으로 일상을 채우는 것이 더 나은 지. 연애를 오래 쉰 덕에 묻고 따지는 것 없이 솔직하게 다 말했다. 나는 너랑 섹슈얼한 텐션을 피워볼 마음이 딱히 안 든다. 연애 상대하고도 스킨십을 할 때까지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만 재확인했다. 다행히 대화는 잘 끝났고 틴더에서 누구를 만나든 오프라인으로 이어지면 상대 같은 인식이 대부분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도 확신했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이상한 사람은 어디에나 있고 어떻게든 마주친다. 작정하고 속이는 범죄자를 일단 미뤄둔다면, 데이팅 앱의 이슈는 다른 데 있다. 사람 만나기 어려운 때고, 20대 중반부터 날로 날로 인간관계는 좁아만 지면서 소개팅 조차 조심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틴더를 지웠다. 이제 굳이 서로의 지향점이나 이용 목적을 확인하고 어긋나기 위해 시간을 쓰고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대화 자체가 쉽게 이루어지고 그보다 더 쉽게 사라지거나 휘발되는 공간에 더이상 나를 놔두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이제 순전히 고통스러워 평온한 일상으로 복귀합니다.


🐴 The moment

  너는 내 학창시절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했다갑자기? 처음엔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너무 오랜만이었다.

  기억을 더듬어 주섬주섬 꺼낸 이야기는 친했던 친구와 서먹을 넘어 의절 수준까지 갔다가 결국 중3때 전학을 갔었던 일, 고등학교 때 단짝과 자주 다퉜고 삼각관계 비스무리하게 질투 어린 우정을 나눴던 일, 대학교 시절 비오는 날 세시간에 걸쳐 집에 오며 멀미와 함께 재수를 생각했지만, 이내 단념했던 일 등이었다. 물어본 상대방이 다 민망할만한 꺼리들을 늘여놓곤 이내 아차 싶었지만, 이미 주워담을 수 없는 물이었다. 버릇이었다.

  너를 만나기 전의 나는 내 과거를 자주 떠올리는 부류였다. 그것도 아주 별로인 기억만을 쏙쏙 꼬집어내어 지금과 퍼즐을 맞춰대는. 나에게 내가 지나온 시간은 아름다운 추억이 아닌, 그저 내가 나 자신을 탓할 수 있게 만드는 이유이자 대충 살아온(그렇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결과의 원인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로 내 과거를 소개하는 건 익숙한 일이었다.

  하지만 너라면 얘기가 달랐다. 아니 다르고 싶었다. 그런데 또 그런 것들만 내뱉고 만거다. 내 입을 막고 싶었다. 주워담고 싶어 주저리주저리 다른 이야기를 더 꺼냈지만 부연만 길어질 뿐이었다. 하지만 정작 너는 내 이야기를 듣고 크게 동요하지 않은듯 했다. 안심이 되는 한 편, 실은 별로 귀 기울여 듣지 않았던 걸까, 조금 섭섭해지려 하는데 너가 말을 꺼냈다. 나도 그런 적 있어.

  그건 평소 네가 자주 하던 말이었다. 단지 다른 게 있다면 오늘 우리의 관계가 좀 더 미래지향적으로 바뀐 이후 나온 말이라는 거.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지. 예전엔 그렇게 말할 때마다 내게서 너로 화제 전환이 되버리는 것 같아 서운한 맘이 들었는데, 이젠 아니었다. 비로소 너와의 대화에 '''우리'가 들어있는 느낌이었다.

  이후 너가 이야기한 것들이 사실 다 기억나지는 않는다. 그저 나를 보는 네 시선이 조금 더 따뜻했단 기억뿐. 너무 좋아해서 타투로도 새기려 했던 '느낌의 공동체'의 신형철의 문장이 생각나는 밤이었다. '그렇게 느낌의 세계 안에서 우리는 만난다.'

  그 밤 나는 너가 아닌 우리를 살짝 본 것도 같다.


🍷 취향의 발견

  근래 나의 시간들은 제법 엉망이었다. 나태해지고 게을러지고 자꾸만 즐겁고 손쉬운 것들만 하며 시간을 보냈다. 할 일이 태산 같았는데 한 가지도 마무리 짓지 못하고 시간을 잘만 흘려보냈다. 저녁이 되면 그다음 날을 계획하고, 그다음 날이 되면 다시 게을러지기를 반복했다. 움직이질 않으니 살이 붙는 건 물론이고, 조금 먹은 것들조차 소화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스트레스는 다시 자극적인 음식과 음주로 달래고, 다시 일어나면 또 후회하고 슬슬 스트레스를 받고. 이대로 나에게서 손 놓아버리면 영영 다시 못 잡겠구나 싶은 순간들이었다.

  주저앉은 순간은 인생 곳곳에 널려있다. 그런 순간이 오면, 나는 과거의 내가 극복한 방법을 떠올린다. 쌓인 극복은 경험치가 되어주었다. 나의 경험치가 발현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하루를 내어 좋은 책을 읽는 것. 해야 할 일 중 일의 경중을 뒤로 하고, 가장 먼저 끝날 수 있는 일을 시작하는 일.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해야 하는 일들의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기. 아침에 일어나서 운동 대신 영화 보기. 또는 조금 걷기. 작은 일상을 만들어서 굴리다 보면 어느샌가 큰 일상이 되어있었다.

  당신의 취향은 어떻게 되시나요? 그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는가? 당장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면 당신은 완벽하게 일상에 민감한 사람이다. 취향은 여가활동처럼 시간을 내어 별도로 하는 것을 이야기한다기보다는, 생활 곳곳에 묻어있는 나의 결정들을 얘기하는 것이니, 당황하거나 고민 없이 취향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일상에 얼마나 민감한 사람인지 알 수 있다. 그러니 당신의 취향을 묻는 말은 다음으로 대체된다. 당신의 일상은 어떤가요?

  취향은 어느 곳에나, 아주 일상적으로 존재한다. 쉽게는 음식을 고르는 것부터 선호하는 와인이나 언제나 주문하는 커피와 같이- 옷이나 영화, 음악은 물론이고, 가장 좋아하는 아침 시간. 하늘의 모양. 공기의 촉감까지. 행복한 사람일수록 사소한 취향이 많다. 많은 것들로 나를 만들고, 일상과 생활을 쉽게 흘려보내지 않는 것이다. 모든 일에 본인의 선택과 색깔을 넣고, 모든 시간을 자신으로 채워 넣는다.

  앞으로 연속되는 글에는 나의 취향을 미시적으로 적어볼 예정이다. 내가 일상을 채워 넣는 방법들을 되짚어가다 보면, 금세 나는 나를 또다시 사랑하고 아끼게 되지 않을까.

  가볍게 요가를 마치고 80도로 식힌 물에 30초 동안 우려낸 우전차 한 모금. 앉았을 때 편안한 바지, 피부에 자극 없는 부드러운 니트를 골라 입고 외출한다. 약속에 늦지 않도록 시간 맞춰 지하철을 타고, 책을 읽는다. 나는 이 모든 사소한 선택이 나로 살아가는 의미를 찾는 과정임을 안다. 물론 평생이 지나도 나는 나를 모를 거다. 그저 미스터리한 나에게 호기심을 잃지 않고, 지금 관심 가는 것에 몰입하며 나와 잘 지내자는 마음뿐이다.

나의 최소 취향 이야기, 신미경, 상상출판, 2020, 첫문단

✒ 금주의 편집자 🍷

🙌 전투적인 우리의 시작을 알리는 행진곡 🙌
다시 쓰는 시작을 전투적으로 열어봅니다. 처음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오래도록 했는데 생각만큼 화려하게 되진 않았네요. 그래도 어쨌거나 우리는 시작을 했고, 조금 더 놀아보기로 합니다.

 

노리밋에서는 두 명이 일주일에 한 번 한 주를 살며 경험한 이야기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구독자님, 다음 주에도 같이 놀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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