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 안녕하세요, 오브레어입니다. 제가 돌아와씁니다.
지난 달에 발행을 잠깐 멈춘다는 메일을 보내면서 한 달 안에 꼭 돌아오리라 했는데 그래도 많이는 안 늦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간 구독 끊지 않고 기다려주셔서 참말로 감사합니다. 기껏 구독 했더니 안 보내네..? 싶으셨을 새로운 구독자분들께도 감사를 전합니다!
우선.. 근황 업데이트가 먼저겠지요?
그 집 어쩌구 일은 잘 처리되었는가 ➡️ 예스
그럼 이제 열심히 보낼 것인가 ➡️ 예스
그럼 이제 다 괜찮은가 ➡️ 예스 앤 노입니다
저한테 별 이상한 소리를 다 하던.. 집주인은 제 삶에서 잘 퇴치가 되었습니다. 부동산 에이전시로부터는 도움을 못 받았지만 학교에서 도움을 받았고, 타이밍이 좋게(?) 집주인이 덜 미쳐 날뛸 때 후다닥 일을 처리했고, 같은 반에서 천사가 나타나서 그녀의 집으로 급하게 짐을 옮겨 살게 됐어요. 그 집에 11월까지 살 렌트비를 냈지만 10월 말부터 나와 살게 됐습니다. 보증금도 무사히 전액 돌려받았고요.
이사 나온 첫 날은 모든 게 꿈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더라고요. 1주일 쯤 지나고 나니 다시 잠도 잘 자기 시작했고, 쭉쭉 빠졌던 살도 다시 돌아왔고, 다행히 12월부터 입주할 집을 찾아서 계약도 끝냈습니다. 혼자 잘 지내면서 저를 돌아보고 돌보는 시간을 좀 가지리라 생각하면서 특히 잠이 올 때마다 무조건 잤어요. 그래서 또 다시 좀 제자리로 돌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지난 금요일 학교에서 워크샵 하다가 혼자 눈물이 터져서 호호... 한국에서 온 평소에는 웃긴데 가끔 눈물이 많은 언니가 되었씁니다.
고군분투를 하는 동안 스톡홀름의 낮은 점점 짧아져서, 이제는 아침 8시에도 하늘이 어두컴컴하고 오후 3시부터 해가 지기 시작합니다. 오후 4시는 완전히 깜깜한 밤이예요. 아, 지금 10시 같다 하고 시계를 보면 오후 6시 쯤입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을 알뜰히 쓰기가 어렵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뭐 좀 해보자 싶으면 이미 밤인 느낌..
거기에 매일 영어로 얘기하다 보니 할 말 다 못하는 삶, 슬슬 눈에 거슬리기 시작하는 일부 학우들(?), 잔고 걱정 미래 걱정이 더해져서 자꾸만 밤 늦게까지 깨어 있게 되는 것 같아요. 깨어서 유튜브만 하염없이 보다가 벌개진 눈으로 잠드는 삶.. 쓰고 나니 더 우울해 보이네요 흠.
뭘 하면 다시 좀 트랙에 오르는 기분이 들까 싶어서 일단 넷플릭스를 열고 보다 만 콘텐츠들을 쭈욱 끝냈어요. 그리고 오브레어를 다시 시작해야지, 했는데 막상 본 콘텐츠들은 썩 할 말이 없고, Coming soon 탭에서 알림 설정해 둔 콘텐츠들을 둘러보다가 <틱, 틱... 붐!>이 엊그제 공개된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거닷!
뮤지컬을 많이 보지 않았더라도 익숙한 넘버들이 있잖아요. 예를 들면 <지킬 앤 하이드>의 '지금 이 순간'이나 <레 미제라블>의 'Do you hear the people sing?' 이랄지.. 뮤지컬 <렌트>의 'Seasons of Love'도 꽤 유명한 넘버 중 하나인 것 같아요.
<틱, 틱... 붐!>은 뮤지컬 <렌트>를 작사, 작곡한 조너선 라슨의 유작이자 본인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녹인 동명의 뮤지컬을 원작으로 한 영화입니다. 몇 년 전 브로드웨이를 완전히 뒤흔든 뮤지컬 <해밀턴>의 작가인 린 마누엘 미란다가 연출을 맡았고, 앤드류 가필드가 주인공 존을 연기했어요.
존은 뉴욕의 허름한 아파트에 살고 있고, 곧 30살 생일을 맞는 예술가예요. 8년 동안 써 온 뮤지컬의 워크샵을 앞두고 있는데, 아직 몇 곡을 쓰지 못했어요. 곧 30살이 된다는 것에 조금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그는 전설적인 뮤지컬 작곡가 스티븐 손드하임을 존경하는데, 그 분은 27살에 데뷔했거든요. 지금은 '뮤지컬 작곡가면서 식당에서 일한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서른이 넘으면 '작곡이 취미인 식당 서버'가 될 테니까요.
워크샵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아직 곡을 완성하지 못했고, 여자친구는 교외에 일자리를 구했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룸메이트였던 어릴 적 친구는 일찌감치 배우의 길을 포기하고 광고회사에서 일하는데, 이스트사이드의 삐까뻔쩍한 아파트로 이사를 가네요. AIDS를 앓고 있는 친구는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어 입원하고, 워크샵에 제작자를 초대해야 할 존의 에이전트는 전화도 받지 않습니다. 그와중에 하루, 또 하루가 지나서 워크샵이 코 앞으로 다가와요. 영화는 이렇게 뮤지컬 <틱틱붐>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조너선 라슨의 고민, 생각, 질문들로 틈을 촘촘히 메워나갑니다.
린 마누엘 미란다의 뮤지컬 <해밀턴>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이자, 초대 재무장관을 지낸, 10달러 지폐에 초상화가 실린 알렉산더 해밀턴의 생애를 다루는데요. 미국 독립 전쟁 중에 조지 워싱턴이 부르는 ‘Right Hand Man’이라는 넘버에 이런 가사가 나와요. Dying is easy, young man. Living is harder. 처음 들었을 때 너무 좋아서 적어뒀었어요.
전쟁에서 뭔가 보여주겠다, 마지막 순간까지 싸우다 장렬히 전사하겠다는 해밀턴에게 조지 워싱턴이 하는 말인데요. 수없이 많은 젊은이들이 죽어나가는 전장에서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는 또 한 명의 젊은이에게 어른이 건네는 조언이기도 하고, 실은 명백한 것이지만 문제에 파묻힌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해답에 대한 힌트인 것도 같아요. 죽을 각오보다도, 어떻게 살 것인지, 무엇을 위해 죽을 것인지 생각하라는 말로도 들리고요.
<틱, 틱... 붐!> 에서도 8년 동안 모든 것을 쏟아 부어서 만든 작품을 끝내고, 이제는 갈 곳을 잃어버린 존에게 에이전트 로자가 '다음 작품은 네가 잘 아는 것에 대해서 써'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더라고요. 린 마누엘 미란다는 이런 야망에 찬, 본인의 능력에 대한 확신은 가득하지만 아직 해낸 것이 없어 조급하고 불안한 젊은 영혼을 그리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주위에 사랑과 지원을 잔뜩 배치해서, 주인공에 이입하는 나에게 위로를 건네는 느낌입니다. 게다가 앤드류 가필드 전공(?)이잖아요. 어딘가 불안한 젊은 영혼.. 도무지 집중 안 하기가 더 어려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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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는 좀 있는데 학생이고, 돈을 안 버니까 어른도 아닌 것 같고,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 것인지, 여기 살고 싶은지 돌아가고 싶은지, 때 아닌 정체성 위기를 겪고 있는 저에게 어쩐지 위로로 다가오는 영화였습니다. 한 해가 끝나가니 왠지 좀- 저랑 비슷한 기분이 드신다면, 어느 날 밤 고요하게 혼자 보기 좋을 것 같아요.
즐거운 한 주 보내세요 구독자님. :)
🧐 얼마나 닮았을까 - 조너선 라슨의 30/90
- 아무래도 실존 인물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배역을 연기하게 되면, 그 인물이랑 얼마나 닮았는지 - 외모 뿐 아니라 이모저모로 - 에 대한 관심도 생기기 마련인데요! <틱, 틱... 붐!>의 유튜브 영상들 댓글창을 보면 앤드류 가필드가 조너선 라슨이랑 비슷하다고는 생각을 안 해 봤는데, 앤드류 가필드 연기가 너무 훌륭허다😭는 코멘트가 꽤 보이더라고요.
- 그래서 그의 생전 영상을 찾아봤습니다. (아마 영화에 나왔던 클립과 같은 날 같기도 하고요?)
👀 디즈니플러스 광고는 아니지만.. - 뮤지컬 <해밀턴> 중 'Schuyler Sisters'
- N년 전의 제가 너무 보고 싶어서.. 한국에서 일단 온라인 로터리를 넣고.. 당첨 되면 급하게 휴가 내고 뉴욕 가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만든.. 민주당 대선 후보 캠프에 기부하면 온라인 공연 볼 수 있대서 외국인도 기부할 수 있나 하는 생각도 한.. 뮤지컬 <해밀턴>입니다.
- 지금은 <해밀턴>의 실황 녹화를 디즈니 플러스에서 볼 수 있어요. (저도 곧 결제하고 볼 예정 흑흑)
🥰 린 마누엘 미란다의 훌륭함을 알아주세요 - Tony Awards에서의 수상소감
- 얼마 전에 학교에서 친구들이랑 동시대 영화 감독들, 크리에이터 얘기를 하다가 타이카 와이티티 얘기가 나왔는데 그는 작품도 그렇지만 본인 자체도 너무 매력적이다.. 그런 얘기를 했거든요. 근데 이 분야(?) 최고는 저에겐 린 마누엘 미란다 인 것 같아요.
- 목소리를 내고, 웃음을 잃지 않고, 겸손하고, 인간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성정이 그의 작품에도 녹아있는 느낌입니다. 남이 우는 것만 봐도 같이 울 수 있는 눈물이 많은 분은,, 누르기 전에 주의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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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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