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슬기로운 격리 생활

[생활밀착형에세이매거진] 쭘마인서울

2022.01.13 | 조회 6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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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zumma in Milan

밀라노에 입성한 한국 아줌마의 유쾌한 생활밀착형 밀라노 이야기

Vol.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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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 할일이 많을 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분업”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일의 영역을 적절히 나누어 빠르고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것이다. 갑작스럽게 한국행이 결정되면서 해야할 일들이 한꺼번에 생겼을 때 우리는 서로의 영역을 눈치껏 나누고 분업을 했다.

가장 중요한 귀국날짜 결정과 항공권 예약은 홍 군 담당이다. 버릴 물건과 남겨둘 물건, 가지고 갈 물건을 나누고 짐을 싸는 일은 내 담당이다. 이 일은 또 한번 세분화 되는데 아이들이 챙겨가야 할 장난감과 책, 잡동사니를 결정하고 한쪽에 쌓아 놓으면 내가 버리거나 짐을 싸는 식이다. 혹여라도 이 세분화 작업이 적절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울고불고 난리가 난다. 

귀국 날짜가 결정되면 바로 코로나 검사를 예약해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은 현지어! 홍 군 회사 직원의 도움을 받아 병원을 예약했다. 이제 남은 것은 한국에서 10일도안 자가격리를 할 장소를 물색하는 일이다. 이때는 고도의 협력이 필요한데, 둘이서 적당한 가격의 적당한 숙소를 찾아본 다음 서로 동의를 얻은 후 예약을 진행한다. 이탈리아 현지 숙소 예약은 홍 군이 담당했다면 한국에서의 숙소 예약은 내 담당이다. 그 이유는 유료는 홍 군이, 한화는 내가 관리하기 때문이다.

 

성격이 급해 미리미리 알아보고 숙소를 구해야 하는 나와 다르게 그는 꽤 신중한 성격이다. 뭘 그리 서두르느냐, 천천히 해도 된다, 라고 말하는 그를 보며 얼마나 한숨을 내쉬었던지. 결국 귀국을 이틀 앞두고 숙소를 알아보는데 마땅한 곳이 보이지 않았다. 있긴 하지만 금액이 너무 비싸거나, 세탁기가 없거나, 주말 가격이 세 배인 곳이 대부분이었다. “그러게 빨리 알아보자고 했잖아!!” 라고 퍼붓고 싶었지만…..

‘이너피스~ 산은 산이로되 물은 물이로다~’ 

그가 숙소 하나를 찾아서 카톡으로 보냈다. “투룸, 넓은 테라스, 가족 가능, 자가격리 가능, 세탁기, 냉장고, 조리가능” 연남동에 있는 1층 주택이었다. 

“여기 괜찮네. 예약할게!!”

연남동이 핫플레이스라는 건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한번도 가보지 못했다. 이런 곳에서 지내면 어떤 기분일까? 

자가격리 하느라 밖에 나가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꽤 좋을 것 같았다.

 

11시간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잠을 거의 자지못해 피곤했지만 견딜만 했다. 미리 작성해둔 서류뭉치를 들고 당당하게 걸었다. 무슨 말을 해도 잘 통하는 이 기분, 너무 좋았다. 

“줄을 이쪽에 스셔야죠. 이거 쓰고 가셔야죠. 저기요? 이쪽이라구요. 사람 진짜 많네….”

인상을 쓰며 일하는 사람들, 뭔가 지쳐보이는 모습들, 아침이었지만 저녁같은 풍경들. 좋았던 마음은 사라지고 짜증이 밀려올라왔다. 

“뭐가 이렇게 복잡해. 서류를 왜 이리 많이 쓰는 거야. 똑같은 걸 왜 계속 하라는 거야~~”

어느새 나도 똑같은 모습이 되고 말았다.

 

방역택시를 타고 마포구보건소에서 코로나 검사를 했다. 다시 방역택시를 타고 예약해 두었던 연남동의 숙소로 향했다. 사람들이 길게 줄서있는 가게를 지나 주택이 보이는 골목으로 들어갔다. 골목 왼쪽 끝에 주소지의 주택이 보였다. 

짐을 바리바리 끌고 주택으로 들어갔다. 내가 예약한 102호는…. 1층이라고 하기엔 좀은 낮고, 지하라고 하기엔 조금 높은 곳이었다. 입구 앞 마당에는 인조잔디가 깔려 있었고, 테이블 세 개와 의자가 있었다. 분명히 넓은 테라스라고 했는데….

문을 열고 102호로 들어갔다. 사이트에서 봤던 소파와 주방, 침실과 세컨드 방을 둘러보았다. 짐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겠다. 사이트에서 말한 투룸, 주방, 소파가 있는 거실, 침대 두개가 있는 침실이 모두 있었지만, 원룸 같은 투룸을 어떡하지?  순간 캣 타워 같았던 복층 원룸이 떠올랐다. 집없는 설움이 다 그렇지 뭐…. 

“이거 사기 아니야?”

홍 군과 둘이 마주보며 실 없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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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보니 막내 고모 집이 숙소와 꽤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날 오후 고모가 먹거리를 바리바리 싸들고 왔다. 

‘쌀 반가마니, 우럼마표 김장김치 한통, 국수 한박스, 김, 사과, 귤, 우럼마표 유자차, 생수 2박스, 간편식 국거리, 죽, 직접만든 누룽지, 아이들 과자와 마이쮸”

“고모, 겨우 10일 지낼 건데 이건 마치 두 달 식량 같아.”

“응, 먹고 남으면 다시 줘~~”

 

막내고모는 울아부지와 스무살 차이가 난다. 그러니까 울아부지가 스무살일 때 할머니가 막내고모를 낳았다. 그것도 거꾸리였다.  노산에 거꾸리였던 막내 고모는….. 천재였다. 고등학생때는 영어단어를 외운 후 씹어 먹었다고 하는데, 진짜 종이를 씹어서 먹었다고 한다. 막내고모와 내 큰언니는 겨우 5살 차이가 난다. 큰언니와 큰형부가 5살 차이가 난다. 고로 막내고모와 내 큰형부는 동갑😂

엄마가 처음에 우리집에 시집을 왔을 때 막내고모가 기저귀를 차고 아장아장 걷고 있었다고 하니, 고모를 키운 건 거의 울엄마인 샘이다. 그래서일까? 막내고모와 울언니들은 꽤 각별하다. 덕분에 나도 고모의 덕을 이렇게 보고있는 중이다. 

먹고 자는 건 문제가 아닌데, 좁은 숙소에 웅크리고 있자니 속이 영 답답해서 못쓰겠다. 다행히도 테라스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좁긴 하지만 있는 게 어딘가? 

바깥 공기를 좀 마셔볼까 하고 문을 열고 나갔다.

“아~악 추워!!”

밀라노의 추위는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다시 집안으로 들어와 뜨끈한 바닥에 드러누워 귤을 까먹었다. 

매번 밥과 김치만 먹고 살 수는 없는 법. 하루에 한 번 정도는 배달을 시켜 먹는다. 그렇게 먹고 싶었던 떡볶이와 순대, 치킨, 짜장면을 시켜먹었다. 이렇게 집에만 있어도 돈이 술술 나가는구나…. 

문득, 우리가 집 없이 산지 거의 6개월이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집 없는 삶이 왜 이리 괜찮은 건지… 좀 이상했는데 어느새 익숙해진 모양이다. 이러다 집이 생기면 어색해지겠어…. 

오늘로 자가격리 5일차. 이제 5일만 지나면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겠지? 아니, 백신패스 때문에 그것도 힘들 것 같다. 격리가 끝나는 날, 백신 3차를 예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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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친가 친구 엄그아 코너입니다.

엄마 그냥 아들, 엄그아가 얼마전에 이렇게 말했어요.

“엄마, 예전에 있잖아. 엄마가 나랑 소은이만 집에 두고 밖에 나가면 날 버릴 것만 같았어.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그땐 그랬어. 완전 어이없지?”

우리집 엄그아는 아기때부터 낯가림이 엄청 심했어요. 아빠와 100일 즈음에 떨어져 살았으니, 온 세상이 엄마였지요. 그래서 엄마밖에 모르는 엄마바보 아들이었답니다. 돌이 지나면 낯가림이 좀 사라질 줄 알았는데 아니더군요. 아이는 계속 낯을 가렸어요. 엄마와의 분리불안도 심했어요. 방에 혼자 있는 것도 무서워 했지요. 엄마가 안 보이면 이 방, 저 방 찾고 다니기도 했어요. 화장실에 갈 때 역시 마찬가지였죠. 

아이의 분리불안을 이해할 수 없었어요. 어딜 가든 아이를 데리고 다녀야 한다는 게 너무 스트레스였습니다. 엄친아들은 어쩜 그렇게 엄마와 떨어져 잘 있는지. 얼마나 부러웠는지 몰라요. 아무도 없이 오롯이 나 혼자 외출해서 커피 한잔 하고 싶은 심정. 공감하시나요? 

가끔 우리가 한국에 살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랬다면 저도 일을 해야 했겠죠. 아이도 당연히 어려서부터 어린이집에 맡겼을 거에요. 그런데, 이렇게 분리불안이 심한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녔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요. 아침마다 전쟁이었을 것 같아요. 해외에 살았기 때문에 힘든 게 있었지만 아이를 직접 캐어할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하기도 해요. 

이제 한국 나이로 12살이 된 엄그아는, 여전히 엄마와 함께 하는 걸 좋아해요. 하지만 엄마가 가는 모든 곳을 따라다니진 않아요. 귀찮다며 그냥 집에 있겠다고 하지요.

내 아이를 보면서 엄마와 함께한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정서적으로 안정이 되며 분리불안 또한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그 시간동안 엄마는 늙어가지만요. 

우리집 남의 편도 분리불안이 좀 있어요. 출장을 가거나 일 때문에 저랑 좀 떨어져 있으면 그렇게 불안해 해요. 휴~~~ 내 몸을 몇개로 나눠서 가져가라고 할 수도 없고 (말하고 보니 좀 끔찍 하네요). 

암튼 분리불안도 기질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한가지에 집착하거나 몰두하는 기질의 아이들이 좀 더 분리불안을 느끼는 거 아닌가 싶어요. (우리집 엄그아도 남의 편도 나에게 집착하는 편….) 

집착이나 분리불안을 다른 말로 하면 과한 애착이 아닐까 싶어요. 아무리 불안한 기질을 타고 났더라도 양육자와 애착이 잘 형성된다면 분명 좋아지니까요. 

혹시 아직 어린 아이들을 힘겹게 키우고 계시는 구독자님 계시다면 조금만 힘내세요. 시간은 붙잡아도 가고, 아이는 크고, 우리는 나이드니까요. 

또 혹시 아나요? 우리집 엄그아가 엄친아가 될 지도 모르죠. 그날까지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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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인스타그램엔 이른 시간부터 새들이 날아다닌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먹이를 찾아다니는 모닝 짹짹이들. 14일 동안 매일 미라클 모닝을 실천하며 1층부터 14층까지 꿈의 건물을 쌓는 이들이다. 

 

나는 MKYU 학생은 아니지만 인스타그램 유저의 절반 정도가 그쪽 출신이기에 그들의 행보를 눈여겨 보게된다. (구독자도 혹시 모닝 짹짹이?) 

가끔은 그들이 하는 것들 중에 몇개를 따라해 보기도 하고, 유튜브로 어떻게 하는지 관찰하기도 한다. 하지만 절대 가입은 하지 않는다. 이상하게 남들이 다 하는 건 또 하기 싫은 반항아 기질이 있다. 

이번 미라클 모닝도 조용히 따라해보려 했지만, 완전히 실패다. 시차적응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와 한국의 시차는 8시간. 밀라노가 아침이면 한국은 이미 오후이고, 한국이 아침이면 밀라노는 저녁이다. 그렇다보니 새벽까지 잠이 들지 않아 뒤척이다가 모닝 짹짹이들이 미라클 모닝을 할 시간에 겨우 잠든다. 남들이 활기차게 하루 일과를 보낼 때 겨우 일어나 집안 일을 한다. “엄마, 하루가 왜 이리 짧아?” 이미 반나절이 지난 시간에 일어나니 짧을 수 밖에….ㅜㅜ  몸은 이곳에 있는데 정신은 아직도 저기 밀라노를 방황하고 있다.

 

남들이 쌓아 올리는 시간의 결과들을 볼 때마다 내 모습이 초라해진다. 남들은 저렇게 열심히 사는데 나는 잠만자고 있으니…. 성공하기 위해선 새벽에 일어나 더 열심히 꿈를 좇아야 한다는 그 말이 내 귀엔 “야, 넌 뭐하냐? 넌 꿈이나 있냐? 이렇게 게을러서야…” 하고 삿대질 하는 것 같다. 

시간,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절대적 시간.

하지만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시간의 질이 달라지는 상대적 시간.

나는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 나의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흐르고 있는가? 아니면 뒷걸음질 치고 있는가?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된 습관이 바로 새벽기상이라고 한다. 그들의 습관을 따라하다보면 내 습관이 되고 나 역시 성공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귀납적 성공이론이 꽤나 그럴싸하다.

그렇다면 이 성공의 기준은 무엇일까? 돈을 많이 버는

것? 유명해지는 것? 명성을 얻는 것? 건물주가 되는 것? 

 

내가 성공한 사람들의 습관을 따라하지 못하는 이유는 “목적”이 없기 때문인 것 같다. 이루고자 하는 꿈은 목적이 되고, 성공의 기준이 되며 곧 상대적인 시간의 주인이 될 것이다.

나만의 시간은 무엇일까? 

지금부터 그걸 찾아보고 싶다. 

내 시간을 찾는 것은 곧 내 꿈을 찾는 것이고 삶의 목적을 찾은 일일 테니까! 

구독자님의 시간은 무엇인가요? 당신의 꿈과 목적은무엇인가요? 


자가격리 숙소에 도착한 후에 노트북을 켰는데 고장난 것을 알았습니다. 고민하다 핸드폰을 이용해 썸네일을 만들고 글을 썼어요. 그렇다보니 제가 보지 못한 오타가 있을것 같아요. 사실 노트북으로 써도 오타가 남는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오타쟁이에요)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노트북은 격리가 끝나는 대로 고칠 생각이에요. 새로 하나 사고 싶지만…. 남의 편이 안 사줄 것 같아요. 😂

 

두 엄지 손가락으로 열심히 썼더니 손가락이 얼얼합니다. 

퇴고를 빠르게 하고 방바닦에 앉아서 귤을 까먹을 생각이에요. 이런 겨울의 나른함이 너무 오랜만이라서 아주 천천히 그리고 여유롭게 즐기고 싶습니다. 

 

쭘마인밀란은 무료 매거진입니다. 언젠가는 유료 전환을 하려고 하는데, 당분간은 무료로 발행할 생각이예요.

혹시 저에게 꼭, 굳이, 뭔가를 해주고 싶으신 분들은 

하단의 “커피 보내기”를 이용해주세요. ^^ 

 

모두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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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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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sie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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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ver 2 years 전

    이번 호에서 제 닉네임을 발견하고 흠칫…놀랐네요!🤣저도 선량님과 마찬가지로 주변에 모닝 짹짹이분들이 많이 계셔서 반쯤 다리를 걸치고 새벽기상 챌린지에 도전해 보았답니다! 시간이란 녀석은 내가 쓴 흔적을 고스란히 입력해 그대로 돌려주는 얄미울 만큼 정직하고 공평한 친구죠🤣 저도 새해 벽두부터 새벽에 일어나 없던 시간을 만들어 내고 꿈을 창조하는 연습을 날마다 하고 있는 중입니다!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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