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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즈의 지식토킹입니다. 구독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즈의 지식토킹을 운영하고 있는 안광섭입니다. 얼마 전 한 구독자분께서 메일과 댓글을 통해 이런 질문을 주셨습니다. 인공지능 시대에 ‘글(text)’이라는 콘텐츠의 가치가 점점 낮아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이른바 AI Slop과 점점 구별하기 어려워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 저 역시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왔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AI가 더 많은 글을 만들어낼수록, 오히려 ‘누가, 어떤 생각으로 쓴 글인가’는 더 중요해진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저는 꾸준히 쓰고, 출처를 남기고, 저만의 생각과 관점을 최대한 솔직하게 공유하는 것에 집중하려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글뿐만 아니라 유튜브를 통해 목소리로도 생각을 전해보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구독자 여러분께 두 가지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러분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그리고 그 생각들이 저에게 큰 도움과 응원이 됩니다. 둘째, 공유를 부탁드립니다. 뉴스레터 내용을 SNS에 인용하시거나, AI를 활용해 이미지로 만들어 공유해주시는 분들이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다만, 출처를 함께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공유는 언제나 환영이며, 저에게 큰 동기부여가 됩니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으로 인상 깊게 읽었던 글을 하나 소개드립니다. 『동물농장』과 『1984』를 쓴 조지 오웰의 에세이 「내가 글을 쓰는 이유」입니다. 이 글은 1946년 『갱그럴』이라는 잡지에 기고된 글로,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본문 하단에 원문 링크도 함께 첨부해두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원문도 참고해보시기 바랍니다. === 『내가 쓰는 이유』 조지 오웰 아주 어릴 때부터, 아마 다섯 살이나 여섯 살 무렵부터, 나는 자라면 작가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열일곱 살에서 스물네 살쯤까지는 그 생각을 버리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나는 내가 내 본성을 거스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조만간 결국은 자리를 잡고 책을 써야 하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나는 세 남매 중 둘째였지만, 위아래로 각각 다섯 살씩 터울이 있었다. 게다가 여덟 살이 되기 전까지는 아버지를 거의 보지 못했다. 이런 이유들과 또 다른 이유들 때문에 나는 다소 외로운 아이였고, 곧 학교생활 내내 나를 인기 없게 만든 불쾌한 버릇들을 갖게 되었다. 나는 외로운 아이들이 흔히 그렇듯 이야기를 지어내고 상상 속 인물들과 대화를 나누는 습관이 있었다. 생각해보면 아주 처음부터 나의 문학적 야망은 고립되어 있다는 느낌,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는 느낌과 뒤엉켜 있었다. 나는 내가 말재주를 가지고 있으며, 불쾌한 사실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일상생활에서의 실패에 대해 나름대로 복수할 수 있는 일종의 사적인 세계를 만들어준다고 느꼈다. 그렇다고 해서 어린 시절과 소년기를 통틀어 내가 쓴 진지한 글, 말하자면 진지하게 쓰려 했던 글의 양이 많았던 것은 아니다. 다 합쳐도 여섯 쪽이 채 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네다섯 살 때 처음 시를 썼고, 어머니가 내가 부르는 대로 받아 적어주었다. 그 시에 대해서는 호랑이에 관한 것이었다는 점, 그리고 그 호랑이에게 “의자 같은 이빨”이 있었다는 점 외에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표현 자체는 꽤 괜찮았지만, 아마 블레이크의 「호랑이, 호랑이」를 베낀 것이었을 것이다. 열한 살 때 1914–18년 전쟁이 발발하자 나는 애국적인 시를 썼고, 그것은 지역 신문에 실렸다. 2년 뒤 키치너가 죽었을 때 쓴 또 다른 시도 마찬가지였다. 조금 더 나이가 든 뒤에는 이따금 조지언 양식의 형편없고 대개 미완성인 ‘자연시’를 썼다. 단편소설도 두어 번 시도했지만 끔찍한 실패였다. 그 세월 동안 실제로 종이에 써 내려간, 진지한 작업이 되기를 바랐던 것은 그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 시기 내내 나는 어떤 의미에서는 문학 활동을 하고 있었다. 우선 주문받아 쓰듯 빠르고 쉽게, 그리고 별 즐거움 없이 만들어낸 글들이 있었다. 학교 과제와는 별개로 나는 기회시, 즉 반쯤 우스꽝스러운 시들을 썼는데, 지금 생각하면 놀라울 정도의 속도로 써냈다. 열네 살 때는 아리스토파네스를 흉내 내어 운문 희곡 한 편을 약 일주일 만에 완성하기도 했다. 또 인쇄본이든 손으로 쓴 것이든 학교 잡지를 편집하는 일도 도왔다. 그 잡지들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딱한 수준의 풍자물 같은 것들이었고, 나는 지금이라면 가장 싸구려 저널리즘을 할 때조차 들일 노력보다 훨씬 적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이 모든 것과 나란히, 나는 15년 이상 전혀 다른 종류의 문학적 훈련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것은 나 자신에 관한 하나의 연속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일이었다.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일종의 일기 같은 것이었다. 이것은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흔한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아주 어릴 때 나는 내가 로빈 후드 같은 인물이라고 상상하며, 흥미진진한 모험의 주인공이 된 내 모습을 그리곤 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이야기”는 조잡한 의미의 자기애적 성격을 잃고, 점점 내가 하고 있는 일과 내가 본 것들을 묘사하는 데 가까워졌다. 몇 분씩 내 머릿속에는 이런 식의 문장이 흘러가곤 했다. “그는 문을 밀어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모슬린 커튼 사이로 걸러진 노란 햇빛 한 줄기가 탁자 위로 비스듬히 떨어져 있었다. 그곳에는 반쯤 열린 성냥갑 하나가 잉크병 옆에 놓여 있었다. 그는 오른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창가로 걸어갔다. 아래 거리에서는 거북등무늬 고양이 한 마리가 죽은 나뭇잎을 뒤쫓고 있었다.” 이런 식이었다. 이 습관은 내가 스물다섯 살쯤 될 때까지, 문학과는 무관하게 보냈던 시기 내내 계속되었다. 적절한 단어를 찾아야 했고 실제로 찾기도 했지만, 그 묘사의 노력은 마치 내 의지에 반하여, 어떤 외부의 강제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이야기”는 아마 내가 나이에 따라 존경했던 여러 작가들의 문체를 반영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 기억으로는 언제나 같은 치밀한 묘사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열여섯 살쯤 되었을 때 나는 갑자기 말 그 자체의 즐거움, 곧 단어의 소리와 연상에서 오는 기쁨을 발견했다. 『실낙원』의 다음 구절은, 그리하여 그는 어려움과 고된 수고 속에 나아갔다. 어려움과 수고 속에 그는, 지금의 나에게는 그다지 대단하게 느껴지지 않지만, 당시에는 등골이 오싹할 만큼 큰 전율을 주었다. 그리고 ‘he’를 ‘hee’라고 쓴 철자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사물을 묘사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대해서라면 나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당시 내가 책을 쓰고 싶어 했다고 말할 수 있다면, 내가 어떤 종류의 책을 쓰고 싶어 했는지는 분명하다. 나는 불행한 결말을 지닌 방대한 자연주의 소설을 쓰고 싶었다. 세밀한 묘사와 눈길을 사로잡는 직유로 가득하고, 단어들이 부분적으로는 그 소리 자체를 위해 사용되는 화려한 문장들로 가득한 소설을 쓰고 싶었다. 실제로 내가 서른 살에 썼지만 훨씬 전부터 구상했던 첫 완성 장편소설 『버마 시절』은 어느 정도 그런 종류의 책이다. 내가 이 모든 배경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한 작가의 초기 발달 과정을 어느 정도 알지 못하고서는 그 작가의 동기를 평가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작가의 소재는 그가 사는 시대에 의해 결정된다. 적어도 우리 시대처럼 격동적이고 혁명적인 시대에는 그렇다. 그러나 그가 글을 쓰기 시작하기 전에 이미 그는 평생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어떤 정서적 태도를 갖게 된다. 물론 자신의 기질을 훈련시키고, 미성숙한 단계나 비뚤어진 기분에 고착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작가의 일이다. 그러나 초기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난다면, 그는 글을 쓰게 하는 충동 자체를 죽여버린 셈이 된다. 생계를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는 필요를 제외한다면, 적어도 산문을 쓰는 데에는 네 가지 커다란 동기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동기들은 모든 작가에게 서로 다른 정도로 존재하며, 한 작가 안에서도 그가 처한 분위기에 따라 그 비율이 때때로 달라진다. 그것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순전한 자기중심성. 똑똑해 보이고 싶은 욕망,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싶은 욕망, 죽은 뒤에도 기억되고 싶은 욕망, 어린 시절 자신을 무시했던 어른들에게 복수하고 싶은 욕망 등이다. 이것이 동기가 아니라고, 그것도 강력한 동기가 아니라고 가장하는 것은 위선이다. 작가들은 과학자, 예술가, 정치인, 변호사, 군인, 성공한 사업가들과 이 특성을 공유한다. 요컨대 인류의 상층부 전체와 공유하는 것이다. 인간 대다수는 극도로 이기적이지 않다. 서른 살쯤이 지나면 그들은 개인적 야망을 버린다. 실제로 많은 경우, 자신이 개별적 존재라는 감각마저 거의 버리고 주로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거나, 단순히 고된 일상에 짓눌려 살아간다. 그러나 재능 있고 의지가 강하며, 끝까지 자기 자신의 삶을 살겠다고 결심한 소수의 사람들도 있다. 작가들은 이 부류에 속한다. 진지한 작가들은 전반적으로 기자들보다 더 허영심이 강하고 자기중심적이지만, 돈에는 덜 관심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둘째, 미학적 열정. 외부 세계에서, 혹은 말과 그 올바른 배열 속에서 아름다움을 감지하는 능력이다. 한 소리가 다른 소리에 부딪힐 때의 울림, 좋은 산문의 단단함, 좋은 이야기의 리듬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다. 가치 있다고 느끼며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경험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은 욕망이다. 많은 작가들에게서 미학적 동기는 매우 약하다. 그러나 팸플릿 작가나 교과서 저자조차도 실용적 이유와는 별개로 마음이 끌리는 단어나 문구를 가지고 있다. 혹은 활자체나 여백의 폭 같은 것에 강한 감정을 느낄 수도 있다. 철도 안내서 수준을 넘어선 책이라면, 어떤 책도 미학적 고려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셋째, 역사적 충동.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자 하는 욕망, 참된 사실을 찾아내어 후세가 사용할 수 있도록 저장해두고자 하는 욕망이다. 넷째, 정치적 목적. 여기서 ‘정치적’이라는 말은 가능한 한 넓은 의미로 사용한다. 세계를 어떤 특정한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욕망, 사람들이 추구해야 할 사회의 모습에 대한 생각을 바꾸려는 욕망이다. 다시 말하지만, 어떤 책도 진정으로 정치적 편향에서 자유롭지 않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견해 자체가 하나의 정치적 태도다. 이 여러 충동들이 서로 어떻게 다툴 수밖에 없는지, 또 사람에 따라, 시기에 따라 어떻게 변동할 수밖에 없는지는 쉽게 알 수 있다. 본성상, 여기서 말하는 ‘본성’을 처음 성인이 되었을 때 도달한 상태라고 한다면, 나에게서는 앞의 세 동기가 네 번째 동기보다 더 강했을 것이다. 평화로운 시대에 살았다면 나는 장식적이거나 단순히 묘사적인 책을 썼을지도 모르며, 내 정치적 충성심을 거의 의식하지 못한 채 지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나는 일종의 팸플릿 작가가 되도록 내몰렸다. 처음에는 나에게 맞지 않는 직업, 즉 버마에서 인도 제국 경찰로 5년을 보냈다. 그 뒤에는 가난과 실패감에 시달렸다. 이것은 권위에 대한 나의 타고난 증오를 키웠고, 처음으로 노동계급의 존재를 충분히 인식하게 했다. 또한 버마에서의 직무는 제국주의의 본질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게 해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만으로는 내게 정확한 정치적 방향을 부여하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그다음에는 히틀러, 스페인 내전 등이 찾아왔다. 1935년 말이 되어도 나는 여전히 확고한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 그 무렵 내가 쓴 작은 시 한 편이 기억난다. 그것은 나의 딜레마를 표현한 것이었다. 이백 년 전쯤 태어났더라면 나는 행복한 목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영원한 심판을 설교하고 호두나무가 자라는 것을 바라보며. 하지만 아아, 나는 사악한 시대에 태어나 그 즐거운 안식처를 놓쳤다. 내 윗입술에는 털이 자라났고 성직자들은 모두 말끔히 면도한 얼굴이 되었으니. 그보다 더 뒤의 시대도 좋았다. 우리는 너무도 쉽게 만족했다. 우리는 불안한 생각들을 나무의 품에 안겨 재우곤 했다. 무지한 채로도 우리는 감히 인정했다. 지금은 숨기려 드는 기쁨들을. 사과나무 가지 위의 방울새 하나가 내 적들을 떨게 만들 수 있었던 시절을. 그러나 소녀들의 배와 살구, 그늘진 개울 속의 잉어, 말들, 새벽에 날아오르는 오리들, 이 모든 것은 꿈이 되었다. 다시 꿈꾸는 것은 금지되었다. 우리는 기쁨을 훼손하거나 숨긴다. 말들은 크롬강으로 만들어지고 작고 살찐 남자들이 그 위에 오를 것이다. 나는 끝내 몸을 돌리지 않은 벌레, 하렘 없는 내시. 사제와 위원 사이에서 유진 애럼처럼 걸어간다. 라디오가 울리는 동안 위원은 내 운세를 점치고, 사제는 오스틴 세븐을 약속했다. 더기는 언제나 돈을 내니까. 나는 대리석 궁전에 사는 꿈을 꾸었고, 깨어보니 그것은 사실이었다. 나는 이런 시대에 맞게 태어난 사람이 아니었다. 스미스는 그랬나? 존스는? 당신은? 1936–37년의 스페인 전쟁과 다른 사건들은 저울추를 기울게 만들었다. 그 뒤로 나는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알게 되었다. 1936년 이후 내가 쓴 진지한 글의 모든 행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전체주의에 반대하고 내가 이해하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옹호하기 위해 쓰였다. 우리와 같은 시대에 그런 주제를 피해서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게는 터무니없는 일처럼 보인다. 모든 사람은 어떤 형태로든 그것에 관해 쓴다. 문제는 단지 어느 편에 서느냐, 어떤 접근법을 따르느냐일 뿐이다. 그리고 자신의 정치적 편향을 더 의식할수록, 미학적·지적 온전함을 희생하지 않으면서 정치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더 커진다. 지난 10년 동안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정치적 글쓰기를 하나의 예술로 만드는 것이었다. 나의 출발점은 언제나 편을 든다는 감정, 불의에 대한 감각이다. 책을 쓰려고 앉을 때 나는 스스로에게 “나는 예술작품을 만들어낼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은 폭로하고 싶은 어떤 거짓말이 있기 때문이고, 주목하게 만들고 싶은 어떤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처음의 관심은 사람들의 귀를 여는 것이다. 그러나 책 한 권, 혹은 긴 잡지 기사 하나라도 그것이 동시에 미학적 경험이 아니라면 나는 그 작업을 해낼 수 없었을 것이다. 내 작품을 살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노골적인 선전물일 때조차도, 전업 정치인이라면 무관하다고 여길 만한 것들이 많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나는 어린 시절에 획득한 세계관을 완전히 버릴 수도 없고, 버리고 싶지도 않다. 살아 있고 건강한 한 나는 산문 문체에 강한 감정을 느끼고, 지표면을 사랑하며, 단단한 사물들과 쓸모없는 정보 조각들에서 즐거움을 느낄 것이다. 내 안의 그런 면을 억누르려 해도 소용없다. 해야 할 일은 내 몸에 배어버린 호오를, 이 시대가 우리 모두에게 강요하는 본질적으로 공적이고 비개인적인 활동들과 조화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쉽지 않다. 구조와 언어의 문제를 일으키며, 진실성의 문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제기한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비교적 거친 어려움의 예를 하나만 들어보겠다. 스페인 내전에 관한 나의 책 『카탈루냐 찬가』는 물론 노골적으로 정치적인 책이다. 그러나 대체로 어느 정도의 거리감과 형식에 대한 고려를 가지고 쓰였다. 나는 그 책에서 문학적 본능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전체 진실을 말하려고 매우 애썼다. 하지만 그 책에는, 다른 것들 가운데, 프랑코와 공모했다는 혐의를 받은 트로츠키주의자들을 변호하기 위해 신문 인용문 같은 것들로 가득한 긴 장이 하나 들어 있다. 분명히 그런 장은 1, 2년만 지나도 보통 독자에게는 흥미를 잃게 될 것이며, 책 전체를 망칠 수밖에 없다. 내가 존경하는 한 비평가는 그것 때문에 나를 꾸짖었다. 그는 말했다. “왜 그런 것들을 다 집어넣었습니까? 좋은 책이 될 수도 있었던 것을 저널리즘으로 만들어버렸군요.” 그의 말은 옳았다. 그러나 나는 달리할 수 없었다. 영국의 극소수 사람들만이 알 수 있었던 사실, 즉 무고한 사람들이 거짓 고발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우연히 알고 있었다. 만약 내가 그 일에 분노하지 않았다면 애초에 그 책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이 문제는 반복해서 나타난다. 언어의 문제는 더 미묘하며, 논의하려면 너무 길어질 것이다. 다만 최근 몇 년 동안 나는 덜 화려하게, 더 정확하게 쓰려고 노력해왔다고만 말하겠다. 어쨌든 어떤 문체를 완성할 때쯤이면, 사람은 언제나 이미 그 문체를 지나쳐버린 뒤라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동물농장』은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완전히 의식하면서 정치적 목적과 예술적 목적을 하나의 전체로 융합하려고 시도한 첫 번째 책이었다. 나는 7년 동안 소설을 쓰지 않았지만, 머지않아 또 하나의 소설을 쓰고 싶다. 그것은 틀림없이 실패작일 것이다. 모든 책은 실패작이다. 그러나 내가 어떤 종류의 책을 쓰고 싶은지는 비교적 분명히 알고 있다. 앞의 한두 쪽을 돌아보니, 내가 글을 쓰는 동기가 전적으로 공적인 정신에서 나온 것처럼 보이게 만든 듯하다. 마지막 인상을 그렇게 남기고 싶지는 않다. 모든 작가는 허영심이 많고, 이기적이며, 게으르다. 그리고 그 동기의 가장 밑바닥에는 하나의 수수께끼가 놓여 있다. 책 한 권을 쓰는 일은 끔찍하고 소모적인 투쟁이다. 오래 지속되는 고통스러운 병을 앓는 것과 같다. 저항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어떤 악마에게 떠밀리지 않는다면 누구도 그런 일을 시작하지 않을 것이다. 그 악마는 어쩌면 아기가 관심을 끌려고 울어대게 만드는 바로 그 본능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읽을 만한 글을 쓰려면 끊임없이 자기 자신의 인격을 지워내려 애써야 한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좋은 산문은 유리창과 같다. 나는 내 동기들 가운데 어느 것이 가장 강한지 확실히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그중 어느 것을 따라야 하는지는 알고 있다. 그리고 내 작업을 돌아보면, 내가 정치적 목적을 결여했을 때마다 예외 없이 생명력 없는 책을 썼고, 화려한 문장, 의미 없는 문장, 장식적인 형용사, 그리고 대체로 허튼소리에 빠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갱그럴』 제4호, 1946년 여름 원문 : https://www.orwell.ru/library/essays/wiw/english/e_wi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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