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담> 나의 무한한 혁명

지금이 아닌 언젠가, 여기가 아닌 어딘가

2022.05.13 | 조회 134 | 0 |

미지의 담

평범하고도 특별한 삶을 엿보는 일

 

2006년, 핫핑크색 아이팟 나노 2세대에서는 자우림의 샤이닝이 자주 재생되었다. 당시 초등학생이던 나는 삶과 죽음에 골몰했고, 세상의 고독을 다 짊어진 것마냥 굴었다. 그때부터 나는 나를 견딜 수가 없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살아 있지 않아도 되는 상태를 "누리고" 싶었는데, 다시 말하자면 '살아 있음'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자유라든가 혁명 같은 단어에 마음이 동하는 사람으로 크게 된 건 그래서 의심할 여지 없는 필연이다.

<나의 해방일지>를 보고 있다. 일본 드라마가 정서적으로 더 잘 맞다고 느끼는 나로서는 굉장히 드문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를 추앙해요." SNS에서 유행처럼 번진 그 한마디가 나를 이끌었다. (솔직해지자. 구 씨의 건달 모먼트가 결정적인 한 방이었다.)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상. 깊게 생각하면 할수록 싫고 불편한 사람들로만 가득한 인간관계. 채워져 본 적이 없어 미래를 채울 생각도 하지 못한 채로 겨우 버티는 오늘. 정확히 무엇이 나를 얽매고 있는지 모르면서 다만 벗어나고 싶은 상태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마음.

모르지 않는 기분이 화면 속에서 굴러 다녔다. 한 번이라도 채워지고 싶으니 나를 추앙해요. 사랑으로는 안 돼. 한 음절 한 음절이 절벽에서 뛰어내리고 있었다. 그건 낙하 같은 게 아니라 분명한 추락이었다. 노출 콘크리트 천장처럼 녹슨 마음의 뼈대가 누군가에게 들킬까 봐, 그러면서도 누구도 알아채지 못할까 봐 안절부절하면서 던진 마지막 불씨를, 누군가는 놓치지 않는다. 혁명은 바로 그때 시작된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야말로 혁명이 아니고 무엇일까. 오로지 자신의 의지로 걸어 들어가는 걸음에는 망설임이 없고, 그러므로 길을 잃지도 않는다. 이제 남은 것은 전진, 오로지 전진뿐이다. 그가 허락하는 위치까지 행진곡을 울리며 걷는 것이다.

혁명에는 믿음이 필요하다. 목표에 대한 믿음, 가능성에 대한 믿음. 그리고 사랑을 넘은 추앙에는 무조건적인 믿음이 깃들어 있다. 따라서 추앙은 혁명과 다르지 않다. 새로운 신을 발명하는, 지극히 종교적인 혁명과 말이다.

나는 취미가 사랑인 사람이다. 특기는 순종이고, 타고난 습성처럼 누군가를 추앙한다. 혁명이 끊이지 않는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자신만의 혁명을 꿈꾸거나, 혁명을 일으키면서 살고 있다. 우리 모두가 꿘―운동가. 여기에서 운동이라 함은 exercise가 아닌 movement다―인 것이다.

구호와 노래와 행진이 멈추지 않는 삶의 한가운데에서 혁명의 불씨를 지키는 것은 언제나 사랑이다. 사랑만이 우리를 스스로 구원하게 할 테니까. 그리하여 지상의 신을 창조해낼 테니까.

그러니 오늘도 무한히 사랑하고, 뜨겁게 혁명하라.

 

 

 

 

 

김선우 -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그 풍경을 나는 이렇게 읽었다

신을 만들 시간이 없었으므로 우리는 서로를 의지했다

가녀린 떨림들이 서로의 요람이 되었다

구해야 할 것은 모두 안에 있었다

뜨거운 심장을 구근으로 묻은 철골 크레인

세상 모든 종교의 구도행은 아마도

맨 끝 회랑에 이르러 우리가 서로의 신이 되는 길

흔들리는 계절들의 성장을 나는 이렇게 읽었다

사랑합니다 그 길밖에

마른 옥수숫대 끝에 날개를 펴고 앉은 가벼운 한 주검을

그대의 손길이 쓰다듬고 간 후에 알았다

세상 모든 돈을 끌어모으면

여기 이 잠자리 한 마리 만들어 낼 수 있나요?

옥수수 바람을 지나온 바람이 크레인 위에서 함께 속삭였다

돈으로 여기 이 방울토마토꽃 한 송이 피울 수 있나요?

오래 흔들린 풀들의 향기가 지평선을 끌어당기며 그윽해졌다

햇빛의 목소리를 엮어 짠 그물을 하늘로 펼쳐 던지는 그대여

밤이 더러워지는 것을 바라본 지 너무나 오래되었으나

가장 낮은 곳으로부터 번져온 수많은 눈물방울이

그대와 함께 크레인 끝에 앉아서 말라갔다

내 목소리는 그대의 손금 끝에 멈추었다

햇살의 천둥번개가 치는 그 오후의 음악을 나는 이렇게 기록했다

우리는 다만 마음을 다해 당신이 되고자 합니다

받아줄 바닥이 없는 참혹으로부터 튕겨져 떠오르며

별들의 집이 여전히 거기에 있고

온몸에 얼음이 박힌 채 살아온 한 여자의 일생에 대해

빈 그릇에 담기는 어혈의 투명한 슬픔에 대해

세상을 유지하는 노동하는 몸과 탐욕한 자본의 폭력에 대해

마음의 오목하게 들어간 망명지에 대해 골몰하는 시간이다

사랑을 잃지 않겠습니다 그 길밖에

인생이란 것의 품위를 지켜갈 다른 방도가 없음을 압니다

가냘프지만 함께 우는 손들

자신의 이익과 상관없는 일을 위해 눈물 흘리는

그 손들이 서로의 체온을 엮어 짠 그물은 검은 하늘로 던져 올릴 때

하나씩의 그물코,

기약 없는 사랑에 의지해 띄워졌던 종이배들이

지상이라는 포구로 돌아온다 생생히 울리는 뱃고동

그 순간에 나는 고대의 악기처럼 고개를 끄덕인다

태어난 모든 것은 실은 죽어가는 것이지만

우리는 말한다

살아가고 있다!

이 눈부신 착란의 찬란,

이토록 혁명적인 난관에 대하여

사랑합니다 그 길밖에

온갖 정교한 논리를 가졌으나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옛 파르티잔들의 도시가 무겁게 가라앉아 가는 동안

수만 개의 그물코를 가진 하나의 그물이 경쾌하게 띄워 올려졌다

공중천막처럼 펼쳐진 하나의 그물이

무한 하늘 한녘에서 하나의 그물코가 되는 그 순간

별들의 움직였다

창문이 조금 더 열리고

두근거리는 심장이 뾰족한 흰 싹을 공기 중으로 내밀었다

그 순간의 가녀린 입술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나는 들었다 처음과 같이

지금 마주본 우리가 서로의 신입니다

나의 혁명은 지금 여기서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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