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담> 004

INFP, ENFJ, INTJ의 만남

2021.12.28 | 조회 4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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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담

평범하고도 특별한 삶을 엿보는 일

 

안녕하세요. <미지의 담>을 이끄는 미지입니다.

이번 인터뷰는 제가 올해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눈 이들과 함께해 보았어요. 바로 경과 주연인데요, 저희는 MBTI도 각자 다 다르고, 연애 유형도, 삶에 대한 태도도 굉장히 달라서 평소에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편이에요. 그래서 함께 인터뷰를 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12월 28일 화요일인 오늘, 세 명의 인터뷰가 연재분으로 나가구요. 1월 4일 화요일에는 셋의 대담이 연재될 예정이에요. 그래서 여러분들께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오늘의 인터뷰를 읽고, 저희에게 궁금한 점, 혹은 저희가 토론하는 것을 읽고 싶은 주제 등을 댓글로 남겨 주세요. 따로 또 같이 대답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많은 관심과 질문 부탁드리며, 기다리고 있을게요 ❤

날씨가 많이 추워요. 따뜻하게 입고 다니시고, 늘 포근한 마음이기를 바라요.

그럼, 시작해 볼까요?

 

 

 

안녕하세요. 먼저, 인터뷰를 읽고 계실 분들에게 자기소개부터 부탁 드려요.

[미지] 9개월차 주니어 웹 기획자, 강아지 민이의 집사, 읽고, 쓰고, 찍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그리고 <미지의 담>을 이끄는 미지입니다. 사실 이건 필명이구요. 본명은 민정이에요. ‘이라고 많이 불립니다.

[경이] 2021년 스물다섯을 마무리하고 있는 바쁘다 바빠 현대 사회의 아이콘 쓰리잡 경입니다.

[주연] 안녕하세요. “여자 친구랑 고양이 키우고 글 배우고 이번에 졸업 못하고 먹는 거 자는 거 노는 거 좋아하고 섹스에 대해 말하길 좋아하지만 소심한 걔”입니다. 진아 씨의 “벽 타고 글 쓰는 걔”를 따라 해 봤어요. 기네요.

 

근황 토크부터 해 볼게요. 최근의 화두는 무엇인가요?

[미지] 이번 주는 몸이 좋지 않아서 무려 주 4회 지각을 했구요. 그래서 난생 처음 시말서를 썼습니다. 시말서에 제가 가지고 있는 정신적, 신체적 질병을 고백하기도 했어요. 사회에 나와서 공식적으로 밝힌 것은 처음이라 처음이라는 것을 의식했었네요. 인터뷰를 작성하고 있는 오늘인 크리스마스는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엄마에게 필요한 것들을 가져다 주고, 크리스마스 핑계로 민이 장난감과 간식을 잔뜩 사고, 인간을 위한 장도 보고 돌아와 배부르게 저녁을 먹었어요. 최근이라기보다는 언제나 제 삶의 가장 큰 화두로 빛나고 있는 것이 있는데요. 바로 그 자체입니다. 저는 생활을 비교적 명백하게 분리해서 생각하는 편이에요. 생활은 생업과 관련된 것이구요, 삶은 그 외의 나머지 시간 혹은 활동을 뜻하죠. 쉽게 말하자면 생활은 회사 생활이 되겠고, 삶은 취미와 취향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경이] 최근은 아니지만 꽤 오래 전부터 어떻게 하면 시간을 좀 더 효율적으로 쓰고 체력을 낭비하지 않을지가 저한테는 가장 큰 화두라고 할 수 있겠네요. 아무래도 방송국과 병원과 카페를 오가며 일을 하면서 운동도 하려면 시간과 체력 관리가 최우선이니까요.

[주연] 메이플을 시작했고 레벨 백을 찍었답니다. 집에서는 오일 파스텔이나 보석 십자수처럼 손으로 만지는 놀이를 자주 해요. 친구가 말하길, “어른이 되어서 손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은 유년기에 필요한 만큼의 오감 발달을 경험하지 못한 걸까?” 라고 물었는데 저는 이런 식으로 사람들이 ‘근거’나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좋아해서 골똘히 그 말을 떠올려 보았어요. 양경언 비평가님과 백은선 시인님이 페이지에서 자주 말하듯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 대한 경계선이 흐리다거나 여자를 사랑하는 사람은 여자를 온전히 사랑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너무 자주 부끄럽다는 느낌과 부쩍 싫은 사람이 늘어났다는 느낌도 있네요. 그러나 제게 싫어한다는 말은 곧 좋아한다는 말이거든요. 하루 종일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합니다. 그 친구 왜 그랬을까, 왜 그렇게 나쁘게 말했을까, , ,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사람들이 이해가 가요. 그 ‘이해감’을 한 문장으로 정의할 수 없는데 문득 이해가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럼 진심을 다해 다시 좋아하기 시작하고. 그러다가 다시 미워하고. 그런데 한순간도 미워지질 않는 사람들이 있어서 또 신기하고. 유명하다는 건 그를 아는 사람이 많다는 거잖아요. 나는 왜 유명한 사람에 대해 말하길 꺼릴까? 하는 고민을 부쩍 하고 있어요. ‘유명한 사람을 아는 사람들’에게 밉보이고 싶지 않아서 그런 거겠지요. 아무쪼록 저는 너무 말이 많다는 생각을 합니다.

 

2021에피소드 세 가지를 꼽는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미지] 경과 주연 그리고 민정, 이렇게 셋이서 가까워지게 된 것. 특히 셋이서 보낸 7월과 11월을 좋아합니다.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건 아니지만, 좋은 시간이었다는 느낌만은 오래 간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두 번째는 회사에 취직해서 일하고 있는 것. 앞서 말했다시피 저는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한 편이 아닌데요. 그런 제가 평범한회사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게 여전히 신기할 때가 많아요. 물론, 제 성에 찰 만큼 일을 잘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요. 마지막은 가장 최근의 에피소드를 꼽고 싶은데요. 12 18일 서울에서 펑펑 내리는 눈을 맞았던 거예요. 제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그렇게 쌓이는 눈은 2018 3월 중순 도쿄에서 본 눈 이후로 처음이었답니다.

[경이] 가족을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해 십만 원 이상의 돈을 쓰기 시작한 것, 사람을 잃는 것에 익숙해져 그게 더 이상 두려워지지 않은 것, KBS에 취직한 것 정도인 것 같습니다.

[주연] 1. 고양이를 데리고 왔어요! 저희 집 고양이는 “길거리에 버려져 있던, 흰 양말을 신고 턱시도가 있는, 중성화를 하려고 배 털을 밀었는데 알고 보니 이미 중성화가 되어 있었던, 그냥 배에 있는 털만 밀어 버린 걔”입니다. 2. 여자 친구를 만나 동거를 해요. 3. 여자 친구를 ‘여자 친구’라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어요.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언제인가요? 그 계절의 매력을 꼽아 본다면요?

[미지] 봄과 가을이요. 저는 최상급에도 곧잘 복수로 대답하곤 하는데요. 꼭 하나만 꼽는 게 너무 어렵더라구요. 여름과 겨울에 계절성 우울 삽화를 겪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고, 몸이 온도에 예민해서 더위도 추위도 많이 타는 편이거든요. 수족냉증에 다한증도 있구요. 그래서 극단적이지 않은 날씨의 계절을 좋아해요. 봄에는 벚꽃을 기다리고, 가을에는 하늘을 자주 올려다보게 되죠. 하나 덧붙이자면, 키도, 덩치도 작은 편이라 그런지 겨울에 두꺼운 아우터를 입으면 몸이 더 둔해지는 기분이라서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경이] 서늘한 날씨를 좋아해서 가을과 겨울을 뽑고 싶은데 가장은 두 가지가 될 수 없으니까, 가을이요. 다른 계절에 비해 가을은 유독 언제 왔는지 잘 모를 정도로 짧고 밤하늘이 예쁘고 날씨도 서늘해서 좋아요. 이건 그냥 제가 좋아하는 많은 이유 중 하나고, 매력... ... 그건 잘 모르겠네요. 특징이라고 할 만한 게 없는 게 가을의 매력 아닐까요?

[주연] 겨울을 좋아해요, 옷을 여러 겹 겹쳐 입을 수 있는 것도 좋고, 사람들이 찰싹 붙어 있는 것도 좋고요. 모기도 없고 집에 있어도 마음이 허하지 않고. 뜨끈하니 좋기만 하구.

 

슬픔과 기쁨 중 인간을 발전하게 만드는 감정은 무엇일까요?

[미지] 먼저 확실하게 해 두어야 할 것 같아요. 여기에서 말하는 발전이 인간이라는 종족에 대한 발전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한 명의 개인을 뜻하는 것인지. 후자일 거라고 생각하고 답해 볼게요. 저는 기쁨 뒤에 오는 슬픔이 아닐까 해요. 혹은 슬픔 뒤에 오는 기쁨이요. 기쁘고 난 후에 슬픔을 겪었다면, 기뻤던 기억을 곱씹으며 슬픈 상황을 벗어날 힘을 얻을 수 있을 것 같고, 슬픈 후에 만난 기쁨이라면 그 기쁨과 헤어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게 되지 않을까요?

[경이] 인간을 발전하게 만드는 건 감정이 아니라 계기라고 생각해요. 그걸 마인드맵처럼 타고 쭉 들어가다 보면 감정이라는 게 나오는 거고. 핵심은 감정이 아니라 계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질문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면 슬픔인 거 같아요. 저는 그래서 종종 저를 몰아붙이고 좌절시킬 때도 있거든요. 그리고 기쁨을 플러스로 치고 슬픔을 마이너스로 치면, 발전은 플러스니까 플러스에서 더 플러스가 되는 게 좋기야 하겠지만, 마이너스에서 플러스가 되는 게 더 극적이잖아요.

[주연] , 그러니까 저는, 인간이라는 말과 발전이라는 말을 동시에 잘 쓰지 않는 사람이에요. 사람이 태어났을 때의 기본값이 0이라고 치면, 왼쪽으로 이동해서 마이너스가 되든 오른쪽으로 이동해서 플러스가 되든 그건 그냥 이동일 뿐인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플러스를 발전과 동일한 상태라고 한다면, 발전한 사람들도 그냥 이동할 뿐인 사람들인 거예요. 저는 슬퍼하는 사람도 기뻐하는 사람도 좋지만 자주 기뻐하며 살고 싶어요. 발전은 잘 모르겠지만. 책을 읽고 공부를 하면서 기뻐하고 싶어요.

 

올해 만난 최고 / 최악의 작품은 어떤 것이었나요?

[미지] 최고의 작품은 일본 드라마 콩트가 시작된다”. 주인공들과 제 나이대가 비슷하기도 하고, 딱 평범하고도 특별한 청춘 이야기라 너무 좋았어요. 포기나 실패가 패배는 아니라고 말해 주는 것도 위로가 되었구요. 에세이는 최현우 시인의 나의 아름다움과 너의 아름다움이 다를지언정을 추천하고 싶고, 비문학은 하미나 작가의 미쳐 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이요. 사실 제목만 보고 주변에 선물 돌리고 북토크까지 다녀왔는데, 정말 좋았어요. 작품은 아니지만, 올해 알게 된 아티스트 중 마음에 드는 아티스트는 이고도, 김뜻돌, 수은. 최악의 작품은 없어요.

[경이] 작년 하반기까지 포함했으면 테넷이라고 했겠지만... 올해는 크루엘라와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그리고 미나리. 사심 좀 더 넣으면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 최악은 랑종. 이걸 영화로 쳐야 하는 건지 의문이 들 정도네요... 재밌게 보신 분들이 계신다면 죄송합니다.

[주연] 정이가 선물해 준 ‘미괴오똑(미쳐 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이요!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 버렸거든요. 최악의 작품은 없고, 저는 글과 책에 대해 별로라는 말을 잘 하지 않는 사람인데, 평생 살면서 읽은 책 중에 제일 별로인 책이라면 ‘얘들아, 너희가 나쁜 게 아니야’라는 책이요. 미즈타니 오사무의 고교 에세이인데, 결국 학생과 자신과의 관계를 무의식적인 상태에서 상하 관계로 나누는 것 같아서 딱히 좋아하지 않아요. (나는한 사람이 아니다. 라고 계속 확신하여 말하게 되는데 저는 정말 한 사람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관심 있는 타인과 가까워질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이 있을까요?

[미지] 사실 저는 기본적으로 타인에게 관심이 별로 없어요. 누군가 저에게 먼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면요. 안면 정도는 있는 상태에서 더 가까워지고 싶을 때에는 취향을 관찰하여 선물을 합니다. 원래 아무것도 아닌 날 꽃다발을 안겨 준다든가 하는 걸 좋아하기도 해서요. 그 사람을 생각하면서 혼자서 번화가를 한 바퀴 돌다 보면 상대방이 좋아할 것 같은 걸 발견할 때가 있어요. 그러면 그 물건에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을 담는 거죠.

[경이] 기본적으로 저는 타인과 딱히 가까워지려고 하지는 않아요. 이상하게 리더 같은 건 별로 하고 싶지 않은데 늘 리더를 맡게 되는 사람 유형이라서. 감사하게도 먼저 다가와 주는 분들이 더 많은 거 같아요. ... 그 사람이 원하는 거리를 유지하는 것 정도가 방법이네요. 관찰하는 걸 좋아해서 사람들이 나랑 거리를 두고 싶어하는지 더 가까워지고 싶어하는지 그걸 잘 캐치하거든요.

[주연] 말 걸기. 제가 관심 있어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여자들인데, 모종의 일이 있은 뒤부터 꼭 말하게 되더라고요. 응원하고 있다고. 당신의 작품이 좋습니다, 신념이, 삶이, 목소리를 내는 용기가 좋습니다. 그렇게 말을 하면 이어지는 관계가 있었어요. 그리고 최선을 다하기. 정말 최선을 다하기. 무엇을 하든 인정하기. 상대는 나보다 낮거나 모르지 않고 다만 그 사람만의 사정이 있을 뿐이라고.

 

어떤 일을 하며 먹고 살고 있나요? 혹은 어떤 일을 통해 삶을 꾸려 나가고 싶나요?

[미지] 현재는 웹 에이전시에서 기획자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있어요. 웹 사이트 혹은 앱의 전체적인 콘셉트나 구성을 기획하고, 일정 관리 및 클라이언트와의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죠. 저희 회사에는 카피라이터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서 기획자가 카피 문구를 쓰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요. 사실 저는 다른 업무보다 카피 문구를 쓸 때가 제일 재미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연재를 하면서 여유로운 오후의 커피 한 잔 정도를 벌고 있구요. 미래에 다른 일을 하게 된다면, 사진과 글로 먹고 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경이] 앞서 말했듯 쓰리잡을 뛰고 있고, 일단 주된 밥벌이는 방송국 FD입니다. 부업으로 병원과 카페에서 일을 하고 있고요. 일을 만드는 걸 즐기고 일하는 거에서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라 내년엔 또 다른 일을 하고 있을 수도 있겠네요. 다음 번에 이렇게 인터뷰를 또 하게 될 기회가 생긴다면 그때는 FD가 아니라 PD로 인사 드리고 싶습니다.

[주연] 저는 정말 하고 싶은 게 많거든요. 늘 만약이라는 사정을 가정하고 미련을 남기는 타입이라 하고 싶은 일을 해 보고 아, 생각보다 별로네? 그럼 다른 거 해야지! 라고 생각하게 된다든가, , 생각보다 재밌네? 계속 해 볼까? 라고 생각하게 된다든가. 그런 삶의 이어진 목차 같은 것들을 좋아해요.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놓치지 않고 싶어요. ... 시를 계속 쓰고 싶습니다. 정말 정말 계속 쓰고 싶어요.

 

지난 한 달을 보여 주는 사진 세 장을 공유해 주세요. 그리고 그 사진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도 부탁해요!

[미지]

때는 12 9. 시그노와 하이테크를 색깔별로 수집하던 고등학생은 약 10년 후 처음으로 비싼볼펜을 손에 넣게 됩니다. 이날은 주연과 함께였고, 문득 주연에게 만년필이 사 주고 싶었어요. 마침 할인 중이길래 그 빌미로 구경도 해 보고, 직원분의 안내에 따라 시필도 해 보다가 색깔을 고르겠다고 주연의 손에 쥐어 준 채로 고민하는 척! 하다가 이 친구가 쓸 거라 이게 더 잘 어울리네요.” 같은 말을 했던 것 같아요. 저는 필압이 세서 만년필 대신 볼펜을 골랐구요. 주연이 무척이나 좋아해 주어서, 그 모습을 보고 집으로 가는 길에는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그리고 당근 같은 볼펜으로 짧은 일기를 쓰면서 부쩍 어른이 된 기분을 느끼기도 했답니다.

 

12 15일. 회사에 있다가 충동적으로 머리를 잘라야겠어!’ 생각하고는 바로 미용실로 달려가 한 뼘 정도를 잘랐어요. 저는 원래 저의 긴 머리를 좋아했는데, 주변에서는 제 머리가 짧아질수록 반응이 좋아서 어느새 저도 거기에 물든 것 같기도 하고 그래요. 참고로 저는 대부분 계획 없이 머리를 확 자른답니다.

 

12 18. 서울 병원 가는 날이었어요. 상담을 끝내고 경이를 만나 지하철 역을 벗어났는데 하얀 세상이 눈앞에! 눈 소식이 있다고 해서 우산도 챙겨 갔었는데, 마냥 좋다고 눈을 맞고 돌아다녔죠. 제가 눈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이건 경이가 핸드폰 필름 카메라 앱으로 찍어 준 건데, 이날 후로 사진에 관해 몇 마디 하길래 크리스마스 선물로 일회용 흑백 필름 카메라를 보냈어요. 경이는 아직 코 묻은 돈 못 받는다고(ㅋㅋ)(참고로 제가 3살 연상입니다) 선물을 거절할 때가 더 많은데, 그건 받아 주더라구요. 그래서 더 좋았어요. 그리고 또 하나. 제가 머리에 숱이 많은 편이라 모자가 정말 잘 안 어울리는데, 딱 이 정도 길이일 때는 나쁘지가 않더라구요. 그래서 처음으로 저런 모자도 사 봤어요.

 

[경이]

일하고 운동하는 것 빼면 정말 별 볼일 없는 삶이라서(이렇게 쓰고 나니까 정말 재미없는 삶을 사는 것 같지만) 일하는 사진과 운동 사진을 첨부합니다. 자랑을 조금 하자면 운동 시작 전 몸무게보다 지금 18kg이 빠졌어요. 그리고 12월의 가장 큰 이슈는 며칠 전에 엄청 눈이 많이 내렸잖아요? 서울에 말이에요. 그날 오랜만에 필름 카메라 어플로 사진을 찍었어요. 이 어플이 좀 특이한데, 찍은 사진을 보기까지 3일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에요. 덕분에 3일을 내내 기다렸습니다. 이래서 사람들이 사진을 찍나 봐요.

 

[주연]

세 장을 고르는 데 시간을 제일 많이 쓴 것 같아요.

케이크 주문 제작을 했어요. 뒤에는 원본_고양이_jpg가 밥을 먹고 있네요.

 

엄청 작은 행운의 아기 귤을 발견했어요!!! 접시에 담긴 건 고기가 아니고 호떡입니다. 그리고 교정용 키티 젓가락.

 

우도에 다녀왔어요. 자세히 보면 강아지가 있답니다.

 

2년 전의 나와 2년 후의 나에게 각각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미지] 2년 전이면 2019년이네요. 365일 간의 도쿄 생활 고생 많았어. 너는 그곳을 아주 그리워할 것이니 몸이 좀 안 좋더라도 더 많이 누리고 돌아오렴. 국비지원 개발 과정 좀 더 열심히 듣고, 메일링 시작한 것 정말 잘한 일이야. 2년 후에도 넌 여전히 쓰고 있으니까. 그리고 2년 후에는딱 서른이겠네요. 제가 얼마나 더 심적으로 안정되어 있을지 궁금할 뿐, 딱히 하고 싶은 말은 없어요. 잘 있니? 정도.

[경이] 2년 전이면 정말 제대로 일다운 일을 하기 시작했을 때네요. 지금도 그렇지만 인간관계에정말 많이 시달릴 때라서그건 네 평생 직장이 될 수도 없고 그런 작은 자리에 너처럼 큰 사람이 있기엔 아까우니 사람들한테 적당히 잘해 줘라. 2년 후면 20대 후반이네요. 중반을 잘 마무리하고 후반전을 시작했는지 그게 가장 궁금해요. 부모님은 아직 살아 계시는지. 독립은 했는지. 방송영화업계에서 자리는 잡았는지. 하고 싶은 질문들이 참 많아요. 질문 빼고 말하면 "잘하고 있지?" 정도.

[주연] 계속 질문을 피하는 식으로 답하는 것 같은데, 하고 싶은 말이 없어요. 하면 안 된다는 강박에 가깝기도 하고. 어쩐지 제가 무슨 말을 해 버리면 과거의 주연과 미래의 주연이가 많이 놀라고 부담 가질 것 같거든요. ! 2년 뒤라는 이오시프 브로드스키의 시에 이런 구절이 있어요. "2년 뒤 넌 시집가고(네게 사랑한다고 말한 적은 없어도 아마 난 반쯤 넋 나가 있을 거야)” 이 년 뒤의 저에게 하고픈 말은 없어도 당장 이 년 뒤에 대해 적을 수는 있겠죠. 언젠가 이오시프 브로드스키를 패러디했던 시를 보내 드릴게요.

 

 

2년 뒤

신주연

 

2년 뒤

zero의 섬이다

카라 바라클라바를 사춘기처럼 엮어

용머리 해안가로 돌아간다, 나는 겨울의 수평해녀.

 

2년 뒤

상대방의 바다를 빼앗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의 원칙

문과 문 사이를

너만이 이해하는구나. 나는 미룬다.

 

2년 뒤

신의 설계 의뢰도가 유출되었지만 적을 수 없고

 

2년 뒤 모든 땅의 해안선이 줄어들어 일본은 더 이상 섬이 아니게 된다.

 

2년 뒤에는

 

2년 뒤라는 이름의 노래가 나온다. 나는 그 노래를 너 없이 듣고

 

2년 뒤

나의 손과 개의 손이 의도하는 바가 같게 된다.

 

2년 뒤

누워서 기다린다. 내가 아직 너를

 

2년 뒤

동생에게 문자가 온다

 

<중학교 삼 학년 때 좋아하던 애 이름이 정민이었어요 정민은 영화의 연인이 헤어지는 순간을 좋아하고 저는 고양이가 나오는 장면들만 좋아했어요 정민이가 저랑 깍지를 끼고 있으면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리냐고 묻는데 그럼 저는 손을 살짝 놓았다가 잡아요 걔가 키가 작아서 손깍지를 잘 못 끼는데 그래도 손잡아요>

 

2년 뒤

2년 뒤라고 생각했는데

눈을 뜨면 낮이 있고

여기서 나가 내신 눈 앞에 있어*

그런데 2년 뒤라는 이름의 노래는 없다

zero의 시간

나는 아무 노래나 너랑 같이 듣는다.

너를 기다리게 될 걸 알면서

후쿠시마에 가고 텐동을 먹고

육지를 걷고

여전히 신을 믿는다.

 

*술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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