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45] 🌻 봄을 기다리며 한 생각들

한 주도 잘 지내셨나요? 숑🌻입니다. 아시다시피 PRIIISM 뉴스레터는 매주 목요일 오후 4시에 드리고 있는데요. 보통의 뉴스레터는 아침 시간대에 발송되기에 프리즘은 왜 하필 목요일, 애매한 오후 4시인지 궁금하지 않으셨나요? (그렇다고 해주세요) 이유는 단순했어요. 다음날이 금요일이고 그 다음날은 주말이기 때문입니다. 목요일 오후 4시면 정신은 반쯤 금요일로 넘어가 있고, 누구나 일상을 보내다가도 한 꺼풀 긴장을 덜어놓고 주말의 근사한 계획을 슬쩍 떠올릴 시점이니까요.

갑자기 새삼 목요일 오후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한 이유는 이번 목요일이 유독 특별하게 느껴져서입니다. 2월 29일은 4년에 한번 돌아오는 윤달이잖아요. 날짜만으로도 낯설고 어디선가 보너스로 주어진 하루 같기도 해요. 천문학에서 2월 29일을 두고 '3월 0일'이라 부르는 경우도 있다니 더 재밌고요. 저는 남은 일생 중에서도 쉽게 찾아오지 않을 ‘2월 29일 목요일’의 행운을 틈틈이 느끼며 오늘을 보내고 있습니다. (물론 사정에 따라 하루 더 길어진 2월이 부담스러운 분들도 있겠죠?😭)

3월이 지나면 드문드문 봄의 기운을 느끼던 순간이 점차 자주 찾아오겠네요. 지금도 공기 속에 숨은 봄의 힌트를 찾으며 즐겨 듣던 노래 세 곡을 소개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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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필선 - 봄날

모든 계절이 그렇겠지만 봄이 주는 이미지와 매력은 사람마다 다르게 가 닿는 듯하다. 누군가는 팝콘처럼 벚꽃이 터질 때라야 '봄이네' 실감할 것이고, 어떤 이는 무거운 외투를 세탁소에 맡기거나 가뿐하고 예쁜 봄옷을 걸쳤을 때 설렘을 느낀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봄의 순간을 말하자면, 시기가 모호하지만 바로 요즘과 근접하다. 입고 나서는 옷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턱을 스치는 바람의 모서리가 조금은 뭉툭해진 것 같은 때. 매일 걷던 천변의 흙바닥이 전보다 부풀어오른 게 보일 때.

봄을 기다리며 자주 이런 생각을 한다. 색색의 꽃봉오리를 보고서야 '언제 봄이 왔지' 하고 소스라칠 만큼 계절의 변화에 무감해지고 싶지 않다. 꽃보다 훨씬 먼저 언 땅을 부수고 움트는 새싹의 정수리를 제때 알아챌 만큼의 여유 한 줌을 언제나 손에 쥐고 있었으면 한다. '올해 이루고픈 목표나 얼마나 더 나은 사람이 되고픈지' 같은 질문에 망설이게 되는 건 내가 가진 답이 이만큼의 사소함이기 때문이다. 매 계절 '그런 사람'이 되려는 노력은 늘 어렵기도 하다.

김필선의 <봄날>은 넌지시 다가오는 봄의 기척을 느끼는 요즘의 공기와 잘 어울린다. 봄이란 계절을 저마다 다르게 인지하는 이유도 그 움직임이 참으로 조심스럽기 때문이란 생각도 든다. '가끔 저는 제 이름과 사랑한다는 말을 잘 혼동하는 것 같아요' 같은 가사처럼 이 노래가 그리는 사랑은 봄이 오는 속도처럼 여리고 가만하다. 이렇듯 순수하게 다가오는 올해의 봄을 여느 때보다 빛나는 눈으로 기다리고 환영해줄 계획이다.

🌻 리도어 - 사랑의 미학

리도어(Redoor)는 최근 알게 된 한국 인디 밴드다. SNS에서 우연히 리도어의 <영원은 그렇듯>이란 곡을 듣고 '이거.. 흡사 잔나비의 <뜨거운 여름날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처럼 뭇 청춘들의 여름밤 기억을 왜곡할 돌림노래로 떠오르려나' 같은 생각을 했다. 이들의 다른 노래를 차근차근 찾아 들었다. 2021년에 데뷔한 밴드고 99년생 보컬(이등대)이 전곡을 작사 작곡한다는데 옛스러운 듯 꽉꽉 차오르는 사운드가 완성도 있다고 느꼈다.

<영원은 그렇듯>만큼이나 마음이 이끌려 자주 들은 곡이 <사랑의 미학>이었다. 언젠가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듯, 느즈막한 여름밤처럼 순수하고 사연 있어 보이는 보컬의 매력이 십분 발휘된다. 어딘가 90년대 노래가 떠오르기도 하는, 아주 최신의 밴드면서도 느릿하고 신파적인 분위기가 깔린 점이 좋다.

🌻 실리카겔 - 뚝방길

이번 2월에는 유독 새로이 시도하거나 도전한 것들이 많았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서 출근 전 나만의 시간 갖기, 기상 이후 정신이 완전히 뜨이기 전에 시 한 편 읽기, 하루 한 끼 채식 지향 식단하기, 당류(간식) 줄이기 등등. 게으른 새해를 보내며 '음력 1월 1일부터가 진짜..!'를 습관처럼 되뇌었기에 이제서야 새해 버프를 받고 있는 것도 같다. 아무려면 새로 들인 습관들로 바뀌어 가는 일상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고 과정도 즐거운 요즘이다.

실리카겔이 2017년 발매한 미니 2집에 실린 <뚝방길>은 이런 나의 최근 컨디션과 바이브를 놀랍도록 빼다 닮은 곡이다. '나나나나나 나나나나~', '상쾌하게 청량하게 싱싱하게 자연스럽게'. 이 얼마나 생의 긍정으로 가득하면서도 군더더기 없이 상쾌한 에너지만을 전하는 노랫말이란 말인가.

이 앨범 [SiO2.nH2O]에는 멤버들 다섯이 하루의 특정한 시간대를 테마로 각자 만든 다섯 곡이 실렸다. 그 중에서도 <뚝방길>은 아침 8시를 나타낸 노래라 한다. 어쩐지! 요즘 내가 일찍 일어나 내 시간을 갖는 시간대도 그 쯤이다. 이 곡이 마치 나의 최근 정신 상태를 빗댄 BGM이라 느낀 게 터무니없는 착각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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