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습니다. 로이입니다.
세 명의 발행인을 대표해서 여러분께 첫 인사를 드립니다. 이 글을 쓰는 저는 지금 속초에 있습니다. 2박 3일의 짧은 여행을 계획했던 것과는 달리 이곳 속초가 너무 좋아 하루 더 머무르고 있습니다. 코로나19가 가능하게 한 디지털 노마드의 삶이라고나 할까요?
이곳 강원도 영동지방을 방문할 때마다 늘 마음 편하게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여느 카페나 식당에서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이 아니라, 단순히 듣는 것에 끝나지 않는, 사장님의 취향이 담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공간을 만나길 원했죠.
그러던 중 어제 우연히 속초에서 보석 같은 공간을 발견했습니다. 바다나 청초호 부근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주거지역에 있는 작은 뮤직펍이었어요.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의 조우라 반가웠습니다. 제 취향을 자극하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바이닐도 꽤 있어 원한다면 틀어주시기도 합니다. 갑작스럽게 연장한 하룻밤 덕분에 이곳을 알 수 있었네요. 저에게 속초는 앞으로 이 공간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 저희가 좋아하는 음악과 관련된 공간에 대해서도 언젠가 소개해드리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희 뉴스레터 PRIIISM이 여러분에게 이러한 즐거움을 선사했으면 좋겠습니다. 우연히 발견한 공간이 주는 즐거움처럼 세 발행인의 취향이 담긴 플레이리스트가 여러분의 일상에 다채로움을 선사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단 한 곡이라도 여러분의 플레이리스트에 참고가 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방향 없는 제안에도 흔쾌히 뉴스레터 발행에 함께 동참해준 콜리와 숑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저와 비슷한 내향적(MBTI의 I형) 성향을 가진 사람-그래서 뉴스레터 이름에도 알파벳 I가 무려 세 개나 들어갔습니다-들이지만 누구보다 확실한 자신만의 취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분명 재미있으실 겁니다. 그리고 아무런 근거와 배경이 없이 이 뉴스레터의 구독하기를 눌러주신 여러분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작은 시도를 통해 여러분과 함께 앞으로 흥미로운 일들을 만들어볼까 합니다.
다시 한번 반갑습니다.
- 2021년 5월, 로이 🍄
* 첫 플레이리스트는 숑, 콜리, 로이가 각 한 곡씩 준비했습니다. 다음 주부터는 각각의 발행자가 한 편씩 보내드릴 예정입니다.
🌻 Phum Viphurit - Lover Boy
숑 한 계절을 기억할 목소리가 있다는 건 근사한 일이다. 품 비푸릿의 음악은 어떤 공기 안에서도 초여름 풍경을 잔상처럼 남긴다는 느낌이다. 이를테면 캔맥주 한 모금이 생각나는 역청 빛 밤하늘, 느긋하게 저무는 노을,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연두색 이파리, 담장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장미의 군락 같은 것들을.
태국 청년 품(Phum)은 아홉 살 때부터 뉴질랜드에서 나고 자라 영어로 노래를 쓴다. 폭신한 러그 내지는 밀크티 같은 목소리에 독특한 발음이 어우러져 오묘함을 더한다. 영화 제작을 전공한 그가 직접 연출한 뮤직비디오에서는 그야말로 ‘레트로 힙’이 뚝뚝 흘러넘친다.
품의 음악을 처음 알게 된 때가 2018년의 봄. 이듬해 5월의 나는 홍대의 작은 공연장에서 그의 무대를 지켜봤다. 우연한 발견부터 지속적인 관심, 같은 공간에서 관객으로서 그와 호흡을 주고받기까지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 이끌었을 거라 생각하니 새삼 노래와의 인연이 신비하게 느껴졌다. 올해의 여린 잎이 처음 돋아나고 봄바람이 볼을 스칠 즈음 품 비푸릿의 목소리가 속절없이 떠오른 건, 어쩌면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것만큼 지당한 일이었다.
밀크티를 태어나 처음 마시던 날의 이국적인 찻향, 오묘하게 어우러지던 우유의 부드러움을 기억한다. 매해 봄에 듣는 품의 목소리는 언제나 그 순간을 불러일으킨다. 한낮의 풀잎이 청신한 얼굴을 뽐내다가도 해가 지고 나면 짐짓 차분한 밤 공기가 불어오는 이 신록의 계절에, 느낌 있는 BGM을 찾는 모두에게 그의 노래를 권한다.
🥦 If I Run - Astronauts, etc.
콜리 왜 봄만 되면 온통 달달한 사랑 노래인가. 봄이라고 다 흩날리는 벚꽃처럼 낭만적이고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잖나. 송홧가루 쌓인 자동차―거기에 비가 어설프게 내리면 더욱 환상적이다―처럼 적어도 사람 눈에 지저분한 것도 있을 테고, 나 같은 비염쟁이는 재채기와 콧물 컬래버레이션에 코가 벌겋게 혹사당하니 건강 관리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계절이 봄이다.
그럼에도 봄만 되면 어김없이 <벚꽃 엔딩>이 차트를 점령하고 만다. 사실 그 이유야 잘 알고 있다. 예쁘잖아. 삼월 매화부터 사월 벚꽃, 목련 그리고 오월에는 장미와 라일락까지 하나 같이 너무나 어여쁘다. 곱게 핀 꽃들을 맑은 하늘 아래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동그랗게 부풀어 오르는 느낌이다. 내 안에 모난 구석도 이때만큼은 반질반질해지는 것 같달까. 꽃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다. 그러니 인파가 몰린다. 연인과 가족들로 붐빈다. 나는 그 틈에서 꽃만 즐기고 올 수 있을 만큼 당돌하지 않다. 꽃 구경은 타령에 그치게 된다.
결국 삐뚤어진 마음에 애먼 노래나 탓하는 것이다. 벚꽃 고개를 넘어갈 때쯤부터 이미 나는 시무룩해졌다. 요즈음 동네 아파트 울타리에 진을 친 장미들을 보니 가슴이 아릴 지경이다. 봄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위한 곡도 있어야 한다. 널리 알려져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십센치의 <봄이 좋냐>는 참으로 영리한 곡이다. 저 멀리 스코틀랜드에는 벨 앤 세바스찬이라는 현명한 밴드가 있어서 <Little Lou, Ugly Jack, Prophet John>이란 춘삼월 느낌 물씬나는 곡을 만들었다. 이 두 곡은 이미 이쪽 시장에선 잘 알려져 있다. 여기 한 곡을 얹는다. Astronauts, etc.의 <If I Run>이다.
건반으로 시작하는 도입부부터 아주 그냥 감성을 후벼판다. 느지막한 주말 아침 침대에서, 화창한 낮에 카페에서, 석양이 드리워지는 산책길에서 들으면 더욱 좋다. 단, 일하면서 듣는 것만큼은 신중해야 한다. 음악에 그득 담긴 나른함이 업무 효율을 매우 떨어뜨릴지 모른다.
🍄 Kings of Convenience - I'd Rather Dance With You
로이 긴장을 정말 많이 하는 편이다. 꼭 다수의 사람 앞에서 무언가를 하는 상황이 아니더라도 처음 보는 사람, 낯선 공간, 분위기 등을 겪으면 일단 사고가 정지되고 몸이 굳는 경향이 있다. 나를 아는 몇몇 사람들은 내가 긴장된 상황 속에서도 꽤나 차분하고 침착하게 일을 처리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것은 철저하게 가면을 쓴 것처럼 연습한 결과다.
이런 나에게 Kings of Convenience는 마치 이완제 같은 존재들이다. 낯선 카페나 식당, 펍을 갔는데 이들의 음악이 흘러나온다거나, 누군가의 플레이리스트에 이들의 곡이 올려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면, 몸의 긴장이 풀리고 마음의 장벽이 허물어진다. 그 대상이 사랑스러워 보일 정도다. 취향이 통한다는 것은 이렇게나 아름다운 일이다.
뉴스레터로 서로를 처음 조우하게 된 여러분과 우리 사이에 살짝 이완제를 놓아본다. 국내 한정으로 '편리왕'이라고 불릴 만큼 따뜻하고 부드러운 그들의 사운드와 보컬 얼랜드 오여(Erlend Øye)의 근본 없는 댄스 실력을 보며, 노래 제목처럼 우리 일단은 긴장의 끈을 놓고 음악에 몸을 맡겨 춤부터 추자.
마침 Kings of Convenience가 오는 6월 18일, 무려 12년 만에 정규 앨범을 낸다고 한다. Love and Peace라고 이름 지어진 이번 새 앨범에 앞서 싱글 Rocky Trail이 선 공개 되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이 곡도 한번 찾아 들어보시길 바란다.
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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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히
퇴근하고 듣고 있는데 너무 좋네요 콜리형 노래가 특히 좋아요😀
PRIIISM
🥦 콜리입니다! 어서 집에 가기 바쁜 게 퇴근길인데 잊지 않고 PRIIISM을 찾아주셔서 무척 고맙습니다. 혹시 집에 뛰어 가셨나요? 아무쪼록 'If I Run'이 특히 좋으셨다니 더더욱 고맙습니다. 참, 방금 두 번째 뉴스레터가 발송되었어요. 이번엔 어떤 곡이 마음에 드셨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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