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6] 🥦 이제 가을 노래 들으셔야죠

반갑습니다. 콜리🥦입니다. 며칠째 하늘이 흐리네요. 비도 자주 내리고요. 올해는 가을로 가는 길에 여름철 장마 못잖은 오랜 비가 함께하고 있습니다. 비가 그치고 구름이 걷히면 완연한 가을 날씨로 접어들 것 같아요. 나뭇잎은 붉고 노랗게 물이 들겠죠. 이미 단풍이 시작된 성미 급한 나무도 더러 있더군요. 길거리에 떨어진 은행나무 열매를 밟을까 사람들이 조심조심 걷는 모습도 볼 수 있겠지요.

시간의 속도를 체감하는 요즘입니다. 별다른 약속이 없어 지루하게 느껴지는 주말이었는데 조금 빈둥거리고 나니 금세 지나가 버렸네요. 일로 바쁜 와중에는 오죽할까요. 하루 이틀이 종잇장 넘기듯이 휙휙 넘어가버립니다. 시간의 흐름에 무감각해지는 것이죠. 늦여름에서 가을로 접어드는 이맘때를 놓친 뒤에서야, 이렇게 푸념하기 딱 좋겠죠. '와 벌써 겨울이야, 올해 다 갔네!'

그래도 올해는 가을을 아주 놓쳐버리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많은 분들께 글을 띄우면서 창밖을 보고 현재를 느끼고 있으니까요. 여러분께서도 주변을 둘러보시면 어떨까요. 바로 지금 하늘 그리고 길가의 나무는 어떤지, 주변에 있는 사람들 모습은 어떤지 눈으로 보고 마음에 담아보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환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번 PRIIISM에서는 그런 순간에 근사한 배경이 될 만한 노래를 준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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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estlife - Where We Belong

2000년대 초중반 우리나라 주요 음원사이트 팝송 차트는 2위부터 확인하면 됐다. 1위는 사실상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보나마나 또 <My Love>였으니까. 아일랜드 출신 5인조 그룹 웨스트라이프(Westlife)의 인기는 실로 굉장했다. 국내 앨범 판매량만 통산 100만장이었다. 그들의 대표곡 <My Love>는 2000년대 초중반 팝송 차트 최상단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으며, 제목은 모르더라도 피아노로 시작하는 도입부만 들어보면 십중팔구 '아~'하는 반응이 나왔다.

아니다. 착각이었다. 웨스트라이프는 몰라도 최소한 <My Love>는 들어보면 알 거라고 나는 장담했지만, 94년생 S는 피아노 도입부는 물론 심지어 "So I say a little prayer and hope my dreams will take me there" 하는 코러스를 듣고도 정말 모르는 눈치였다. 맙소사! 나는 가사는 물론이요, 어느 공항과 해안 절벽에서 찍은 뮤직비디오까지 기억나는데. 그렇다. 웨스트라이프와 <My Love>도 어느덧 '추억'이라는 수식을 붙여야 할 만큼 세월이 흘러버렸다. 몇 해 전 <무한도전> '토토가(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특집처럼 말이다.

<My Love>를 모를 정도라면 웨스트라이프의 다른 어떤 히트곡을 소개한들 낯설 것이다. 영국 싱글 차트 1위곡 최다 보유 뮤지션이라는 기네스 기록이 무색해진다. 그리하여 <Where We Belong>을 골라봤다. <Tonight>이라는 싱글의 수록곡으로 발매된 곡이다. 정규 앨범도 아닌 싱글 수록곡, 소위 B-Side 곡이다. 대중적으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곡 시작부터 흐르는 첼로 소리와 웨스트라이프 특유의 화음이 가을 냄새가 느껴지기 시작하는 요즈음에 퍽 어울린다. 멤버 다섯 명의 목소리를 모두 들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곡이기도 하다.

🥦 Kath Bloom - Come Here

더위가 가신 정도가 아니라 어느새 공기가 서늘해졌다. 가을은 무척 짧으니 곧 바람에서 온기가 아니라 냉기마저 느껴질 것이다. 이쯤에서 옆구리에 위험주의보를 발령해야 한다. 당신 곁에 누군가가 없다면 말이다. 방심하고 있다가는 금세 다가올 크리스마스와 연말 분위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십상이다. 다정하게 서로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고 거리를 누비는 연인들을 보면 옆구리에 가슴까지 시려진다. 없는 연인을 갑자기 만들기도 요원한 세상, 아쉬우나마 가슴 설레게 하는 영화를 보며 마음을 달래본다.

가슴 설레게 하는 영화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품으로 '비포 시리즈'가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처음 나온 <비포 선라이즈>를 나는 첫 손에 꼽는다. 아직 안 보신 분들을 위해 줄거리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기차에서 우연히 만난 젊은 남녀가 다음 날 해가 들 때까지 함께 시간을 보낸다. 이 얼마나 낭만적인가! 영화를 안 봤다면 모를까 모름지기 기차 여행 해본 사람치고 <비포 선라이즈> 같은 만남을 그려보지 않은 사람이 없으리라.

우연한 첫 만남부터 전화 고백 등 여러 명장면이 있지만 그중 내게 제일은 음악감상실 씬이다. 서로의 어깨가 맞닿을 정도로 좁은 공간에서 제시(에단 호크 역)와 셀린(줄리 델피 역)이 스칠 듯 말듯 눈빛을 번갈아 주고 받는다. 다시 봐도 내 가슴이 다 간질간질해진다. 그 장면에서 흐르는 곡이 바로 <Come Here>다. 캐스 블룸(Kath Bloom)의 구성진 바이브레이션이 두 주인공의 가슴 떨리는 장면에 찰떡 같이 들어 맞는다. "No, I'm not impossible to touch / I have never wanted you so much / Come here, Come here"

🥦 언니네 이발관 - 산들산들

지난 번(13호)에서 가을을 가리켜 수확의 계절이라고 했다. 수확을 하면 필연적으로 사라지는 것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가을은 소멸의 계절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황금빛으로 물든 논에서 쌀을 추수하고 지푸라기까지 잘라내면 물빠진 갈색의 벼 밑동만 남는다. 그렇게 추수를 마치고 밑동을 불로 태우기까지 하면 황금빛은 온데간데없이 잿빛 논이 남는다. 풍요로움이 가득했던 공간에 황량함이 헛돈다.

진녹색으로 깊어진 가로수 나뭇잎이 곧 붉고 노랗게 물들 것이다. 그것도 잠시, 이내 잎은 푸석푸석 해지고 바닥에 떨어지고 만다. 잎을 떠나 보낸 나무는 앙상해보인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영영 사라져 버리는 것은 아니다. 떠나 보낼 것은 떠나 보내야 현재를 살고 다음을 준비할 수 있다. 논도 가로수도 묵묵히 이듬해를 준비하고 있다. 자연은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저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언니네 이발관 <산들산들> 노랫말도 그렇다. 건반 중심의 소리가 포근해서 얼핏 가사도 따뜻한 내용일 것 같지만 조금만 귀를 기울여 보면 가슴이 아릿해진다. "모든 것이 사라져 가는데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네 / 잊을 수 없을 것만 같던 순간도 희미해져 갔어"  그렇다고 너무 슬퍼할 것까진 없을 것 같다. 바꿔 말하면 <산들산들>은 가슴 아릿한 가사를 포근한 소리가 보듬는 곡이니까. 슬퍼하기보단 담담히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은 느낌으로 보컬 이석원도 이렇게 노래한다. "나는 나의 길을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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