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2] 🥦 걷기 좋은 요즘 어울리는 음악

반갑습니다. 콜리🥦입니다. PRIIISM을 준비하면서 활자를 통해, 또 음악을 통해 어떤 분들을 만나게 될지 내심 궁금했습니다. 설렘 속에 프롤로그를 띄우고 나서 가장 많이 받은 반응은 ‘네가 누구냐’는 것이었어요. 또 로이🍄와 숑🌻은 누군지, 제가 이들과 어떤 사이고 어떻게 이런 걸 할 생각을 했느냐는 질문도 꽤 받았는데요.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그리 즐기는 편이 아니면서도 이런 관심은 은근히 기분 좋은 거 있죠. 관심 가져주신 모든 분께 고맙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목요일 오후 이 글을 받아보실 여러분이 궁금합니다. 슬슬 퇴근을 바라보며 뉴스레터를 열어보고 계실까요? 오후 네 시가 아닌 늦은 시각이나 아예 목요일을 넘겨서 확인하신 분도 있겠죠. 어느 공간에서 보고 계시는지도 듣고 싶어요. 아마 회사나 집이 제일 많을 것 같고, 모처럼 휴가를 내서 동네 카페나 아예 낯선 곳에서 뉴스레터를 받은 분도 계시겠지요. 언제, 어디서, 어떤 기분에서든 PRIIISM이 일상에 소소한 활력을 드릴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

요즈음 저는 보다 많이 걸으려고 해요. 출근할 때 차를 두고 걸어간다거나, 저녁 먹고 산책을 하곤 합니다. 머잖아 한여름에 접어들면 한밤에도 조금만 걸으면 땀이 흐를 테니 그전에 보송보송 걷기 좋은 날씨를 만끽하려는 것이죠. 주로 집 앞에 있는 공원과 호수 둘레길을 걷는데요. 햇빛이 들고 지는 모습이며, 나날이 키가 크고 색이 짙어지는 풀들의 변화를 보는 재미가 은근하답니다. 이렇게 걸을 때 꼭 함께하는 게 있어요. 음악입니다. 재생 목록을 꾸리고 이어폰을 챙겨서 밖으로 향합니다. 걷기 좋은 요즘, 걸으면서 듣기 좋은 세 곡을 엮어봤습니다.

🥦 Ram Jam - Black Betty

하루 중 몸과 마음이 가장 무겁게 느껴지는 때를 꼽으라면 내 답은 단연 아침이다. 반사적으로 알람을 끄고 기지개를 켜면, 새끼발가락부터 허벅지를 지나고 척추를 거쳐 가운뎃손가락에 이르기까지, 온몸이 저마다 비상이라며 난리다. ‘어우 오늘 컨디션 무슨 일, 오늘은 진짜 운동 쉬어야겠다’며 어기적어기적 침대를 벗어난다. 입맛 같은 게 있을 리 없으니 아침밥을, 아니 연료를 꾸역꾸역 입에 밀어 넣는다. 일찍이 아버지는 그런 내 모습을 보고 꼭 패잔병 같다고 하셨다. 어떡하나, 몸도 마음도 축 처지고 무거운데.

이러니 출근길에는 기분을 북돋을 수 있는 음악을 자주 고른다. Ram Jam의 <Black Betty>는 요즘 내 출근 재생 목록에서 빠지지 않는다. 일정하게 툭툭 밟아주는 베이스 드럼에 발걸음을 맞추려면 평소보다 속도를 조금 올려야 한다. 자연스럽게 몸의 텐션이 올라간다. 선명한 기타 리프와 “Whoa- Black betty (bam-ba-lam)"을 거의 단순 반복하는 가사는 단박에 귀를 사로잡기 충분하다. 흥이 난다. 피가 돈다. 출근길뿐만 아니라 운동할 때 듣기에도 제격이다.

알고 보니 <Black Betty>는 전통 있는 곡이었다. 위키 백과 등에 따르면 이 곡은 18세기 노동요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으며, 대중적으로는 1930년대 들어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게 많이 불려졌다고 한다. 가만 보자, 당시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라면 노예였으리라. 그렇다면 2021년에 이 곡을 들으면서 출근하는 나는… 기분이 안 좋아지려고 한다. 마음속으로 외쳐본다. ‘워- 블랙 베티 뱀배램!’

🥦 Arlo Parks - Hope

<Black Betty>가 출근할 때 듣는 곡이라면 이번 곡은 퇴근길에 어울린다. 일과 사람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 지친 날에 더더욱 효력을 발휘한다. 풍경을 바라보며 차분하게 산책할 때도 좋다. 시인이자 뮤지션인 알로 팍스(Arlo Parks)의 <Hope>가 당신을 포근하게 감싸줄 것이다. “We all have scars, I know it's hard / You're not alone, You're not alone(우린 모두 상처가 있죠, 힘들다는 걸 알아요 /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처음 들을 때부터 왜인지 <Hope>는 낯설지 않았다. 리듬 앤 블루스, 소울, 재즈를 잘 버무린 듯한 음악 그리고 특히 알로 팍스의 음색에서 언뜻 코린 베일리 래(Corinne Bailey Rae)―<Put Your Records On>이나 <Like a Star>로 유명한―가 비친다. 그렇다고 아류 같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알로 팍스 목소리에서 코린보다 앳된 느낌이 들었다면 정확하게 들은 것이다. 그는 2000년생, 만으로 스물한 살이다.

<Hope>가 실린 첫 정규 앨범 [Collapsed in Sunbeams]로 알로 팍스는 얼마 전 2021 브릿 어워드―말하자면 영국판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신인상을 거머쥐었다. 노력도 물론 필요하겠지만 예술은 아무래도 재능의 영역이며, 재능은 꼭 나이가 중요하지는 않은 것 같다고 새삼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아무렴 어떤가, 이런 재능의 등장은 얼마든지 반가운 일이다.

🥦 더 모노톤즈 - Into the Night

음악은 소리니까 기본적으로 청각을 자극하는 것인데 종종 다른 감각도 꿈틀거리게 하는 곡이 있다. 우리나라 인디 음악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아이콘 차승우가 이끌었던 더 모노톤즈(The Monotones)의 <Into the Night>이 그렇다. 처음부터 끝까지 취기, 습도, 어두움 따위가 자욱하다.

따라서 이 곡은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 들어야 그 진가를 맛볼 수 있다. 기분 좋게 알딸딸한 상태에서, 습한 밤, 노란 가로등 불빛 아래를 유유히 걸을 때. <Into the Night>은 딱 그럴 때 들어야 한다. 예전 같으면 여기서 가장 어려운 조건이 ‘습도’일 텐데 마스크를 항시 착용해야 하는 이 시국에는 기본으로 충족되니 적어도 요즘은 조건이 그리 까다롭지 않을 것이다. 그냥 술로 적당히 달린 밤, 집에 걸어갈 때 들으면 된다.

다소 늘어진 듯한 드럼 박자부터 베이스, 기타에 보컬까지, 노래를 구성하는 모든 소리에서 공간감이 두드러진다. 밤안개처럼 지긋이 퍼진다. 가사도 어떤 의미를 전달한다기보다는 취해서 내뱉는 깊은 숨 쪽에 가까워 보인다. 중반부에 나오는 사이키델릭한 기타 솔로는 내일 감당해야 할 숙취를 청각화 한 것 같다. <Into the Night>은 청각의 알콜화인가, 알콜의 청각화인가. 모르겠다. 이렇게 취한 밤으로 흠뻑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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