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존재들의 매핑 Mapping for ‘I’s

서로의 “있음”을 확인하는 ‘우리’의 예술들

2023.03.28 | 조회 3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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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 PICK

예술로 미닝아웃하는 다양한 소식을 전합니다.

올라퍼 엘리아슨 스튜디오&오르후스 대학, <WeUsed.To>, 2020 [출처: https://www.weused.to/ 웹사이트 화면 갈무리] 
올라퍼 엘리아슨 스튜디오&오르후스 대학, <WeUsed.To>, 2020 [출처: https://www.weused.to/ 웹사이트 화면 갈무리] 

2020년 5월, 한 웹사이트가 제작되었다. 코로나19가 만든 새로운 일상과 질서에 모두가 적응하지 못했던 시기, 예술가 올라퍼 엘리아슨과 덴마크의 한 대학 연구소의 협업으로 개설한 이 공간은 코로나19 이전과 현재의 달라진 삶을 공유하자는 취지로 기획되었고, 아주 간단한 텍스트를 통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참여자는 ‘나/우리는 예전에(I/We used to)’로 시작하는 문장과 ‘현재는(Now)’으로 시작하는 문장을 채우기만 하면 된다. 공간을 부유하는 문장들을 읽다 보면, 대면 만남과 이동의 자유를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있고 느긋한 지금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팬데믹이라는 공통의 이슈를 대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태도와 생각들, 현재를 긍정하거나 부정하는 감정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     

그런데 이 작업에서 필자가 주목한 것은 바로, ‘‘우리’는 누구인가(Who is ‘we’)’라는 대목이다.[1] 웹사이트를 만든 창작자 그룹은 '우리' 또한 배타적일 수 있다는 것, 때로는 다른 집단을 배제하거나 희생시키면서 하나의 '우리'를 내세울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않았다. 동시에 참여자가 자신의 관점을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현재의 ‘우리’를 기록하고자 하는 작업임에도(타이틀 주어도 ‘우리(We)’지만), 실제로 문장을 작성할 때 참여자는 주어를 ‘나(I)’와 ‘우리(We)’ 중에서 고를 수 있도록 했다. 이처럼 '나'와 '우리'의 선택은 개개인이 참여하는 커뮤니티와 그 범위, 공존의 방식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인식하고 반성하기 위한 방안인 셈이다. 

 

잉글하트와 웰젤의 ‘세계 문화도’ 2023 [출처: https://www.worldvaluessurvey.org/wvs.jsp]
잉글하트와 웰젤의 ‘세계 문화도’ 2023 [출처: https://www.worldvaluessurvey.org/wvs.jsp]

 

그렇다면 2023년의 한국 사회는 ‘나’와 ‘우리’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서로를 인식하고 그 차이를 존중하고 있을까? ‘세계 문화도(Inglehart-Welzel Cultural Map of the World)’라는 것이 있다.[2] 1981년 설립된 사회과학자들의 비영리 기구 ‘WVS(World Values Survey, 세계가치조사)’에서 발행하는 이 지도에서 가로축과 세로축은 각각 ‘전통적 가치와 세속적 합리적 가치’ 그리고 ‘생존 가치와 자기 표현 가치’를 상대적으로 수치화하여 보여준다. 2023년 지도에서 한국은 주황색의 유교(Confucian) 문화권에 머물며, 세로축 1.5, 가로축 -0.5에 위치해 있다. 지도에 따르면 종교의 중요성, 부모-자녀 관계, 권위 존중 및 전통적 가족(Traditional Values)의 가치를 덜 중시하고 세속적인 가치(Secular Values)를 지향하는 사회이다. 

반면 자기 표현의 가치(Self-Expression Values) 보다는 생존 가치(Survival Values)를 우선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생존 가치란 경제 및 물리적인 국가 안보에 중점을 두는 경향을 가리킨다. 이러한 사회는 높은 민족중심적 태도를 지니며, 인종이나 성 평등, 소수자 인권 등 다양성 존중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경제 및 정치 분야에서 개인의 결정권을 낮은 수준으로 존중하고 신뢰하는 특징을 갖는다. 즉 ‘대의’를 위해 개인의 서사를, 특정 ‘우리’를 위해 ‘나’의 차이를 지우는 사회인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예술은 어떨까? 공정 영역에서의 예술, 특히 공공예술이라 불리우는 작업들에서도 여전히 ‘우리’와 ‘함께’를 내세우기 위해 개인 영역의 차이들을 자연스럽게 소거하는 방식을 택하는 것은 아닐까?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 <One&Other>, 참여시민 2400명 중 1명의 진행 모습, 2009 [출처: artichoke]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 <One&Other>, 참여시민 2400명 중 1명의 진행 모습, 2009 [출처: artichoke]

 

다양성 존중과 자기 표현의 가치에 관한 중요한 예술작품 사례로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의 <One&Other>를 소개한다. 런던의 트라팔가 광장에서 2009년 100일간 진행된 본 작품은  영국 공공예술 프로젝트 ‘4번째 좌대(Fourth Plinth)’의 일환으로 기획된 것이었다.[4] 영웅의 동상 대신에 비어진 좌대 위에 공공예술 작품을 올리는 본 프로젝트에서 곰리가 선택한 것은 자신의 조각상 대신에 100일동안 1시간씩 총 2400명의 “진짜” 사람들을 전시하는 것이었다.[3] 그들은 제각기 다른 모습과 행동으로 좌대를 일시적으로 점유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한 시간을 사용하였다. 좌대를 “시위나 장대춤의 플랫폼으로 사용하거나, 스튜디오나 설교단으로 보거나, 질문이나 명상을 위한 틀로 보는 등”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했다. 캠페인을 하고 춤을 추거나 시를 낭송하고 벌거벗고 앉아있거나 뜨개질을 하는 등 다양한 자기들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제약과 검열 없이 하나의 축제로서 즐기며 시민대중은 창작의 주체로 변모했다. 작가의 말대로 이 좌대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감각을 시험하고 더 넓은 세상에 어떻게 이것을 전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열린 가능성의 공간을 제공했다.” 

곰리는 한 인터뷰에서 “누가 예술을 대표할 수 있을까? 어떻게 가능할까? 우리는 어떻게 그것을 경험할 수 있을까?(Who can be represented in art? How can we make it? How can we experience it?)”라는 질문을 수년간 해왔다고 전했다. 공적 영역의 예술에서 이러한 질문은 매우 중요하고 유효하다. 시민과 관객이 예술의 주체가 될 수 있을까? ‘우리’라는 이름으로 가려졌던 사람들, 다양한 사람들을 드러내는 방식은 어떻게 가능할까? 우리가 서로를 확인하고 차이를 인식하도록 돕는 예술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슈퍼플렉스(SUPERFLEX), Superkilen 프로젝트, 2012 ©Torben Eskerod [출처: https://superflex.net/works/superkilen]
슈퍼플렉스(SUPERFLEX), Superkilen 프로젝트, 2012 ©Torben Eskerod [출처: https://superflex.net/works/superkilen]

 

슈퍼플렉스가 제작에 참여한 덴마크 코펜하겐 Nørrebro시의 다문화 공원 Superkilen은 이러한 주체의 문제, 다양한 ‘나’로 매핑된 사회를 드러내는 방식을 명민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현지인과 이주민 등이 섞인 지역의 다양성을 보여주고자 기획된 이 공원에는 자메이카의 사운드시스템, 이스라엘 텔 아비브의 맨홀뚜껑, 태국 방콕의 타이식 복싱 링, 핀란드의 자전거 거치대, 영국 리버풀의 공공 쓰레기통, 모로코의 분수 등 62개국 총 108개의 오브제가 재현, 설치되었다. 주민들과 인터뷰를 통해 고향의 추억이 담긴 장소를 수집하고 이를 실제로 구현하는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구체적인 개인의 서사들이 공원에 담기도록 했다. 팔레스타인 여성 2인과 함께 직접 팔레스타인에 가서 흙을 퍼와서 공원에 흩뿌리는 장면은 이주민이 현지에 잘 섞이고 융화되기를 원하는 그들의 바람을 가시화 한다.[5]    

 

The 1000 Journals Project, 2000~ ©1000 Journals [출처: https://someguy.is/1000-Journals-Project]
The 1000 Journals Project, 2000~ ©1000 Journals [출처: https://someguy.is/1000-Journals-Project]

 

마지막으로 샌프란시스코 기반 예술가 브라이언 싱어(Brian Singer)가 2000년 시작한 ‘1000 Journals project’를 살펴보자. 그는 ‘썸가이(Someguy)’라는 가명으로 1000개의 빈 노트를 만들었는데, 지침은 간단하다. 세상에 뿌려진 1000개의 노트 중 하나가 당신의 눈에 띄게 되면 당신이 원하는 이야기나 드로잉으로 채우고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그간 적어도 40개 국과 미국 전역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기록되었고, 9⋅11 등의 굵직한 사건을 겪으며 개인의 단상이 수록되거나 재미있는 드로잉이 지면을 채우기도 했다. 이 프로젝트는 2008년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F MoMA)에서 전시로 소개되고 2009년 영화가 만들어지는 등 주목과 자발적인 참여가 이어지며 진행되었다. 개인의 창의성이 공적인 장소에서 평가받는다는 두려움은 자유로운 자기 표현을 가로막기도 한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한 장의 종이라는 제약과 익명성에 기대어 누구나 편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가능토록 설계되었다.

'나' 존재들이 '여기-지금'의 지도를 그리며 서로의 "있음"을 확인하는 예술 안에서 개인은 각자의 '우리'를 만들어 내며 예술 프로젝트의 생명력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닐까. 


예술은 우리가 서로를 확인하도록 돕고 우리에 대한 개념을 확장합니다. 

Art helps us identify with one another and expands our notion of we 

- 올라퍼 엘리아슨 Olafur Eliasson  


[1] 이 웹사이트에서 ‘우리’를 규정하는 내용은 다음에서 확인가능하다: https://www.weused.to/whoiswe/

[2] WVS의 ‘세계문화지도’는 다음에서 확인가능하다: 

https://www.worldvaluessurvey.org/WVSNewsShow.jsp?ID=467

[3] One&Other 프로젝트의 웹사이트는 다음과 같다: http://www.oneandother.co.uk/

[4] '4번째 좌대'는 런던 트라팔가 광장의 비어있는 좌대 위에 현대미술 프로젝트를 구현하는 사업이다. 1999년부터 영국 왕립 예술협회(RSA, Royal Society of Arts) 주최로 국제적인 예술가의 작품들이 선보여왔다. 2024년 작품과 지난 작품은 다음에서 확인할 것. https://www.london.gov.uk/programmes-strategies/arts-and-culture/current-culture-projects/fourth-plinth-trafalgar-square   

[5] Superkilen 프로젝트의 제작 과정이 담긴 영상에서는 참여자들의 사연과 구현 내용이 잘 나와있다. https://vimeo.com/155427158


이경미 / 독립기획자, PUBLIC PUBLIC 커뮤니케이션 디렉터 mia.oneredba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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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 PUBLIC은 사회적 가치를 담은 예술의 확장 가능성을 연구하고 사후연구과 비평을 포함한 담론생산을 실험하는 연구단체이자 콘텐츠 큐레이션 플랫폼입니다. 

PP PICK은 도시의 틈에서 이뤄지는 예술활동과 실천들에 관한 소식과 해설을 정기적으로 담아냅니다. 또한 예술작품과 대중(관객) 간의 상호소통에 주목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의 개입과 참여에 반응하는 예술 생태계를 매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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