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소리의 소리의 소리 - 소리에 체화된 기억

<고도를 기대하며(looking forward to [ɡɔ.do])> 참여작품(1)

2023.06.01 | 조회 5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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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 PICK

예술로 미닝아웃하는 다양한 소식을 전합니다.

퍼블릭 퍼블릭의 PPP(PUBLIC-PARTICIPATORY-PROGRAM)는 실험적인 관객참여 프로그램을 통해 예술과 관객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을 매개하고자 합니다. 2023년에는 프로젝트팀 ‘타.원’이 기획한 예술작업과 함께 합니다. 이 작업들은 땅을 둘러싼 성남 원도심의 과거와 현재를 잇고 ‘지금-여기’의 삶 안에서 벌어지는 사적-공적 영역, 가상-현실 세계에 관한 감각을 재맥락화 해보는 기회를 마련합니다.

PP PICK에서는 프로그램에 앞서 현재 진행 중인 전시 <고도를 기대하며(looking forward to [ɡɔ.do])>(6월 8일까지, 성남공공예술창작소 전시장 외 1곳)의 작품들에 관한 아티클을 총 다섯번에 걸쳐 소개합니다. 

  1. 비행기 소리의 소리의 소리 - 타.원 <반투명 비행>
  2. 덧붙이고 다시 쓰는 룰 - 남소연 <GranGran>
  3. 이곳에 발을 딛는 그녀와 함께 걷기를 - 김양현 <에너지(진동)으로 보는 신흥동>
  4. 미미한 것들의 이름을 찾는 여정 - 리히 <리히카세> 
  5. 신흥동과 피어나는 존재들 - 박진아X지평선 <어스름한 곳, 어스름한 때, 피어나는 이야기>

타.원(남소연, 이원호) <반투명 비행>, 2022-2023 (디자인: 소장각)
타.원(남소연, 이원호) <반투명 비행>, 2022-2023 (디자인: 소장각)

 

지금 잠시 눈을 감고 주변 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골목 어귀에서 개가 ‘왕왕’ 짖고, 오토바이가 시간을 재촉하듯 ‘부우우웅’ 달리며, 바람에 창틀이 살짝 ‘달크락’ 거린다. 저 멀리 하늘에 ‘두두두두’ 하고 비행기가 지나가고 누가 아픈지 ‘삐유우웅’ 앰뷸런스의 사이렌 소리도 스친다. 신경 쓰지 않았다면 들리지 않았을 소리의 풍경. 생활잡음이나 백색소음으로 치부되는 소리에 집중하는 순간, 우리는 무엇을  떠올리는가.

프로젝트팀 타.원(이원호, 남소연)은 성남의 원도심에 해당하는 수정구 신흥동에 소재한 창작소에 체류하며 성남의 비행장 ‘서울공항’의 존재를 소리로 감각하게 된다. 성남 수정구와 서울 강남구 세곡동에 걸쳐있는 ‘서울공항’은 1970년에 건립되어 지역의 역사를 함께 했다. 주지하듯이 1960년대 후반 개발된 성남은 도시 빈민들의 거처로 형성되었으나 전매로 인한 투기가 성행하게 되었고, 결국 71년 주민들에 의한 봉기가 일어난 역사를 지닌 곳이다. 

'공군성남기지'라고도 불리는 서울공항 [출처: YTN]
'공군성남기지'라고도 불리는 서울공항 [출처: YTN]

비행장이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까닭에 이 지역은 비행기가 지나가는 소리와 꽤나 가까운 삶을 살았다. 그리하여 <반투명 비행>(2022-23)은 주민들이 입으로 만들어내는 비행기 소리 수집을 기획한다. 프로젝트팀은 50~70대 주민 10여 명을 섭외하고 그들에게 비행기 소리를 육성으로 재현해 줄 것을 부탁했다. 저음에서 고음까지, 때론 둔탁하고 때론 날카로운 음색으로 저마다의 기억 안에서 마주친 비행기의 스펙트럼을 담아보려는 시도는 흥미롭다. 소리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지역 사회와 개인사가 교차하며 몸에서 반응하는 기억이 때때로 포착되기 때문이다. 

타.원(남소연, 이원호) <반투명 비행>, 복합매체, 가변설치, 2022-2023 ⓒ성남공공예술창작소 (사진: 정정호)
타.원(남소연, 이원호) <반투명 비행>, 복합매체, 가변설치, 2022-2023 ⓒ성남공공예술창작소 (사진: 정정호)

실제로 참여주민들은 비행기 소리를 흉내내기 전에 공통적으로 머뭇 거렸다. 소리를 불러오기까지의 일정한 딜레이가 발생하는 것인데, 스스로에게 비행기가 어떤 소리를 내는지 자문하는 사이에 소리와 붙어있던 수많은 기억이 스쳐 지나간다는 방증일 것이다. 그리고 그물에 물고기가 걸리듯, 특정한 기억과 감정이 ‘탁’ 걸리며 소리가 만들어진다. 한 주민은 전쟁의 기억-가족의 죽음과 연결된 비행기의 존재-으로 두려운 감정을 호소하면서 결국 비행기 소리를 내지 못했다. 이처럼 작업은 소리를 통해 지역의 역사와 함께 자라난 주민들의 기억을 반추해 본다. 

타.원(남소연, 이원호) <반투명 비행> 전시 전경 ⓒ성남공공예술창작소 (사진: 정정호)
타.원(남소연, 이원호) <반투명 비행> 전시 전경 ⓒ성남공공예술창작소 (사진: 정정호)

본 전시에서 프로젝트팀은 주민의 입으로 만든 비행기 사운드와 그 모습을 찍은 기록영상을 분리하는 설치 방식을 채택한다. 창작소 1층 전시장에 설치된 모니터에서는 영상이 보이고, 옥상의 확성기에서 소리가 나오는 방식이다. 동시에 확인할 수 없는 소리와 이미지의 간극을 매우려는 과정에서 보는 이의 기억이 추가된다. 마치 비행기 소리를 음성으로 내기 위한 과정에서 주민의 기억이 매개된 것처럼 말이다.

한편 전시기간 동안 창작소 옥상 확성기를 통해 주기적으로 송출되는 이 소리는 창작소와 주변 주민들과의 상호작용으로 확장된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비행기 소리가 주민들에게 일종의 백색소음처럼 이질감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비행기 소리를 흉내내는 목소리에는 어떻게 반응할까? 실제하는 비행기 소리에서 이를 재현한 주민들의 목소리, 그리고 다시 확성기로 송출되는 그들의 소리와 이에 관한 창작소 주변 주민들의 반응까지, <반투명 비행>은 비행기 소리를 매개로 지역 주민들의 소리에 체화된 기억들을 나누며 대화를 시도한다. 

타.원(남소연, 이원호) <반투명 비행> 중 확성기 옥상 설치 ⓒ성남공공예술창작소 (사진: 정정호)
타.원(남소연, 이원호) <반투명 비행> 중 확성기 옥상 설치 ⓒ성남공공예술창작소 (사진: 정정호)

 

소리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지역 사회와 개인사가 교차하며 몸에서 반응하는 기억이 때때로 포착되기 때문이다. 


※ 본 아티클은 <고도를 기대하며 (looking forward to [ɡɔ.do])>(기획: 타.원(남소연, 이원호), 후원: 성남문화재단 공공예술창작소)의 지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  

※ 전시정보는 인스타그램 @publicartstudio_sn네오룩 전시아카이브 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이경미 / 독립기획자, PUBLIC PUBLIC 커뮤니케이션 디렉터 mia.oneredba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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