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라르손-바느질하는 소녀_이지연

2024.05.17 | 조회 1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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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 드 까뮤

그림과 글로 내 안의 나를 만나는 시간

                                                                                             칼라르손- 바느질하는 소녀
                                                                                             칼라르손- 바느질하는 소녀

나의 할머니

할머니를 떠올리면 여자이기보다는 남자 같았다.

아담한 키에 쪽진 머리 자상한 분위기를 품어내는

나의 상상 속의 할머니와는 거리가 멀었다.

우리 할머니는 키가 크셨고 덩치도 있으셨고 손도 크셨다.

마치 사내 대장부 같으셨다.

할머니 집 사진 속의 할아버지는 단정하며 몸이 마르고 예민한 여자 같았는데

할머니는 수더분하고 털털한 남자 같았다.

외모는 남자 같았지만, 할머니의 솜씨는 천상 여자였다고 한다.

음식이면 음식, 바느질이면 바느질, 농사일이면 농사일

뭐하나 못하는 것이 없으셨다고 했다.

우체국 장이시고 사람 좋아하시던 할아버지는

집에 사람을 많이 초대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사랑방은 늘 사람이 북적였다.

할아버지는 본인 집에 온 사람은 밥이라도 꼭 먹여 보내야 한다는

소신 있는 분이셨는데

본인은 밥과 국에 밥을 드셔도

남들에게는 상 다리가 부러질 만큼 대접하셨다고 한다.

그런 할아버지의 성향 때문에

할머니는 손님들을 위해 식사에, 간식에, 술안주까지 챙기셨다.

아마 솜씨가 좋으셨던 모양이다.

안주인의 음식솜씨를 이렇게라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셨을까

옛날이나 지금이나 남편의 사람 좋아함은

부인에겐 꽤나 힘이 드는 일이 분명하다.

7남매 자식들 밥상에, 손님의 밥상까지, 할머니의 고단함이 여기까지 느껴진다.

 

할머니의 보물 상자

할머니 집에는 낡은 소쿠리가 있다.

거기에는 여러 개의 대바늘과 색색의 실이 담겨있다.

무언가 고칠 일이 있으면 고모들은 항상 할머니에게 sos를 청하고

보물상자 같았던 할머니 바구니 주변에 모여들었다.

할머니는 구멍 난 옷도 새것처럼 메워주셨고

큰 옷을 고모에게 맞게 줄이고 늘이고를 뚝딱뚝딱 해내셨다.

디자이너처럼 옷도 곧잘 만드셨다.

할머니의 바느질 하면 생각나는 옷이 있다.

삼베로 만든 옷이다.

왜 아빠 옷은 모시 옷이고 나는 삼베로 만들었냐고,

죽을 때 입는 거 아니냐며 투덜거렸다.

할머니는 모시는 힘이 없고 약해서 잘 헤지는 반면에

삼베는 아이들 옷 만들기에 튼튼하고 시원하고

풀을 먹이면 빳빳한 힘이 있는 천이면서, 색도 아이 보리 느낌이 나

예쁜 옷 만들기에 더 좋다고 하셨다.

(아니, 모시가 더 비싸서 그런 건 아닐까요? 할머니)

암튼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내 삼베 투피스는 이렇다.

양쪽 어깨에 날개 모양의 셔링이 들어가 있고,

지퍼가 아닌 진주 단추로 여밈이 되어있고

치마는 핀턱 라인을 넣어준 A라인 스커트였다.

삼베라는 단점이 무색할 정도로

여성스러우면서 귀여운 투피스였다.

내 마음에도 쏙 들었다.

고모는 그 옷이 너무 탐나 조카의 옷을 호시탐탐 노리기도 했지만

나는 좀처럼 기회를 주지 않았다.

지금은 내 몸이 많이 자라 입을 수 없지만,

그 옷은 아직도 친정집에 잘 보관되어 있다.

딸을 낳으면 물려 줘야지 했는데 아쉽게도 아들만 둘을 낳아

물려줄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가끔 친정에 가서 한 번씩 그 옷을 꺼내 보며 할머니를 추억한다.

지금 유행과 견주어도 전혀 밀리지 않는 옷!!

내 기억은 할머니와 많이 싸운 기억 뿐이지만

할머니는 나를 많이 사랑하셨던 것 같다.

기억이 흐려지면서도 내 이름은 끝까지 기억해 주시던 나의 할머니!!

 

누군가를 생각하면서 옷을 짓는 일

처음부터 끝까지 오롯이 그 사람을 생각하고 만든 옷

그 사람의 분위기에 맞는 옷을 지어주려 할머니는 내 생각을 많이 하셨을 터.

바느질 하고 있는 그림의 여성을 보니 할머니가 부쩍 생각나는 날이다.

할머니가 나를 많이 사랑하셨구나.

나는 그분의 사랑을 입고 자랐구나.

감사합니다.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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