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에세이

스웨덴 화가/칼라르손

현모양처를 꿈꿨던 나

2024.05.10 | 조회 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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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 드 까뮤

그림과 글로 내 안의 나를 만나는 시간

바느질의 대가들

칼 라르손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니 따뜻함, 평화로움, 안락함이란 단어들이 떠 올랐다.

바느질하는 여인인 칼 라르손의 아내 카린을 보고 있으니 얼마 전 처음 뵈었던 선생님의 얼굴도 떠올랐다. 옆에 앉아 본 선생님의 오똑한 콧날과 파마머리 들어난 이마에서 비슷한 느낌을 받은 것 같다. 그녀가 바느질을 잘 하는지 까지는 몰랐으나 바느질도 잘 하신다는 얘기를 SNS를 통해 알게 되었다.

바느질하면 나의 외할머니가 빠질 수 없다. 내가 어렸을 적 기억에 외할머니 집에는 나무상자처럼 생긴 가구가 있었다. 처음엔 그것이 재봉틀인지 몰랐지만 외할머니가 옷을 수선하며 꺼낸 검정색에 금색 글씨 특이하게도 발로 페달을 밟는 것이 아닌 손으로 돌렸던 외할머니의 재봉틀. 지금 생각하니 브라더 미싱의 초창기 모델 이였던 거 같다. 재봉틀이 엄마에게 대물림이 되었다면 지금 내손에 있었을 것 같은데 아쉽게도 그 물건은 현재 없다.

외할머니는 동네에서 솜씨가 좋았던 모양이다. 딸들이 시집을 갈 때면 꼭 가지고 가던 원앙금침. 목화솜에 배색된 비단 옷을 입혀 하얀 호청으로 겉을 감싸서 꿰매던 것을 많이 보았다. 이불을 꿰매는 날이면 외할머니 집 안방은 동네 할머니들의 사랑방 이였다. 길다란 바늘과 두꺼운 무명실이 감긴 실패가 여러 개 놓이고 나면 나는 할머니들 바늘에 실을 꿰어 주는 조수 역할을 하고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보수로 받았던 기억이다.

칼린 뒤에 커다란 기구가 눈에 들어왔다. 직물을 짜는 기계처럼 보인다. 그림에 보이는 기계도 어렸을 적 시골 할머니 집 대청마루에서 보았었다. 기계가 움직이는 건 본적이 없지만 할머니가 얘기 해 줬던 기억이 있다. 씨실과 날실을 교차해 가며 천을 만든다는 베틀. 할머니는 동네에서 내로라하는 삼베를 잘 짜고 옷도 잘 짓는 여인 이였다고 했다. 베를 짜는 할머니는 본 적이 없어 인정하기 어렵지만 옷을 요리조리 잘도 자르고 붙여 손바느질로 완성 했던걸 보면 바느질 잘 하는 할머니는 인정.

타샤 튜터

칼의 그림들에는 꽃, 화분등 식물들이 보였다. <바느질 하는 여인> 그림에도 수선화가 보인다.식물하면 예쁜 정원을 가꿨던 타샤 튜터가 떠오른다. 베스트셀러 동화책작가이자 삽화가였던 타샤 튜터가 56세의 나이에 가꾸기 시작한 정원 타샤의 정원이다.

칼이 자신의 아내와 8남매를 모델로 그림을 그린 것처럼 타샤의 그림책에는 아이들이 모습이 많이 나온다. 아이들의 표정은 언제나 다채로워 표정 없이 살아가는 나를 반성하게 하기도 한다.

타샤 튜터 할머니는 드레스(거창한 파티용 드레스가 아닌 수수한 원피스용 드레스)에 앞치마를 하고 보넷(여자나 어린아이들이 쓰는 끈 달린 모자의 하나)을 쓰신 모습으로 기억 된다. 그것들을 만들어 착용하신다니 이분도 바느질의 대가이시고 정원을 가꾸며 살아가는 원예가, 텃밭에서 난 것들로 요리하는 요리연구가, 동화책을 쓰는 작가, 동화책의 그림을 그리는 삽화가인걸 보면 다재다능과 자급자족의 아이콘이다.

무엇보다 타샤 튜터 할머니를 좋아하는 건 그녀의 가치관이다.타샤를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면 얘기 하는 많은 말들이 귀에 박힌다.

대부분의 사람은 어두운 면이 있지만 비관만 하고 있으면 인생에 그늘이 생겨요. 나는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아왔고 매 순간을 즐겼어요,”

요즘 사람들은 너무 바쁘게 살아요. 그래서 놓치는 게 많죠.”

사람들이 행복의 비결이 뭐냐고 물어요.”

저는 내면의 소리를 듣고 자신의 삶을 살라고 답하죠.”

나는 행복한 사람이에요.”

인생은 너무 짧아요. 즐겨야죠.”

현모양처를 꿈꿨던 나

칼과 카린이 즐거운 나의 집을 만든 것처럼 나는 고등학생 때부터 현모양처가 꿈인 아이였다.다들 이렇다 할 직업을 얘기 할 때 어디선가 꿈이 뭐냐 물었는데 신사임당 같은 현모양처요라고 대답한걸 보고 나도 장난스럽지만 현모양처라고 대답하던 기억이 있다.그때부터 친구들은 내가 일찍 결혼을 할 거라고 얘기 했었는데 결혼도 엄마도 1호가 되기는 했다.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 중·고등학교 여학생은 가정·가사를 배웠다. 그때 바느질도 요리도 집안에서 여자들의 손길이 필요한 것들을 배웠던 기억이 난다.나는 바느질도 수놓기도 요리도 잘 했었다. 정확히는 제대로 되지 않으면 마음에 들게 될 때까지 했으니 못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역행했으면 양가집 규수가 되었을 텐데.현재를 살아가며 쓰일 일도 많이 없거니와 비용만 지불하면 알아서 해 주는 세상이 되었다.

지금 써 먹는 바느질은 재봉틀로 박아 쓰는 일이다. 양재를 배운 건 아니고 큰아이가 걷는 것이 편해 졌을 무렵 홈패션을 배우러 다녔다. 세 살배기 아이를 데리고 풀잎문화센터에 등록해서 아이가방도 만들고 앞치마도 만들고 간단한 아이 원피스를 만들며 즐거웠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그때만큼 재봉틀을 돌일 일이 많지 않다. 가장 최근은 친구 상래가 아들의 이름표를 달아 달라 들렀을 때였다.

내가 가진 재주를 활용해서 남들을 돕거나 집안을 꾸미거나 하는 일은 수월하지만 어진 어머니이면서 착한 아내로서의 현모양처 꿈은 아직 실현 하지 못한 것 같다. 아이들을 많이 키워 놓았지만 여전히 이 세상을 살아내고 자신의 앞가림을 할 수 있는 능력치를 알려 주는 건 어렵다. 착한 아내로서의 삶은 밖에서 나를 보았을 땐 인내하는 삶을 살아 집이 시끄러울 일은 많이 없어 표면적으론 그래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신랑의 생각은 틀릴 것 같다. 착한 아내가 아닌 말없이 받아만 주는 나는 미련하고 답답한 아내일거란 생각이 든다.

*글쓴이 - 김혜정

두 아이를 힘차게 키워내는 한국의 엄마입니다. 요리하길 좋아해서 다양한 먹거리를 만들어 나누고 있습니다. 글쓰기를 통해 나의 또 다른 쓰임을 찾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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