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에세이

휴 골드윈 리비에르/에덴의 동산 -박숙현

사랑의 찰나의 순간

2024.04.08 | 조회 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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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 드 까뮤

그림과 글로 내 안의 나를 만나는 시간

휴 골드윈 리비에르,에덴의 동산,1860~1956
휴 골드윈 리비에르,에덴의 동산,1860~1956

사랑의 찰나의 순간

이 그림 속에는 사랑스러운 눈빛을 하고 있는 여인과 감상자에겐 얼굴이 보이지 않은 채 여인을 바라보고 있는 한 남자가 서 있다.

그래서인지 남자 주인공의 얼굴을 상상하게 만든다. 그들의 옷은 계절을 알 수 있는 긴 코트 그리고 그녀의 손에 낀 타이트한 장갑으로 보아 추운 겨울임을 알 수 있다. 그녀의 밝은 피부색은 검은 드레스와 더욱 대비가 되어 얼굴의 발그스레한 볼이 더욱 사랑스럽다.

그들이 걷기 좋게 비가 멈춘 모양인지 두 사람이 쓰기엔 충분해 보이는 긴 검은색 우산은 남자의 손에 들려 있다. 그들에게는 비 따윈 아무 상관이 없었을 것이다. 사랑이란 감정은 상대에 대한 초 집중의 감정이기 때문이다. 도파민이라는 사랑의 물질은 본능에 충실하게 만드는 호르몬이며 다른 사람의 시선 따윈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니까. 이 그림의 연인들처럼 말이다.

주변부에 묘사된 앙상한 가지들과 아무도 없는 공원에서의 두 남녀를 주인공으로 한 이 그림에서 화가는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을까?

사랑의 찰나의 순간? 아니면 유럽 사람들의 일상의 한 장면? 화가의 의도가 어찌 되었든 이 그림의 주인공은 두 남녀다.

사랑의 찰나를 즐기는 여인들이다. 찰나의 순간은 그 속에서 주인공으로 있을 때와 지나간 다음의 시간은 다르다. 누군가는 더 사랑하게 마련인 사랑이란 감정은 그래서 더욱 애틋하고 때론 아프기도 하다.

그래서 달콤한 유혹이라는 단어로 사랑이 비유되기도 하는 것 같다. 이 그림의 제목<에덴의 정원>을 알고 나니 더 이해가 되는 그림이 되었다.

그래도 이 사랑이라는 걸 삶에서 한번 느껴본다는 것은 축복 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인간이 느끼는 유일한 감정이기 때문이다.

오늘이 가장 젊은 찰나를 기록하는 화가

휴 골드윈 리비에르는 영국의 유명한 초상 화가다. 그의 아버지 브리튼 리비에르도 당시 동물 그림으로 유명한 작가였다고 한다. 그의 작품들을 찾아보니 대부분이 그 당시 유명한 학자들과 상류층 사람들의 초상화가 많다. 아버지는 사람과 동물을 아들은 초상화를 공통된 주제들이 닮아 있었다.

그의 인물화 작품들은 초상화라는 특수한 장르 때문인지 실내에서 앉아 있는 인물들이 많았는데 마치 사진관에 온 사람들의 표정을 잘 포착한 유명한 포토그래퍼가 찍은 프로필 사진 같은 느낌들이었다.

초상화를 의뢰한 사람들의 찰나의 순간들에 대한 기록이랄까? 의뢰인에 요구에 많은 공을 들이기도 했겠지만 그들의 가장 젊은 날을 기록한 기록자의 역할을 제대로 한 작가이기도 한 것 같다.

배경을 최소화하고 인물에 온전히 집중하며 그려 낸 그의 작품에는 사람에 대한 스토리를 담아내려 한 흔적들이 많이 보였다. 그림의 주인공들이 앉은 의자의 방향 그들이 차려입은 고급스러운 옷들과 소품들은 모두 주인공의 이야기가 담긴 듯하다.

요즘 우리가 사는 시대엔 영상을 찍거나 사진을 찍는 일이 흔한 일이지만 프로필 사진을 찍기 위해 사진관을 가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자신을 나타내기 위한 유일한 한 장의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아직도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이 아닐까? 나보다 나를 더 잘 기록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인간의 욕망도 포함된 게 아닐까?

그것이 찰나의 순간일지라도 상관없이 말이다.

무채색은 은밀함이 포함된 색이다.

내가 유럽에 살기 시작하면서 제일 많이 입었던 옷의 종류와 색을 생각해 보면 비가 와도 거뜬한 방수 처리된 비옷 대용의 옷들과 검은 색상의 옷 들이었다.

내가 오래 살았던 독일의 날씨도 이 그림을 그린 화가의 나라 영국의 날씨도 가을부터 겨울 그리고 이듬 해 부활절이 오기 전까진 늘 비옷이 평상복이었다. 변덕스러운 영국 날씨만큼이나 속을 알 수 없는 영국 사람들의 문화를 잘 대변하는 색 무채색은 색깔이라기보다는 빛의 높낮이를 표현한 색감이라는 말이 적합한 표현이다.

다시 말해 빛이 높으면 흰색 빛이 낮으면 검은색이라는 뜻이다. 영어로는 without colar 또는 less를 써서 colorless로 표현되는 무채색이란 색은 참 사람을 알 수 없게 만드는 색인 것 같다. 한때 아니 요즘도 청소년들이 즐겨 입는 검은색 패딩을 보고 있노라면 학생들이 검은 이불을 둘둘 말고는 정체를 숨기며 다니는 존비들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자신을 최대한 숨겨야 하는 이들 말이다.

그리고 공식적인 자리에선 검은색 정장은 국룰 필수가 아닌가 말이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며 절제해야 하는 위치의 사람들이 착용하는 검은색 다시 말해 은밀한 색이다.

아래의 그림에서의 두 남녀의 의상도 검은색이다. 그들의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담기에는 이만한 색이 또 있을까? 또 무채색의 색감은 차분하고 조용하기도 해서 사람의 마음을 성스러운 공간으로 데려가기도 한다. 성직자들의 의복도 검은색인 이유가 충분하다.

이 그림의 남녀는 그들만의 세상에 누구도 초대하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개 낀 날씨도 숨어들기엔 안성맞춤이 아닌가? 그들의 은밀한 사랑의 속삭임에 관한 드라마 예고편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회차의 드라마를 기다리는 맘이 되었다.

글쓴이 -박숙현

치유작가 SUE라는 이름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12년간의 해외 살이로 세계 곳곳의 박물관 미술관을 다니는 취미를 가졌고 지금은 한국에서 그림 그리는 작가로 글도 쓰며 살고 있다.

https://blog.naver.com/reazume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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