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에세이

칼 블로흐(Carl Heinrich Bloch)_덴마크 화가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_전애희

2024.04.20 | 조회 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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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 드 까뮤

그림과 글로 내 안의 나를 만나는 시간

애잔함

 칼 블로흐의 <목욕 후, 어부의 창문을 두드리는 어린 소녀> 작품을 처음 본 순간 나는 멈칫했다. 무서운 느낌의 첫 인상을 준 그림을 가만히 드려다 보고 있으니, 창가에 예쁜 꽃이 담겨진 화병이 있다. 빨강, 보라, 파랑을 띈 꽃과 초록 잎이 생명의 싱그러움을 주고, 살포시 떨어진 꽃잎과 덮개용 같은 천이 늘어져 있다. 그 아래에는 손질을 기다리는 생선 몇 마리가 도마 위에 올려져있고, 천정부터 거미줄처럼 늘어진 그물(나중에는 커튼처럼 보이기도 한다.), 창틀 위 기다란 봉에 걸려있는 주전자가 삶의 흔적을 보여준다. 어두운 실내 창밖으로 파스텔빛깔이 스며든다. 모자 때문인지 눈 밑까지 그늘진 하얀 얼굴의 소녀는 핑크빛 원피스를 입고, 한손에는 똬리를 꼭 쥐고 있다. 그리고 나머지 한 손으로 조심스럽게 노크를 한다. ‘똑똑!’ 차분한 여인 뒤편으로 모래사장과 낮게 깔린 구름, 흐리게 보이는 바다가 펼쳐져 있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 시 처럼 자세히, 오래 보았더니 무서웠던 그림이 애잔함으로 다가온다.

Girl Knocking on Fisherman's Window, 1884
Girl Knocking on Fisherman's Window, 1884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똑똑!!

여인의 노크는 내 기억 속 작은 창을 두드린다. 잠시 후 내 귓가에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이 들려온다.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모르는 딸 있네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늙은 아비 혼자 두고 영영 어디갔느냐
바람 부는 마른날에 아버지를 찾아서바닷가에 나가더니 해가 져도 안 오네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늙은 아비 혼자 두고 영영 어디 갔느냐금빛 머리 해뜰아기 그 이름은 클레멘타인고기잡기 할 적마다 내 생각이 났느냐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늙은 아비 혼자 두고 영영 어디 갔느냐

_나의사랑 클레멘타인

매일 새벽 별이 반짝이는 시간, 아버지는 바다로 향한다딸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향기로운 꽃과 함께 잠시 집에 두고……

똑똑!

아침 햇살이 찬란하게 빛 날 무렵 한 여인이 창문을 두드린다. “아버지~ 저 왔어요. 아버지가 사랑하는 딸 클레멘타인이 왔어요.”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딸이 왔다. 소녀였던 클레멘타인은 어느 새 훌쩍 자라 숙녀가 되어 아버지를 찾아왔다.어두운 집안은 어느새 햇살처럼 따뜻해 질 것이다. 이렇게 한편의 이야기가 영화처럼 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리고 우리 아빠가 생각났다. 명절 때나 고향에 내려 갈 때, 집안의 큰 행사가 있을 때만 만나는 우리 아빠, '아빠!' 마음속으로 크게 불러보았다. 

내 어릴 적 아빠는 든든한 나무 같은 분이셨다. 엄마한테 혼날 때 뒤로 숨으면 그 상황을 모면할 수 도 있었고, 함께 산에 올라 도토리도 줍고, 약수도 떠왔다. 가끔 아빠 몸이 놀이기구가 되어 우리 삼남매를 빙글 빙글 돌려주셨다. 하루는 아빠가 일하시던 광주역을 찾았다. 집에서 꽤 먼 거리였는데, 걸어갔던 기억이 난다. 무선사무실에서 근무하시던 아빠가 기차를 태워주신다고 해서 신나게 따라갔다. 나는 처음으로 기차 기관실에 올랐고, 내 기억 속 시커먼 기관실 안에는 긴 막대 모양의 운전대만 덩그러니 있었다. 올렸다 내렸다 하며 속도를 조절하는 긴 막대 운전대는 정말 신기했었다. 아빠, 동생들과 함께 갔던 한국 통신(지금은 KT) 건물에는 과거와 미래의 통신기기가 있는 정말 환상적인 공간이었다. 그 중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었던 화상 전화기가 제일 신기했었다. 난 그 장소를 혼자서도 몇 차례 더 찾아갔다. 모처럼 어린 시절 아빠를 생각하니 즐겁고 행복한 기억들이 떠오른다. 어느 날 부터였을까? 아빠와 엄마가 많이 다투셨다. 모두가 반대하는 종교 생활을 시작하며, 아빠는 차츰 멀어져갔다. 종교 생활 빼면 똑같은 아빠였지만, 사춘기 시절과 맞물리며 아빠와의 사이는 멀어졌다. 은퇴 후 아빠는 아직도 종교 생활을 이어나가시고 계신다. 종교 생활에 집중해서 할 수 있어 좋다는 아빠를 보면서 ‘아빠에게 종교는 어떤 의미일까?’생각을 해본다. 엄마와는 아직도 갈등이 되는 부분이지만, 타지에서 살기에 자주 못 보는 딸 입장에서는 ‘은퇴 후 갑자기 늙는 부모님들이 많으신데, 종교 생활로 하루하루 바쁘게 사는 삶이 아빠에게는 오히려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치원 원감으로 다시 일을 시작하려고 했던 2월, 첫째가 A형 독감에 걸렸다. 첫째 병간호를 하던 나도 덩달아 A형 독감 판정을 받았다. 손끝, 발끝, 귓속까지 아팠다. ‘우리 힘으로 살아야지!’했던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부모님에게 SOS를 청했다. 이렇게 친정 아빠는 수원으로 올라오셨다. 1년 동안 함께 살면서 3살 된 손녀를 돌봐주셨다. 아침은 전쟁 같은 시간이었다. 둘째를 1층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첫째를 차에 태워 유치원을 향했다. 아빠는 둘째가 하원하기 전까지 개인적인 일을 보시고, 어린이집 하원부터 내가 돌아오기 전까지 둘째를 돌봐주셨다. 신랑은 새벽 일찍 출근해서 늦은 밤에 퇴근해서 돌아왔다. 어른 셋과 아이 둘은 이렇게 1년이라는 시간을 함께했다. 나 어릴 적 아이들과 잘 놀아주셨던 아빠와 종교생활에 푹 빠진 아빠가 공존하던 시기였다. 손녀와 함께 놀이터에서 놀고, 뻥튀기 사서 함께 먹고, 아직 배변습관 연습 중이던 손녀를 깨끗하게 씻겨주셨다. 손녀의 젖은 옷 세탁도 해주시고 가끔은 가족과 함께 먹을 밥과 국도 준비해주셨다.

편지

 가끔 아빠한테 편지가 온다. ‘사랑하는 딸 애희에게로 시작하는 손 글씨 편지에는 손자, 손녀, 사위의 안부와 함께 짧은 친정 소식, 종교에 관련된 내용이 함께 들어있다. 편지를 읽고 나서 아이들에게 외친다. “할아버지한테 편지 왔네!” 첫째보다는 둘째가 할아버지 편지를 반긴다. 둘째에게 어릴 적 할아버지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이야기 해준다. “어릴 적 할아버지가 너 쉬하면 씻겨주시고, 옷도 빨아주셨어. 그리고 놀이터에서 그네 밀어주시고, 너 좋아하는 뻥 과자도 사 주셨어하니 정말?” 두 눈 동그랗게 뜨며 묻는다. 오랫동안 멀어져있던 마음이 가까워지기는 힘들지만, 나는 아빠를 좋아한다. 그리고 사랑한다. 아이를 낳고 키우며, 아빠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 같다. ‘아빠도 클레멘타인의 아버지처럼 딸과 함께 했던 시간들을 그리워할까?’ 생각해본다.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함께 하고 싶어 하는 아빠의 마음이 느껴진다. 온 가족들의 반대에도 여전히 아빠만의 종교 활동을 하시지만, 그 속에서 느끼는 외로움이 많으실 거다. 가족과 함께 여행가고 소소한 대화를 나누길 바라지만 표현하지 못하는 아빠의 마음이 보인다.

아이들의 손을 빌려 편지를 보내봐야겠다.

칼 블로흐의 작품 속에서 만난 클레멘타인처럼내 마음을 아빠에게 보내봐야겠다. 아버지를 찾아 돌아온 클레멘타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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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전애희

현재 경기도미술관, 수원시립미술관 도슨트로 활동하고, 도서관에서 독서지도사로 독서연계, 창의융합독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림책과 그림은 예술이라는 한 장르! 예술을 매개체로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소통하는 삶을 꿈꾸며, 내 삶에 들어온 예술을 글로 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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