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에세이

트레이시 에민, Not yet the end_료

가장 좋아하는 3가지의 죽음과 그것을 연주해주는 섀도워크(shadow work)

2024.08.10 | 조회 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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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 드 까뮤

그림과 글로 내 안의 나를 만나는 시간

Not yet the end, 2017, 트레이시 에민 
Not yet the end, 2017, 트레이시 에민 

 

가장 좋아하는 3가지의 죽음과 그것을 연주해주는 섀도워크(shadow work)

콸콸, 흘러 이미 죽어있는 맥락들의 섀도들은 침대에 누워있을 그녀의 악몽을 지배하려 한다. 소녀는 왜 침대에 홀로 누워있는 것일까? 누가 데리고 와서 눕혀놓은 것일까? 이미 죽었음에도 왜 겁을 먹고 있는 것일까? 이해가 되지 않는 공포가 가끔 나에게도 닥쳐올 때가 있다.

대학 학보사 MT를 갔을 때였다. 다인승 자동차에 교수님과 기사님, 선배, 동기들과 함께 그곳으로 향했다. 교수님 에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해남 외곽에 있는 암자로 말이다. 한여름의 자동차 안은 에어컨을 틀었는지 안 틀었는지 느낄 수 없는 공격으로 사라지는 공기에 지쳐가고 있었다.

깜빡 잠이 들었다. 자지 않으면 이대로 녹는 순간의 나를 처참히 시간대별로 목격할 수도 있으니 차라리 도착할 때까지 잠을 자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자동차 안을 감싸고 있던 마지막 공기 체계도 무너진 것이었을까? 갑작스레 뛰어든 뜨거운 호흡에 멈춰 당황해하며 잠에서 눈을 떴다. 아주 잠깐 나 죽을 뻔한 거 아닌가?’ 하고 놀라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너무나 평범한 더위였다. 모두 똑같이 더웠고, 모두 똑같이 한여름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어느새 나는 암자의 평상에 앉아 스님이 내려주는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 스님은 나에게 춤을 잘 추게 생겼다며 춤을 춰보라고 했다. , 아닌 가 노래를 잘 부르게 생겼다고 했던 가. 다시 우리는 어디론가 우리는 다시 어디론가 출발을 했다. 삶의 어느 한 부분이었던 그 시간은 어떤 맥락들 사이에서 자주 지배되고 있었는지도 모를 핑계를 되고 있다. 그럴싸하게 성공한 핑계의 면역을 시큼한 연주로 신체를 걸어본다.

 

그의 책상과 나의 책상의 침대

좁은 연구실에서 그는 나를 사랑한다고 자주 고백했다. 나의 사고에는 애매모한 방식이었다. 주말에도 특정 공휴일에도 외부특강을 나가는 날에도 나를 불러내는 그였다. 가끔 영화관, 지하철에서 마주하고 있던 그의 손은 나의 손을 데리고 가 깎지를 만들어 끼었다. 친구들 중에 스킨십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 아이와 스킨십을 처음 했을 때와 조금 다른 느낌이었지만 이것도 그런 것과 비슷한 것이 아닐 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교수는 시인이었다. 가끔 나의 이름을 제목으로 시를 하얀 종이에 적어줬었다. 교수의 나이는 생각해 본적이 없지만 대충 40대였을 것이고, 21살의 나는 새로운 인간관계를 배우는 과정이었다. 크리스마스이브 저녁에는 약속이 있었다. 교수는 친구들을 다 부르라고 했다. 일찍 헤어지겠다는 그의 첫 다짐과 다르게 친구들과 다함께 피자를 뜯어먹고 앉아 있었다.

그의 책상과 나의 책상의 구조는 수직으로 만나게 되어 있었다. 내가 타이핑을 할 때 가끔 옆으로 와서 확인을 하곤 했다. 교수는 가까이 다가와 나를 붙잡으며 쪼그리고 앉았다. 그의 눈빛이 쉽게 지나가길 바라였지만 어디로도 교차할 생각조차 없어보였다. 서서히 밀려오던 교수의 손은 나의 허벅지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이미 정해져있었던 경로를 타 좀 더 안쪽으로 좀 더 반응하고 있었다. 바지 위로 올라오는 손은 조금만 더 향하면 속옷까지 도달할 기세였다. 도저치 참을 수 없는 감각에 방아쇠를 당겨 외쳤다.

교수님, 간지러운데요?”

, 미안해...!”

소스라치게 놀라던 교수의 새빨개진 얼굴이 이제는 가물가물하다. 그의 책상에서 나를 바라보던 시선은 꾸준히 이어졌지만 우리의 어긋남은 그렇게 바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섀도들의 검은 가방

맥락들은 본연의 직업을 즐기고 있었다. 자유도 없고, 포기하지도 않고, 의지도 없는 삶을 지지하는 전주곡을 도왔다. 비밀스러운 새벽과 같은 인큐베이터에 서성이고 있는 그들이 보인다. 섀도들의 검은 가방을 풀어본다. 1 섀도는 마리아와 같은 자세로 그녀를 위한 기도를 드리고 있다. 2 섀도는 죽음을 일시적으로나마 저지하거나 지연시킬 수 있는데도 방관한다. 죽음으로 향하게 오래된 기억을 암시하는 중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침대의 반대편으로 향한다. 물개의 여러 갈래로 엉켜있는 스킨을 가진 3 섀도는 침대에 콸콸, 흘러 이미 죽어있지만 어디로 떠나지도 못하는 침대의 악몽을 붙잡고 있다.

집으로 돌아가 여름 밤을 다시 우리는 우리는 다시 좀 더 좀 더 기다려 본다.

 

*글쓴이 - 료

글/ 도서관/ 미술관에 곁들어 살고 있다. 다양한 문화에 관심이 많다. 예술에 대한 욕구가 차오르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 질주하는 본능은 태어났을 때부터 가진 적이 없다. 앞으로도 그럴 생각인 것 같다. 그렇게 멍 때리기를 반복하다가 얻어걸리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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