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구독자님!
6월도 벌써 중반입니다. 슬슬 초여름?
아무튼 더워지기 시작하는데요, 여름은 역시 납량특집 즐기는 맛이죠.
납량을 즐기기에는 아직 이른가요?
6월에 이 테마를 놓치는 건 너무너무 아쉬우니까 레터를 쓰게 되었습니다.
오늘 가져온 주제는 양정은 왜 세조에게 왕위를 내려놓으라고 했을까 입니다.
저는 진-짜 궁금한 부분이었어요.
그래서 해당 사료를 여러번 돌려보았고
전후 사정도 살펴보았거든요.
우선 저는 개인적으로 양정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양정 이 사람은 세조의 공신이면서 세조에게 왕위에서 물러나라고 하는 엄청난 말을 하는데요,
사실 저는 왜- 그랬을지 솔직히 이해해서 ㅋㅋㅋㅋ
싫어하지만 이해합니다.
그런데 보통 양정의 대역 발언 소동을 술자리 중에 일어난 해프닝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세조의 술자리 정치 그리고 거기에서 일어난 실수들.
술에 거나하게 취해 양정이 헛소리하다가 그 발언이 도저히 공신이어도 커버못해줄 정도로 세조의 콤플렉스를 자극해버려서 결국 목이 달아났다 이런 느낌으로요.
그런데 정말 우발적인 일이었던 것일까요?
자 일단 사료를 한번 봅시다.
[ 세조 12년 6월 8일 정미 1번째기사 1466년 명 성화(成化) 2년 ]
양정이 퇴위를 권유하다
양산군(楊山君) 양정(楊汀)이 평안도(平安道)로부터 와서 임금을 알현하니,
임금이 사정전(思政殿)에 나아가서 양정을 인견하고 세자(世子)와 고령군(高靈君) 신숙주(申叔舟)·상당군(上黨君) 한명회(韓明澮)·병조 판서 김국광(金國光)·이조 판서 한계희(韓繼禧)·도총관(都摠管) 심회(沈澮), 위장(衛將) 오자경(吳子慶)·허형손(許亨孫)·신주(辛鑄), 중추부 동지사(中樞府同知事) 서거정(徐居正)을 불러서 입시(入侍)하게 하였다.
임금께서 양정이 오랫동안 변경(邊境)에 있었다고 하여 술자리를 베풀어서 그를 위로하였다. 이어 도승지(都承旨) 신면(申㴐)을 불러서 전교(傳敎)하기를,
"양정(楊汀)이 오랫동안 외방에서 노고(勞苦)했는데도, 지금 안색(顔色)을 보니 매우 살이 찌었으므로 내가 매우 이를 기뻐한다. 초10일에 훈구(勳舊)등과 더불어 한 잔의 술을 베풀어 양정을 위로하려고 하니, 그것을 미리 준비하라."
하였다.
술이 반쯤 취하니, 종부시 첨정(宗簿寺僉正) 최호원(崔灝元)과 관상감 첨정(觀象監僉正) 안효례(安孝禮)를 불러서 혼원 가령(昏元假令)을 논란하게 하니, 최호원 등이 서로 버티면서 말하지 않으므로, 임금이 승(勝)한가 안한가를 물었으나 또 즉시 대답하지 않았다.
임금이 노하여 윤필상(尹弼商)으로 하여금 취초(取招)하게 하여 장차 죄에 처하려고 전교(傳敎)하기를,
"고금 천하에 어찌 임금이 말하는데 신하가 대답하지 않는 이가 있겠는가?"
하고, 되풀이하면서 힐책(詰責)하고 마침내 하옥(下獄)하도록 명하였다.
이에 양정(楊汀)이 앞에 나아와 끓어앉아서 아뢰기를,
"성상께서 어찌 과도하게 근로(勤勞)하기를 이와 같이 하십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군주(君主)는 만기(萬機)를 모두 다스리고 있으니, 어찌 근심하고 부지런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하였다. 양정이 대답하기를,
"전하(殿下)께서 임어(臨御)하신 지가 이미 오래되었으니, 오로지 한가하게 안일(安逸)하심이 마땅할 것입니다."
하므로, 임금이 말하기를,
"경(卿)이 말하는 바는 곧 사시(四時)의 순서(順序)에 성공(成功)한 자는 물러 간다는 것인가?"
하니, 양정이 대답하기를,
"그렇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내가 평소부터 왕위(王位)에서 물러나 스스로 편안하려고 했으나 감히 하지 못하였다."
하니, 양정이 말하기를,
"이것이 신(臣)의 마음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경(卿)이 서방(西方)에 오랫동안 있었는데, 서방의 인심(人心)도 또한 이와 같던가?"
하니, 양정이 대답하기를,
"사람들이 그 누구들 그렇게 말하지 않겠습니까?"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내가 죽고, 신숙주와 한명회도 죽고, 경(卿)도 또한 죽어서 임금과 신하가 모두 죽는다면 국가의 일은 누가 다스리겠는가?"
하니, 양정이 대답하기를,
"차차(次次)로 있게 될 것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내가 어찌 임금의 자리를 탐내는 사람인가?"
하고, 즉시 승지(承旨) 등에게 명하여 대보(大寶) 를 가지고 오게 하여 즉시 세자(世子)에게 왕위(王位)를 전하려고 하니, 승지(承旨) 등이 부복(俯伏)하여 일어나지 않았다. 신숙주·한명회 등이 눈물을 흘리고 울면서 큰 소리로 말하기를,
"이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그렇다면 종묘(宗廟)와 사직(社稷)을 어찌하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옛날에 성인(聖人)은 천하를 관가(官家)로 여겨서 집안에 현명(賢明)한 아들이 없으면 도부(陶夫)를 구하여 천하를 물려 주었는데, 하물며 지금 세자(世子)의 재주가 능히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 있어서이겠는가? 내가 이미 덕이 적어서 백성의 마음이 떠나버리었다. 양정은 정직한 신하인 까닭으로 말하는 바가 이와 같은데 내가 어찌 감히 임금의 자리에 오래 있겠는가?"
하면서
신면(申㴐)을 재촉하여 나가서 대보(大寶)를 가지고 오게 하니, 신면이 마지 못하여 나가서 상서원(尙瑞院)에 이르러 너무 급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서 옥새(玉璽)를 받들고 앉아 있으므로, 또 윤필상(尹弼商)에게 명하여 재촉하니, 윤필상이 나가서 신면(申㴐)과 더불어 서로 이르기를,
"신(臣) 등이 비록 죽더라도 어찌 감히 옥새를 받들어서 바치겠는가? 차라리 임금의 명령을 어긴 죄를 받겠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승지(承旨) 등은 어찌 옥새를 가지고 오지 않는가? 옛날에 우리 태종(太宗)께서 왕위(王位)를 전하려고 하니 그때의 여러 신하들이 즉시 옥새를 가져 오지 않았는데, 오늘날에도 어찌 마땅히 이와 같이 하는가? 만약 큰 일이 이미 정해졌다면 어찌 대보(大寶)를 전하고 전하지 않는 데에 관계되겠는가? 그것을 속히 가지고 오라."
하고, 또 홍도상(洪道常)·정난종(鄭蘭宗)·이수남(李壽男) 등에게 명하여 이를 재촉했으나, 홍도상 등도 또한 상서원(尙瑞院)에 와서 죽어도 명령에 응하지 않기로 기약하였다.
또 영순군(永順君) 이부(李溥)·귀성군(龜城君) 이준(李浚)·물거윤(勿巨尹) 이철(李徹)과 의빈(儀賓) 정현조(鄭顯祖)·사산군(蛇山君) 이호(李灝) 등에게 명하여 옥새를 가져 오게 했으나 부(溥) 등도 또한 나가서 머뭇거리면서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이때 양정(楊汀)이 아직도 어탑(御榻) 아래에 있다가 부르짖기를,
"임금의 명령이 이와 같은데, 승지(承旨) 등은 어째서 대보(大寶)를 가져오지 않는가?" 하면서 이를 재촉한 것이 두세 번이나 되었다.
(중략)
쓸데없이 긴 사료긴 한데 요약하면 다음 상황입니다.
양정이 10년 가까이 변방에 있었고 돌아와서 세조를 알현하죠.
이때 세조가 저 여러 훈구들을 부르고
심지어 세자까지 불러서 이제 연회를 열어요.
그런데 당시 말주변이 좋던 최호원과 안효례 만담콤비에게 노가리 까라고 하거든요.
제대로 놀자판을 펴는 거예요.
흠 근데 어째서인지 최호원과 안효례가 그날따라 제 실력을 발휘 못하고,
무엇보다 세조가 혼원 가령을 해보라는데 입을 못 열어요.
일단 저 혼원 가령이 대체 뭔지를 모르겠는데 한자들을 보니 말장난, 말싸움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두 사람에게 야 분위기 심심하니까 끌어올려라 하면서 일부러 말싸움을 하라고 붙이는 거거든요.
솔직히 두 사람은 뜬금없이 해야하는데 하고 싶겠나 싶긴 해요.
혹시 말싸움 하라고 던진 주제가 상당히 민감 했던 걸까요?
다른 사료에서 보면 잘 주절거리는 두 사람이 왜 입 꾹 다물고 대답을 안 하는지 좀 이상하긴 해요.
어찌됐든 만담콤비 두 사람이 명을 안 받드니까 어째서인지 세조가 벌컥 화를 내네요?
세조: 고금 천하에 어찌 임금이 말하는데 신하가 대답하지 않는 이가 있겠는가?
내가 임금인데, 왜 신하가 대답 안해! 내가 임금인데 신하 주제에 왜 대답 안 해!!
이걸 반복해서 힐책하면서 하옥까지 하라고 한 거예요.
그런데 되게 이상하지 않나요.
왜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걸까요?
자기가 왕위에 오른지 12년에 해당하는 해인데 말입니다.
이 상황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양정이 갑자기 나섭니다.
양정: 많이 힘들어 보이시는데(😏비꼼) 왕위에 오래 계셨지 않으셨습니까? 이제 물러나시지요.
갑자기 공격이 훅 치고 들어옵니다.
세조, 많이 당황했던 모양이예요.
그래도 막 짐짓 아닌 척
세조: 아 나 물러나라고? 마치 사계절이 돌고 돌듯 이제 나의 때는 지났으니 가서 쉬라는 거지?
양정: 예.
세조: 어.... ( 이게 아닌데? ) 그래 사실 나도 원래 왕을 그만 두려고 생각했었어.... (???)
양정: 예. 그게 곧 제 마음입니다.
세조: 어.... 😰( 안 말리네??) 경이 그동안 변방에 있어서 그런 모양인데.... 혹시 변방의 민심도 그러하나?
양정: 예.
세조: 어.... 내가 죽고, 신숙주와 한명회도 죽고(신숙주, 한명회: 우린 왜요??),
경도 또한 죽어서 임금과 신하가 모두 죽는다면 국가의 일은 누가 다스리겠나?"
양정: 다음 세대들이 알아서 하겠지요.
세조: ??? 아, 알았다고!! 여봐라ㅡ 당장 옥새를 갖고 오너라!!! 도승지, 얼른 옥새 갖고 오시게!!!
그렇게 놀자판은 개판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그보다 양정의 발언에 얼마나 당황했으면 멀쩡한 신숙주와 한명회도 말로 죽인다나요?
저는 이 사료를 아무리 봐도 양정이 술기운에 우발적으로 퇴위 건의를 한 것 같지가 않더라고요.
저 사료 속에서 세조는 말이 길어지면서 엄청 흥분하고 있는데
무엇보다 술에 취했다는 사람이라고 보기에 맞받아치는 양정의 대답은 짧고 명확하고 단호합니다.
심지어 양정 본인이 개판의 상황에서 계속 옥새를 가져오라고 두세번을 말했다고 하지요?
제가 볼 때 양정은 목이 달아날 각오 이미 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일부러 세조의 마음에 엄청난 비수를 꽂을 수 있는 때를 노린데다
세조에게 '<옥새>에 어떤 기억이 있는가',
미래의 우리는 알고 있잖아요.
양정은 "이것들아 어명이 있으시잖냐! 옥새 빨리 갖고 와라!!" 하면서
그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상황을 만들었거든요.
아무리 술에 취해도 <옥새>를 언급한다고요??
그래서 이 퇴위 권유 소동은 결코 술기운에 의한 우발적인 상황 같지 않습니다.
정말 양정의 말마따나 변방 쪽 민심은 이미 떠났다고, 실제로 1년 뒤에 이시애의 난이 일어나니까요.
저는 양정이 10년 동안 변방에 있으면서 확실히 암군이던 세조대의 부정부패를 몸소 느낀게 맞다고 봅니다.
공신이던 자신을 10년 간 방치해둔 것에 대한 불만, 분명 있었겠지요.
그런데 그것에 더해 민심이 세조에게 없다는 거 이것도 상당히 유의미한 발언입니다.
"당신이 왕인 이 시대는 가망이 없어!"
그게 세조의 공신이던 양정의 메시지였던 겁니다.
제가 이 날 세조의 모습이 유독 이상하리만치 감정적이라는 표현을 위에서 언급했지요?
"내가 왕이야 왕이라고!!!" 이 메시지를 계속 던지는 사람에게
양정은 "이 정도면 오래 해먹었다 댁은 이제 왕 자리에서 물러나라" 하는 겁니다.
물론 치세 10년 무렵부터 피부병이 악화되었으니 제 생각에 저무렵 세조의 얼굴이나 온몸은 이미 썩어 문들어져 들어가 병색이 완연했을 겁니다.
상당히 오랜만에 보는 주군의 쇠약해진 모습에 측은지심이 들어 진심으로 쉬라고 하고픈 마음이 들었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양정의 논거를 보면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비록 병으로 골골하고 있어도 훈구공신들이 그 앞에서 쩔쩔매고 있는 걸 보면 세조의 권세가 여전히 리즈인 상황인 것 같은데 그런 분위기 속에서 저런 말을 했다면 이건 진짜 죽을 각오하고 말하는 거예요.
자 그래서 이 날 날짜를 다시 볼까요.
1466년 6월 8일.... 1466년 6월 8일.
1466년 6월 8일....
네, 그렇습니다.
양정이 정말로
세조의 마음을 다시 한번 더 갈갈이 찢을 수 있는 때를 제대로 노렸거나
원혼이 씌웠거나 둘 중 하나겠네요.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 레터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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