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생활을 구성하는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비율은 몇 대 몇 정도인가요? 아마 이러한 생각 조차 해본 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일 거예요. 그럼 이번엔 질문을 바꿔서 해볼게요. 여러분은 하루에 얼마나 손글씨를 쓰나요?
자, 그럼 이 두 가지 질문에 답을 찾으며 오늘의 브랜드를 읽어보세요. 디지털 기반 시대의 아날로그 문화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잊혀가던 매력을 되찾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거예요.
연필로
회귀해보는 아날로그 시대
많은 전문가들이 디지털 세상이 지속될수록 아날로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 또한 늘어날 것이라 해요. 사람도 자연의 일부라 본능적으로 아날로그를 다시 찾는 경향을 보일 것이기 때문이라고요. 실제 다양한 분야에서 디지털화가 진행될수록 동시에 아날로그로 회귀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많이 보여요.
이러한 공존을 생활 속에서 가장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경우는 ‘기록’에 관련된 부분이에요. 대부분의 서류 작업 등을 디지털로 처리하는 세상이 되었지만, 반대로 클래식한 수첩에 손으로 연필을 깎아 직접 메모를 하며 그 과정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났죠. 문구나 소품을 파는 상점에서 각종 연필을 구입하고 모으는 사람들, 연필만 전문으로 하는 독특한 매장 등이 등장했어요.
그리고 이 중심에 늘 주목받는 연필 브랜드가 하나 있어요. 바로 오늘 소개해드릴 ‘블랙윙(Black Wing)’입니다.
아직 사용해보지 못한 사람이라도 사진을 보면 ‘아! 이 연필!’할 만큼 차별되는 디자인을 가진 블랙윙의 가장 큰 특징은 연필 끝에 달리 지우개가 납작하다는 것이에요. 보통 동그란 원통형의 지우개인 반면 블랙윙은 그것의 옆면을 납작하게 누른듯한 모양이거든요. 그래서 연필이 데구루루 굴러가지 않는 편리성도 가지고 있어요. 특히 이 지우개는 분리가 되어, 지우개는 다 사용했는데 아직 연필은 남아있을 때 별도로 판매하는 리필 지우개로 교체할 수도 있어요. 대부분 지우개만 다 써서 연필만 남는 경우나, 연필만 다 써서 한참 남은 지우개를 버려야 하는 경우들가 많은데, 그것과 다르죠.
한편 블랙윙은 매우 다양한 컬러 또는 패턴을 입힌 디자인을 지속적으로 출시해요.
상시적으로 출시하는 한 톤 컬러, 마블링 등과 같은 컬러 패턴 등은 기본, 매 분기마다 (1년에 4번) 그때만의 콘셉트와 디자인을 적용한 한정판을 만날 수도 있죠. 매번 하나의 팬시 용품을 보는 듯 다양한 디자인과 컬러로 수집 욕구를 마구 일으켜요. 연필 브랜드가 이렇게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기반으로 생산과 판매를 해간다는 것 자체가 찾아보기 쉽지 않죠.
그런데 블랙윙은 여기서 그치지 않아요. 연필은 소비성 재품이라는 점에 착안, 웹사이트를 통해 구독 서비스 또한 제공하고 있어요. 연필을 정기적으로 받아 사용하는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수익을 올리는 것은 당연, 고객들에게 아날로그 라이프 스타일이 오래 지속될 수 있도록 하나의 문화를 이끌기도 해요. 가격은 99달러이고 한 다스의 연필과 특별한 개별 포장의 한 자루를 선물로 추가 배송해 줘요. 자체의 가격도 비싼 편이지만 한국에서 구독을 한다면 물건값에 비등한 배송비가 추가되어 꽤 부담되기도 해요. 만만치 않죠.
그런데 이쯤 되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필이라는 문구류 하나로 이렇게 탄탄한 정체성과 브랜딩 활동을 해나가는 곳은 어떤 곳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겨요.
레전드 연필의 부활
‘포춘(Fortune)’지가 선정한 ‘가장 위대한 현대 디자인 100선’에도 이름을 올린 블랙윙은 미국 ‘에버하드 파버(Eberhard Faber)’에서 1934년 처음 출시했어요. 흑연에 왁스와 점토를 섞어 사용 시 손에 힘을 반만 주어도 글씨 쓰는 속도를 두 배쯤은 빠르게 해 주어 필기감의 측면에서도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죠. 더욱 부드럽고 우연하면서도 새로운 필기의 경험은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작가와 화가들에게 특히 큰 사랑을 받았어요.
존 스타인벡, 스티븐 손드하임, 척 존스, 스티븐 손드하임, 퀸시 존스, 레너드 번스타인, 어니스트 헤밍웨이, 월트 디즈니,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존 레넌, 스티븐 킹 등 미국의 문필가, 음악가, 화가들이 즐겨 썼다고 하여 더욱 상징성을 갖게 된 블랙윙은, 그들이 남긴 작품들만큼 드라마틱한 히스토리도 가지고 있어요.
블랙윙은 첫 출시 이후 60년 이상 판매를 지속했어요. 아주 오랜 시간이죠.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한 해 제작 수량이 겨우 1,000자루에 불가하게 되었어요. 결국 수익성이 없다는 이유로 1998년 판매 중단을 하게 되었죠. 그런데 이 결정이 그동안 블랙윙을 사랑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더욱 큰 소유욕을 불러일으켰고, 놓치기 싫은 향수와 판매 중단 후 커진 관심은 결국 십 수년 후, 복각이라는 방법으로 부활을 이끌어냈어요. 다만 동일한 파버 사가 아닌 캘리포니아 시더 프로덕츠 컴퍼니(Califonia Cedar Products Company)에서 ‘팔로미노(Palomino)’라는 이름을 걸고 오리지널 블랙윙을 복각하며 다시 태어났어요. 2010년, 해당 회사가 기존 블랙윙의 상표 등록이 만료된 사실을 알게 된 것이 결정적이었죠.
새로운 브랜드에 의한 복각은 오리지널을 완벽히 재현하는데 집중되었어요. 복각의 주된 이유이자 동기는 고객들의 추억에 의한 것이었고, 그러한 감성적 측면을 채워주자면 기존의 연필과 최대한 유사한 것이 당연히 요구되었으니까요. 그렇게 당시의 재료와 무게를 따르는 것부터 시작하여, 블랙윙 흑연만의 특별한 재료와 질감을 다시 살려내기 위해 일본의 기술까지 빌리게 되었고 제작 또한 일본에서 하고 있어요.
한정판이나 컬래버레이션을 통한 특별판을 제외하고 ‘블랙윙’, ‘블랙윙 602’, ‘블랙윙 펄’, ‘블랙윙 내추럴’을 중심으로 구성된 제품군은 각각 다른 심의 경도를 가지고 있어요. 실제 사용해 보면 전반적으로 다른 연필들보다 조금 진하고 연하게 ‘칠해진다’는 느낌을 받는 블랙윙의 연필들은 그래서 ‘붓’에 비유되기도 하죠. 그러한 이유로 블랙윙을 알게 된 후 인생 연필을 찾게 되었다면 좋아했던 작가 존 스타인벡은 ‘종이 위를 활강하는 듯한 느낌’이라 표현하기도 했어요.
또한, 심의 경도를 일반 연필이 HB등과 같은 기준으로 표기하지 않아요. 자기만의 기준이 있죠. 그래서 제품 라인 별로 어느 정도의 경도와 진하기를 가지고 있는지 정보를 안 후 구입하는 것도 좋아요. 아래 그림과 같이 Matt, Peral, 602, Natural 라인 등이 각각 다른 경도와 진하기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정말이지, 이모저모로 수집증을 자극하는 연필이에요.
경험으로 기억하는 브랜드
실제 블랙윙을 즐겨 사용하는 운영자는 구입하기 전과 구입한 후의 블랙윙에 대한 인상을 꽤나 다르게 기억해요. 연남동에 위치한 연필 편집숍 ‘흑심’에 들러 구매한 제품 중 하나인 블랙윙은 사실 구매를 하면서도 사용성에 대하선 큰 기대를 하지 않았어요. 방문하기 전부터 들어온 명성과, 실제 매장에 들렀을 때 마치 그곳의 시그니처 제품처럼 존재감 있는 모습에 ‘그래, 대체 얼마나 좋은지 한 번 써보자 싶은 마음이 컸을 뿐이었죠.
돌아오자마자 연필을 깎고 별생각 없이 다이어리에 몇 글자를 끄적인 저는 깜짝 놀랐어요. 일단 지금껏 사용해 본 연필들 중 가장 부드러우면서도 촉촉하며 진한 느낌이었거든요. 그렇다고 부담스럽지는 않았어요. 매우 기분 좋게 깊은 매끄러움이었으며, 조금 과장하여 말하면, 연필 끝에 잉크를 조금 묻혀 적어 내려 가는 느낌이었어요. 존 스타인벡이 말한 활강하는 느낌에 공감했어요.
이러한 경험을 하고 나니 왜 다들 다른 연필보다 가격도 비싼 블랙윙을 수집하고 그를 통해 아날로그적 기록 생활을 한다 하는지 이해가 되었어요.
한 제품, 또는 브랜드를 통해 그 행위의 가치를 알게 된다는 것은 너무나 멋진 일인 것 같아요. 마치 바이올린이라는 생소한 악기를 처음 만진 아이가 음악의 세계로 빠져들어가는 것처럼요. 그러한 의미에서 디지털화가 지속되고 있는 지금, 블랙윙을 한 자루 구매하여 사람이기에 완전히 멀어질 수 없는 아날로그의 매력을 잠시나마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런 분들께 이 뉴스레터를 강추합니다!
+ 오랜 시간 사랑받아온 작지만 큰 브랜드의 예시를 찾는 분들
+ 아날로그 라이프의 경험을 도와주는 브랜드가 궁금한 분들
+ 아날로그 기록의 문화에 주목하는 요즘 젊은 세대의 선택이 알고 싶은 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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